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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몇편 봤느냐가 중산층 기준돼야” 낭독공연 대중화 꿈꾸는 청년 연극인

시민과 연극의 만남의 장 ‘리딩파티’ 주도하는 김해리 자큰북스 대표

등록 : 2019-03-28 15:29 수정 : 2019-03-28 17:20
가난한 연극인 생활하면서

‘연극과 대중 만나야’ 깨달아

시민들 살롱 등에서 즉석 공연

전문 배우도 “연기 생생” 놀라

김해리 자큰북스 대표가 지난 22일 서대문구 신촌에 있는 카페하루키에서 자신이 출간한 희곡집들을 펼쳐 보인다. 김 대표는 자신이 개발한 대중적 낭독 공연인 ‘리딩파티’를 4월 한 달 동안 세 차례 카페하루키에서 열 예정이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우리나라 중산층의 기준이 아파트 평수나 차의 브랜드가 아니라 연극을 몇 편 보았는지, 다룰 수 있는 악기가 몇 개인지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주머니에 들어갈 만한 작은 희곡 책들을 펴내는 김해리 자큰북스 대표의 ‘큰 꿈’이다. 그래서일까? 그의 1인 출판사 이름 ‘자큰’도 ‘작지만 큰’이라는 뜻이란다. 그는 과연 이 큰 꿈을 어떻게 이루려는 것일까? 김 대표는 자신이 개발한 대중적 연극 체험 행사인 ‘리딩파티’를 통해 그 꿈에 한 발 더 다가가겠다 한다.

리딩파티는 연극에 관심 있는 일반인들이 모여 희곡을 함께 읽는 일종의 ‘낭독 공연’이다. 예컨대 처음 만난 남녀노소 시민이 젊은 극작가 오세혁의 <우주인> 희곡을 받은 뒤 극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대사를 읽으며 그 역할을 해보는 것이다.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이 하지만 나름의 재미와 멋이 있다. 김 대표는 “저랑 친한 배우가 리딩파티에 놀러왔다가 일반인들의 연기가 더 생생하게 살아 있는 것 같다며 놀라워했다”는 에피소드를 전한다.


‘파티’는 장소를 가리지 않는다. 지난해 말에는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삼일로창고극장에서 했고, 지난 2월에는 성동구 성수동에 있는 살롱인 ‘신촌살롱’에서 와인을 마시며 진행했다. 연극 대본인 희곡과 사람만 있으면 되기 때문에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주로 연극에 관심 있는 초보자들이 하지만 수준이 꽤 높다고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워낙 드라마가 인기라, 누구나 반쯤 연극인이 돼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리딩파티는 ‘가난한 연극인의 삶’을 바꾸고자 하는 젊은 배우이며 연출가인 김해리 대표의 바람에서 출발했다. 한양대 연극영화학과를 나온 김 대표는 배우·연출·극작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다. 2010년 대학로 극단 ‘마방진’에 들어가 고선웅 연출의 연극 <칼로막베스>에 조연출로 활동했다. 또 2011년에는 5월 광주를 다룬 연극 <푸르른 날에>에서 시민군 역을 맡았다. 나아가 2012년에는 소설가 김동인의 <광염소나타>를 스스로 각색한 뒤 연출까지 맡아 이를 무대에 올리기도 했다. 또 2014년에는 <두 덩치>라는 희곡을 썼다. 이 모든 활동은 아르바이트를 병행해야 하는 ‘가난한 연극인의 삶’ 속에서 이루어졌다.

당시 ‘예술가는 꼭 이렇게 가난해야만 하나’라는 의문을 품었다는 김 대표는 연극계가 좀더 적극적으로 대중과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다. 이에 따라 택시 기사를 위해 낭독 연극을 담은 카세트테이프를 나눠주기도 했고, 팟캐스트를 운영하기도 한다.

그러다 고용노동부 산하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관한 2013년 소셜벤처 경연대회에서 지원 대상으로 뽑혔다. 희곡을 출판해 대중이 많이 이용하는 지하철 역사 등에 비치한다는 것이 핵심 아이디어였다. 이어 2014년에는 사회적기업 육성 사업으로 선정됐다. 그것이 자큰북스와 리딩파티가 탄생할 수 있는 토양이 되었다.

김 대표는 리딩파티가 현대인에게 좋은 치유 수단·문화 향유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본다. “가령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직장인이라면 회사원인 극 중 인물의 대사를 토해내면서 스트레스를 풀 수 있다.” 더욱이 혼자 읽는 소설과 달리 여럿이 함께 ‘공연’을 만들기 때문에, 사회관계망서비스에 치중된 현대인들의 관계를 현실 세계로 이끌어올 수도 있다. 이에 따라 김 대표는 낭독 공연인 리딩파티가 각종 학교·회사 등에서 교육과 단합 등 다양한 목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야기를 하면서 김 대표의 꿈이 점점 커져갔다. “현재는 연극 경험이 풍부한 제가 모든 리딩파티를 진행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리딩파티 진행자를 체계적으로 길러서 학교나 회사 등에서 하는 리딩파티 현장에 파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대표는 그 꿈을 위해 오는 4월2일 신촌에 있는 작은 카페 ‘카페하루키’에서 리딩파티를 시작한다. 또 서서울예술교육센터(4월19일), 강화도에 있는 서점 ‘국자와 주걱’(4월26일) 등에서 올해도 겨울까지 쉬지 않고 이 독특한 낭독 공연을 진행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이렇게 연극이 극장 밖으로 나올 때 연극인이나 관객 모두 좀더 ‘풍요로운 삶’을 경험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한다.

“리딩파티 등 대중적인 연극 활동을 통해 일반 시민의 정신적 고갈을 예술가가 풀어주고, 예술가의 경제적 고갈을 일반 시민이 채워주면 좋겠습니다.”

김해리 자큰북스 대표는 여전히 작은 희곡 책을 통해 큰 꿈을 꾸고 있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