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년 뒤 평화 만든 그 정신’ 계승 작업 한창
3‧1운동 백주년 기획 연재 ③ 강북·은평·성북구에서 되살린 ‘100년 전 함성’
등록 : 2019-03-28 16:35
강북, 봉황각 등 역사기행 코스개발
은평, ‘3·1혁명과 백초월’ 기획전 열어
성북, ‘항일독립운동 아카이브’ 구축 중
강북·은평·성북구, 삼일운동 탐방길
1919년 3월1일, “대한독립 만세!” 함성이 이 땅을 적셨다. 탑골공원에서 시작된 만세시위가 핏줄처럼 뻗은 길 따라 한반도 구석구석 스며들었다. 서울 도심에서 시작한 3·1만세운동은 일제가 총칼로 위협하는 상황에서도 전 민족이 궐기한 만세운동으로 퍼져나갔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은 올해 서울 각 자치구에서는 잊히기 쉬운 동네 유적지 발굴 작업에 한창이다.
북한산 기상 품은 강북구 역사탐방길
“봉황각에서 시작해도,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시작해도, 북한산 아름다운 둘레길 따라 마음 편하게 쉬고, 걷고, 3·1운동 유적을 돌아보며 트레킹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그 풍광과 공기가 좋아 ‘이사’까지 왔다는, 강북구청 문화해설사 진복희씨가 자신 있게 설명했다. 우이신설경전철을 타고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려 걸어서 10여 분이면 ‘봉황각’(우이동 254)에 닿는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겼을 당시 의암 손병희 선생이 “10년 안에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1912년 완공한 3·1운동의 주요 거점지다. 당시 깊은 산중에 자리잡아 비밀리에 독립 의지를 다졌던 터는 이제 의암 선생 묘역을 품은 양지바른 곳으로 정비됐다.
‘봉황이 깃들어 사는 집’이라 해서 ‘봉황각’이다. 여기서 일곱 차례 걸쳐 배출된 483명의 천도교 지도자들이 3·1운동 당시 전국 각지로 퍼져 만세운동을 이끌고 독립운동자금을 모았다. ‘3·1운동의 산실’이란 별칭이 붙은 이유다. 봉황각 별관인 맞은편 붉은 벽돌 건물은 지금 ‘의창수도원’으로 쓰이며, 의암 손병희 선생의 정신을 따르는 천도교인들과 일반인들이 수련을 이어가고 있다.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동네 정비가 한창인 강북구는 ‘너랑 나랑 우리랑’ 역사문화기행 코스를 만들어 북한산 국립공원과 3·1운동 주요 거점, 근현대사 유적지를 한데 묶었다. 봉황각과 가까운 우이동 만남의 광장과 소나무 쉼터, 4·19전망대, 근현대사기념관까지 4개 거점을 모아 선열들의 독립운동 정신과 민주화운동 정신을 보고, 북한산 솔향을 맡으며 쉴 수 있도록 했다. 4개 거점에서 도장을 찍어오면 주변 28개 음식점과 등산용품, 등산의류점에서 할인쿠폰으로 쓸 수 있다. 롯데백화점 미아점에서는 ‘커피 쿠폰’을 무료로 주고 그 밖에 백화점 내 식당가, 세차장, 미용실에서도 할인 혜택을 준다.
트레킹을 시작하기 전에 우이동 만남의 광장과 근현대사기념관에 설치된 ‘스마트 헬스 존’도 활용해보자. 인바디, 혈압 측정 등 간단한 건강진단을 무료로 해줘 안전한 산행을 돕고 있다. (문의 강북구청 문화관광체육과 02-901-6231)
백초월 스님과 ‘진관사 태극기’ 따라서
은평구에선 해마다 3·1절과 광복절이면 ‘진관사 태극기’가 거리에 나부낀다. 이는 진관사를 거점으로 독립운동을 펼쳐나간 독립운동가 백초월 스님이 사용한 태극기로 추정하며, 이를 기념하는 행사가 한창이다. 백초월 스님은 만해 한용운 선생과 백용성 스님과 함께 불교계 독립운동가 3인으로 꼽히지만 대중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6월30일까지 은평역사한옥박물관에서 열리는 기획 전시 ‘3·1혁명과 백초월’은 백초월 스님의 생애와 3·1운동 정신을 돌아보는 자리다. 2009년 5월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서 불단과 기둥 사이에서 <독립신문> 등 유물 20점과 함께 발견된 진관사 태극기 이야기 외에도 1919년 발행된 <독립신문>과 <신대한>, 만세운동과 임시정부 관련 유물들을 볼 수 있다.
전시 기간 매주 화~목요일 일반인에게 전시 해설과 함께 진관사 당일형 템플스테이(다담·사찰음식 체험)를 한다. 금요일에는 초·중·고등학생 단체를 대상으로 진관사 스님이 함께하는 사찰투어와 다담 시간 등을 마련하고 있다. (문의 02-351-8523)
독립 열망 넘쳐흐른 성북천과 돈암시장
성북구에도 3·1운동 유적지가 곳곳에 숨어 있다.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이자 문학가였던 만해 한용운의 ‘심우장’이 있는 성북구는 2016년부터 독립운동가를 발굴하고 조사하며 ‘항일독립운동 아카이브’를 만들고 있다. 강원도 강릉·양양 등에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유우석 선생, 3·1운동 때 개성 호수돈여학교에서 ‘호수돈 비밀결사대’를 조직했던 조화벽 선생, 또한 위창 오세창, 임규, 조소앙, 김수룡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성북구와 연을 맺었다.
성북천(옛 안감천)과 돈암시장(옛 돈암리시장)은 3·1운동 때 만세 행렬이 수시로 지나갔던 역사의 현장이다. 1919년 3월23일 밤 10시쯤 성북천 부근에서 500여 명이, 돈암시장에서 100여 명이 만세운동을 했고 <독립선언서>와 <조선독립신문>을 배포했다. 전차 투석과 횃불 시위까지 벌어졌던 격렬한 시위는 27일까지 날마다 일어났다. 100년이란 시간을 뛰어넘어 오늘날 그 자리에서 평화로운 일상을 사는 사람들을 바라보면 그 역사의 무게가 녹록잖게 다가온다.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강북구 우이동 봉황각 입구. 태극기 터널을 지나 정면에 보이는 건물은 의창수도원.
“봉황각에서 시작해도, 근현대사기념관에서 시작해도, 북한산 아름다운 둘레길 따라 마음 편하게 쉬고, 걷고, 3·1운동 유적을 돌아보며 트레킹할 수 있는 코스입니다.” 그 풍광과 공기가 좋아 ‘이사’까지 왔다는, 강북구청 문화해설사 진복희씨가 자신 있게 설명했다. 우이신설경전철을 타고 북한산우이역에서 내려 걸어서 10여 분이면 ‘봉황각’(우이동 254)에 닿는다. 1910년 일제에 국권을 빼앗겼을 당시 의암 손병희 선생이 “10년 안에 나라를 되찾겠다”는 일념으로 1912년 완공한 3·1운동의 주요 거점지다. 당시 깊은 산중에 자리잡아 비밀리에 독립 의지를 다졌던 터는 이제 의암 선생 묘역을 품은 양지바른 곳으로 정비됐다.
그 뒤에 2층짜리 목조건물인 봉황각이 자리잡고 있다. 3·1운동 민족대표 33인 가운데 15명이 배출된 유서 깊은 공간이다.
은평구 은평역사한옥박물관 기획전시 ‘3.1혁명과 백초월’ 전시장에 관람객들이 남긴 편지.
1919년 3월23일부터 27일까지 격렬한 만세운동이 일어난 성북구 돈암시장(옛 돈암리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