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떤 향기일까?’ 사람과 사람을 향으로 이어주는 곳

등록 : 2019-03-28 16:04
조향사 1세대 정미순 대표가 열어

1792년 독일 향수부터

로리간, 켈크 플뢰르, 시프레까지

향수의 역사, 향기의 흔적 모아

오래된 향수병에서

‘옛 향기’ 상상하며

꽃 피는 봄날

‘길 위에 꿈’ 향수 직접 만들어


서초구 방배동 향수박물관 뮤제드파팡

향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향수박물관이 있다. 그 박물관에서 나를 닮은 향기를 직접 만들어볼 수 있다. ‘나에게 어울리는 향수는 무엇일까?’라고 묻는 것보다 ‘나는 어떤 향기일까?’라고 생각해보는 시간이 서초구 방배동 ‘향수박물관 뮤제드파팡’에 있다.

프랑스 그라스 최초의 조향사 그림.

뮤제드파팡에서 만나는 향수의 역사

1792년 독일 뮤렌스사에서 만든 향수를 2019년 봄 서초구 방배동에서 본다. 아주 오래전 향수의 향기가 지금 눈앞에 만발한 꽃향기 같지 않을까? 밀봉된 향수병을 보며 그 향기를 생각한다. 1905년 만들어진 코티의 로리간은 달콤한 향기가 나는 향수라는 설명에 의지해 그 향을 상상해본다. 서울시 서초구 방배동 향수박물관 ‘뮤제드파팡’에 향수의 역사, 향기의 흔적이 있다.

향수의 역사는 얼마나 오래됐을까? 향기를 만드는 조향사의 안내에 따르면 수천 년 전, 신과 소통하기 위해 향을 피우던 것이 향수의 시작이다.

뮤제드파팡 한쪽에 프랑스 그라스의 초대 조향사를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15~16세기 작품으로 추정하는 그림이다. 당시에는 조향사가 자기 자신만의 향을 직접 가지고 다녔다. 천연 가죽에 향을 입히는 것이 조향사의 주된 역할이었다. 주로 가죽장갑에 향을 입혔다고 한다. 그림의 주인공을 모델로 한 상이 그림 옆에 서 있다.

1700년대 후반에 생산된 향수부터 1950년대 향수까지, 전시된 향수병을 통해 향수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향기는 맡아볼 수 없지만 오래된 향수병을 보며 그 향기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향수병의 모양도 다양하다(박물관 블로그나 전화로 미리 신청하면 일정 비용을 내고 향수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들을 수 있다).

향수의 계보

박물관 한쪽에 향료 추출법을 알려주는 안내글이 있다. 천연 향료의 원료는 주로 꽃, 잎, 열매, 뿌리, 나무껍질 등에서 얻는다. 향료를 추출하는 방법도 기계로 압착해서 향료를 만드는 압착법, 증류해 만드는 증류법, 용매 추출법, 침지법 등 다양하다.

안내글과 전시된 향수병을 보며 향수의 역사를 알아보는 시간을 보내고 나서 향수를 직접 만들어볼 수도 있다(향수 만들기 체험 비용은 3만~5만원).

100여 년 전 향수병

향수박물관을 만들다

향수박물관을 만든 건 현재 GN퍼퓸 정미순 대표다. 그는 우리나라 조향사 1세대다. 오래전 책에서 외국 조향사 이야기를 들은 게 지금의 그를 만들었다. 조향사의 길을 걷겠다고 마음먹었지만 당시에 우리나라에는 조향과 관련된 공부를 할 곳이 없었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일본 유학이었다.

그의 길은 프랑스로 다시 이어진다. 조향사에게는 빼놓을 수 없는 향수의 도시 프랑스 그라스는 그에게 확신을 주었다. 그라스 국제향수박물관을 돌아보던 그는 우리나라에 향수박물관을 만들기로 마음먹게 된다.

향기를 만드는 조향사로 시작한 그는 아로마테라피, 향수 공방을 거쳐 2015년에 향수박물관의 문을 열게 되었다. 향을 만들고 그 향을 여러 사람에게 선보이는 데 그치지 않고 향수의 역사를 알려주고, 그 향기를 만들어보는 등 사람과 향기를 이어주는 다양한 체험 거리를 마련했다.

GN퍼퓸 정미순 대표. 사진제공 GN퍼퓸

‘향수박물관 뮤제드파팡’에 가면 정미순 대표의 수집품을 통해 향수의 계보를 볼 수 있다. 1792년 독일 뮤렌스사에서 만든 최초의 오데 코롱, 1889년에 만든 최초의 오리엔탈 타입 향수 겔랑의 ‘지키’, 1905년 만든 코티의 ‘로리간’, 합성 향료를 사용한 최초의 플로럴 향수인 우비강의 ‘켈크 플뢰르’, 최초의 시프레 타입 향수인 코티의 ‘시프레’, 최초의 알데하이드 타입 향수인 샤넬의 ‘샤넬 넘버5’, 최초의 그린 계열 향수인 발망의 ‘방 베르’, 최초의 살리실레이트 계열 향수인 니나리치의 ‘레르뒤탕’ 등 향수 계보 최초의 자리에 놓인 향수를 볼 수 있다.

정미순 대표가 수집한 오래된 향수는 이것뿐이 아니다. 그중 하나, 엘티피버(L.T.Piver)의 ‘아스트리스’는 나폴레옹 시대에 만든 향수다. 파리 벼룩시장에서 우연히 발견해 비싼 값을 치르고 샀는데, 나중에 그 가치를 알게 됐다고 한다.

나폴레옹 시대에 만든 향수. 아스트리스

나를 닮은 향수 만들기

향수박물관에 전시된 오래된 향수를 돌아보는 시간을 함께한 건 실내에 가득한 향수의 향기였다.

향수박물관 뮤제드파팡은 향수를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 과정도 운영한다. 향기를 만드는 조향사가 향기와 향수 이야기와 함께 향수 만드는 과정을 안내한다.

기본이 되는 향을 먼저 고른다. 여러 가지 향료를 각각 시향지에 묻혀 냄새를 맡고 그중 가장 마음에 드는 향을 하나 고른다. 그 향이 기본이 되는 것이다. 기본 향에 여러 향을 첨가한다. 첨가하는 향도 체험하는 사람이 향기를 맡아보고 고른다. 여러 향료를 선택하되 첨가하는 양을 달리한다(여러 향료 중 일부만 선택할 수도 있다).

첨가하는 향을 고르는 과정이 재미있다. 향을 맡아보고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 등을 적게 하는데, 그 과정이 없다면 자신이 고른 향기에 대한 느낌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

직접 만든 나만의 향수

그 향기에 대한 직관을 적은 단어나 문장은 그동안 자신이 겪었거나 생각했던 것들에서 우러난다. 향기를 통해 그 경험이 되살아나는 것이다. ‘나에게 어울리는 향기는 무엇일까?’라는 생각이 ‘나는 어떤 향기일까?’라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향수를 다 만들고 나서 향수병에 향수를 만든 날짜와 자신의 이름, 그리고 직접 지은 향수의 이름을 적어서 붙인다.

이른 아침 눈이 내리고 거센 바람이 눈구름을 몰아내던 꽃 피는 봄 어느 날, 서초구 방배동 향수박물관 ‘뮤제드파팡’에서 직접 만든 향수의 이름은 ‘길 위에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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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