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울긋불긋 꽃대궐이 활짝

만화방창 5대 고궁의 봄…덕수궁·경희궁·경복궁·창경궁·창덕궁

등록 : 2019-04-11 14:46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은

비밀처럼 화사한 봄을 숨겼다

고궁의 연못과 뜰에 어린 봄 풍경

창경궁 양화당 뒤 언덕길에서 본 풍경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대궐”이다. 덕수궁·경희궁·경복궁·창경궁·창덕궁 등 조선의 5대 궁궐에 꽃이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은 비밀처럼 화사한 봄을 숨겼다. 고궁의 연못과 뜰에 어린 봄 풍경을 보았다. 그 풍경에 깃든 이야기에 꽃핀 풍경이 상서롭다.

덕수궁 살구꽃과 경희궁 서암

덕수궁 함녕전 뒤에 진달래가 한창이다. 분홍빛 진달래꽃밭은 어느새 덕수궁 사진 촬영 명소가 됐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물결 뒤로 함녕전과 덕홍전의 기와지붕이 아른거린다. 그 풍경을 카메라에 담는다.


함녕전은 고종 황제의 생활공간이었다. 1897년에 지었는데, 1904년 덕수궁 대화재 때 불탔다. 현재 건물은 1904년 12월에 다시 지은 것이다. 고종 황제는 1919년 1월21일 함녕전에서 승하했다. 고종 황제 승하 후 덕수궁의 여러 전각이 철거됐다고 하니, 고종 황제가 살아 있을 때 함녕전 뒤뜰, 지금 한창 꽃이 피어난 진달래꽃밭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덕수궁 함녕전 뒤 진달래꽃밭

진달래 꽃밭에서 정관헌 앞을 지나 작은 문을 통과해서 석어당 쪽을 바라본다. 2층 한옥 건물인 석어당 옆 커다란 살구나무가 꽃을 피웠다. 가지마다 피어난 꽃에 햇빛이 내려 화사하게 빛난다. 그 꽃 빛이 석어당, 덕홍전 등 전각의 기와지붕과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살구나무 꽃그늘 아래에서 사람들이 떠날 줄 모른다. 고개를 젖혀 꽃을 보거나 꽃가지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석어당은 임진왜란 때 의주에서 돌아온 선조가 임시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집무실이자 생활공간이었다. 선조가 승하한 곳이 석어당이다.

경희궁도 규모가 상당히 축소됐기 때문에 궁궐의 옛 모습을 가늠하기 어렵다. 원래 규모는 약 7만여 평이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전각은 숭정전·자정전·태령전이 전부다.

봄이지만 다른 궁궐처럼 “꽃대궐”을 이루지 못했다. 다만, 태령전 뒤 커다란 암반(서암)과 바위 사이로 나와 고였다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남아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바위 속에 샘이 있으니 예부터 유명했다고 한다. 샘 이름은 ‘암천’이었다. 서암의 원래 이름은 ‘왕암’이었는데, 숙종 임금 때에 지금 이름인 서암으로 고쳤다고 전해진다.

경희궁 서암

경복궁 아미산과 건청궁에 피어난 매화

경복궁의 봄은 아미산에서 시작해 아미산에서 끝난다. 아미산은 왕비의 생활공간인 교태전 뒤에 인공으로 만든 계단식 정원이다. 봄이면 갖은 꽃들이 피어나 아미산을 곱게 물들인다. 교태전 뒤뜰 아미산에 피어난 봄꽃들이 왕비의 마음을 얼마나 쓰다듬어주었을까? 봄이 되어 꽃이 피어나기를 왕비는 또 얼마나 기다렸을까? 교태전 뒤뜰 아미산은 봄을 기원하던 왕비의 뜰이었다.

지금도 봄이면 아미산에 꽃들이 만발한다. 교태전 온돌을 덥힌 연기가 빠져나가는 통로인 굴뚝도 아미산에 있다. 이를 두고 ‘아미산 굴뚝’이라고 한다. 고종이 경복궁을 다시 지을 때인 1867년에 다시 만든 것이다. 6각형 굴뚝 벽에 학·박쥐·봉황·소나무·매화·국화·불로초·새·사슴 등의 무늬가 보인다.

아미산에는 ‘함월지’(涵月池)라는 돌로 만든 그릇(돌함지)이 있다. 왕비의 뒤뜰에 호수를 둘 수 없어 만든 게 함월지다. ‘달이 담긴 호수’라는 뜻이다. 꽃 만발한 계단식 정원은 산으로 여기고, 굴뚝의 무늬들은 그 산과 호수에 사는 생명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경복궁 아미산

연회장이었던 경회루의 봄은 수양버들 신록으로 완성된다. 태종 임금 때 연못을 넓혔다. 경회루 연못을 만들 때 퍼낸 흙으로 교태전 뒤 아미산을 쌓았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경복궁 북쪽 후원에 있는 연못인 향원지와 그 가운데 섬에 지은 정자 향원정은 지금 공사 중이다. ‘향원’(香遠)이란 향기가 멀리 간다는 뜻이다. 그곳은 왕과 왕족들이 쉬는 공간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향원지가 있던 곳에 원래는 취로정이라는 정자를 짓고 연꽃을 심었다.

향원지와 향원정은 고종 임금 때 만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흥선대원군의 그늘에서 벗어나 친정 체제를 구축하면서 고종은 건청궁을 짓는다. 건청궁 앞에 판 연못이 향원지이고 그 가운데 섬에 지은 정자가 향원정이다. 향원정을 오가는 다리는 원래 건청궁으로 이어지도록 북쪽을 향해 있었으나 지금은 남쪽을 향하고 있다.

건청궁은 명성황후가 시해된 곳이다. 건청궁 장안당 뒤 빈터 한쪽에 매화나무 한 그루가 꽃을 피웠다.

창경궁 통명전과 양화당 뒤뜰 그리고 창덕궁 후원

창경궁 통명전과 양화당의 뒤뜰에 꽃이 만발했다. 통명전은 왕과 왕비의 생활공간이고 양화당은 대비의 생활공간이다. 통명전은 연회장으로도 쓰였다.

통명전과 양화당 뒤에 계단식 정원이 있다. 꽃이 피어 한옥 기와지붕과 어울린 풍경이 그럴싸하다. 두 건물 뒤 계단식 정원 위 언덕길에서 다른 전각과 너른 마당을 한눈에 넣고 보는 풍경이 제일 낫다.

발길은 춘당지로 향한다. 춘당지 둘레에 핀 꽃이 연못에 비친다. 연둣빛 물오른 수양버들 가지가 그 위에서 낭창거린다. 수양버들 사이에 줄기가 하얗게 빛나는 백송이 눈에 띈다. 연못 가운데 섬에도 꽃이 피었다. 꽃도 덤덤해질 무렵 멀리 연못가에 보이는 탑에 눈길이 머문다. 그렇게 춘당지 둘레를 걷는다. 수양버들 늘어진 가지가 햇빛을 거르는 발 같다. 진한 꽃향기를 따라간 곳에 미선나무꽃이 있었다. 히어리나무 꽃도 그 옆에서 봄을 즐긴다.

창덕궁 성정각 살구나무

창덕궁의 봄은 후원의 부용지에서 빛난다. 부용정, 영화당, 어수문, 주합루, 서향각, 사정기비각 등이 부용지를 둘러싸고 있다. 부용지 가운데 섬에는 멋들어진 나무들과 붉은 진달래가 어울렸다. 어느 것 하나 빠지면 그 풍경이 금세 무너질 것 같다. 연꽃을 닮은 부용정과 높은 곳에 우뚝 선 주합루가 양 옆에서 풍경의 균형을 잡아주고 있었다.

부용지를 지나 후원의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간다. 그곳에는 애련지와 애련정이 있다. 연경당으로 가는 길에 산목련이 피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목련꽃이 나비 같다. 더 깊이 들어가면 관람지 주변 풍경을 볼 수 있다. 작은 연못 주변 높고 낮은 곳에 승재정·관람정·존덕정 등 정자가 꽃들과 함께 어울렸다.

후원의 가장 깊은 곳에 도착했다. 옥류천이 흐르고 그 주변에 정자가 몇 개 보인다. 바위에 홈을 파 곡선으로 물이 흐르게 했다. 그 바위에 옥류천이라는 글씨가 새겨졌다.

왕과 왕족의 공간이다. 비밀같이 숨어 있는 뜰에 앉아 봄볕을 받는다. 물가에 선 주목도 붉은 진달래도 졸졸졸 흐르는 옥류천의 물소리도 한갓지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