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짐 1톤 버리자 도시인의 삶이 ‘가뿐’

‘수집형 인간’ 전현주 기자의 봄철 집 안 정리 체험기

등록 : 2019-03-28 15:49
전화 한 통에 전문 인력이 집까지

무거운 짐이 ‘종이 석 장’으로 압축

책을 버리고, 옷을 버리니

마음이 넓어졌다.

여행을 ‘비우는 과정’이라 말한다면, ‘정리’는 도시인들의 평생 여행이다. 헌책과 헌 옷들을 비롯해 묵은 여행 정보지, 정체 모를 전자기기 코드 등 버릴 것을 결단하고 비우는 과정에서 ‘여행’의 기분을 맛봤다.

“빈손으로 물에 들면 몸이 가벼워 떠내려가기 쉬우므로, 반드시 무거운 것으로 어깨를 눌러야 한다.”

연암 박지원이 쓴 청나라 여행기 <열하일기>에서 전하는 ‘여행 정보’다. 이럴 때 짐은 짐이 아니다. 삶이란 거친 여정 속에서 내 중심을 잡아주는 필수불가결한 요소 같다. 문제는 그 짐이 무거워 내 허리나 다리가 휘어질 때다. 바로 ‘정리’를 시작할 때다.

전화 한 통에 방문수거 전문업체에서 직원이 찾아와 헌 옷가지 등을 자루에 담고 저울에 올렸다. 20㎏ 무게의 짐들이 삶에서 빠져나갔다.


1톤 짐 정리하며 ‘여행’ 기분 맛봐

책상 가득한 서류, 대출 이자 같은 채무, 나아가 인간관계까지…. ‘자연인’처럼 옷 한 벌에 몸 하나 뉘일 통나무집에 사는 것이 아니라면, 현대인 대부분은 무거운 짐을 진 채 살아간다. ‘정리 컨설턴트’라는 21세기 신종 직업이 생겨난 이래로 이사와 이전이 잦은 원룸, 1인 사무실 등 공간 정리부터 고독사를 당한 이의 유품 정리까지 도시 공간 특유의 ‘정리 사업’도 계속 진화한다.

이제 누리집에 들어가 버튼 한 번 누르거나 전화 한 통만 하면 정리를 도와주는 전문 인력이 집으로 온다. 전형적인 ‘수집형 인간’인 기자도 2박 3일 마음먹고 정리에 나서봤다. 집에서 헌책, 헌 옷, 생활용품 등 묵은 짐들을 빼내니 무게가 1톤 가까이 되었다. 비워내는 동안 다채로운 시간과 경험들이 종이 석 장(0.2g)으로 압축됐다. 길고 아득했던 여행을 마친 기분이다.

중고 책방, 사회 기증, 공유 창고 편리

여행이 곧 ‘비우는 과정’이라면, ‘정리’ 또한 도시인의 삶의 여행이라 볼 수 있겠다. 책과 과월호 잡지, 여행 정보지 등 서적·활자류가 많은 이들은 <책 정리하는 법>을 쓴 조경국씨 말처럼 ‘언젠가는 핍박받는 날’을 맞는다. 글쓴이는 최후의 책 정리 방법으로 ‘책방 주인’이 되는 방법을 권유하지만 책방 주인이 할 일은 다시 ‘책 정리’가 될 터다.

먼저 ‘버릴 책’과 ‘지킬 책’을 선별했다. 버릴 책을 다시 ‘낡은 책’과 ‘새것 같은 책’으로 나눴다. 낡은 책이라도 폐지함에 있는 모습을 보기 힘든 이들은 방문수거 전문 업체를 불러 헌 옷 등과 같이 처분하면 된다. 새것 같은 책들은 사회적기업 아름다운가게, 공공도서관 등에 보내거나 중고 책방에 팔면 수월하다. 온라인 중고 책방은 방문수거도 해준다.

기증은 물건의 수명을 늘리면서 자원 절약도 할 수 있는 방법이다. 아름다운가게는 의류, 영유아 잡화, 주방·생활 용품과 가전제품 등을 폭넓게 기증받는다. 상자(우체국 상자 5호 기준)로 3개 이상이면 방문 수거를 해주며, 신청일로부터 7~10일 안에 직원들이 온다.

사회적기업 아름다운재단에 기부하기 전에 누리집에 들어가 기부할 수 있는 물건 기준을 알아보는 편이 좋다.

유의할 점은 기증할 물건 상태다. 정리하기 전 누리집(beautifulstore.org)에서 기준을 확인하는 편이 좋다. 낡은 옷가지, 특정 로고가 박힌 단체복, 제조연도 4년 초과한 가전제품, 유통기한 6개월 미만 화장품 등은 판매가 불가능한데, 꾸준히 기증돼 곧바로 폐기되는 바람에 인력 등 자원 낭비가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기자 역시 출간된 지 7~8년 된 책 몇 권은 발행연도 초과로 현장에서 되돌려받았다. ‘연말정산’ 영수증을 신청하면 책정된 물건값을 바탕으로 며칠 뒤 기부영수증을 발급해준다. 큰 금액은 아니어도 자원 절약을 했다는 뿌듯함을 맛볼 수 있다.

아름다운가게 기부 과정 문자

정리 기회를 주는 ‘벼룩장터’들도 하나둘 개시 준비 중이다. 아름다운가게는 오는 4월6일부터 10월27일까지 뚝섬한강공원(7호선 뚝섬유원지역 2, 3번 출구)에서 매주 토요일과 일요일 ‘2019 뚝섬 아름다운 나눔장터’를 연다. 시민이 직접 물건을 팔아 물건 수명을 늘리고, 수익금 일부를 자발적으로 기부해 사회 환원과 환경보호를 실천한다는 취지다. 참가 신청은 참가 희망 일을 기준으로 3주 전 화요일 오전 10시부터 누리집에서 받는다.(문의 1899-1017)

‘공유창고’도 짐정리에 활용할 수 있다. 계절 용품들, 사무실이나 집에 두기 불편한 것들, 정해진 기간 안에 폐기할 수 없는 서류들, 이사나 이민 등의 이유로 위탁이 필요한 짐 등을 처리할 수 있다. 가격은 이용 공간에 따라 월 1만원(라면 상자 크기)부터 시작한다.

전화 한 통에 “딩동”, 저울이 문 앞에

“총 20.8㎏입니다. 반올림해서 4200원 드리겠습니다.” 정리 마지막 날, 저울과 포대, 작은 손수레를 들고 온 청년이 문 앞에 내어둔 헌 옷가지를 저울에 올렸다. 1㎏에 200원씩 계산해 그 자리에서 현금과 영수증을 줬다. 청년은 “내내 예약이 밀려 있다”며 환하게 웃었다.

방문 수거 전문업체에서 준 영수증

이런 방문수거 전문 업체도 짐 정리에 도움이 됐다. 버리고, 기부하고, 팔고도 남은 짐 정리에 알맞았다. 누리집에서 ‘방문수거’를 검색하면 수십 개 업체가 뜨는데, 전화나 온라인으로 신청하면 전문 인력이 문 앞까지 찾아온다. 방문 가능한 최소 무게 기준은 제각각 다르지만 주로 헌 옷을 중심으로 잡화, 헌책, 가전제품, 가구, 생활 용품 등을 폭넓게 수거하고 값을 쳐준다. 커뮤니티에서는 “가차 없이 비워내고 그 돈으로 치킨 사먹었다”는 쾌담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완연한 봄이 코앞이다. 여기저기 널린 짐을 정리하고, 더 멀리 떠나기 위한 바탕을 만들어보면 어떨까.

정리하다가 뜻밖의 발견을 하기도 한다. 벗들이 보낸 손편지, 구석에 박혀 있던 와인 상자는 소소한 기쁨이 되었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