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의 정신이 아로새겨진 길을 따라가보자

전현주 기자, 엄홍길 대장과 함께 북한산 순례길 트레킹 체험

등록 : 2019-04-18 14:45
4·19혁명 59주년 행사 코스 참가

엄 대장 “동네 주민으로서 자부심 코스”

자녀 손잡고 참가한 주민들 많아

지난 4월14일 오후 1시부터 북한산 순례길 트레킹을 시작한 엄홍길 대장과 시민들이 두 시간가량 산행을 함께하며 최종 목적지 봉황각으로 가고 있다.

“뛰지 말고 천천히! 넘어지면 다쳐요.” “야아, 끈 풀렸다. 이리 와 묶어줄게.” 사방팔방 뛰어다니는 아이들을 웃으며 뒤쫓는 사내. ‘세계 최초 8천m 16좌 완등’ 비결은 염려를 바탕에 깐 팀워크가 아니었을까. 지난 14일 산악인 엄홍길 대장과 400여 명의 시민이 강북구 북한산 ‘순례길 트레킹’ 코스를 탐방했다. 기자도 보조를 맞춰 함께 걸었다.

참가자들 옷매무새를 챙겨주는 엄홍길 대장

4·19혁명 정신 따라 걷는 순례길 트레킹

봄은 코끝에서 밀려오고 있었다. 비 갠 북한산 골짜기마다 솔 내음과 들꽃 향이 흐드러졌다. 산기슭 타고 내려온 정기가 한곳으로 모이는 곳. 바로 국립4·19민주묘지다. 1960년 4·19혁명에 참가했던 희생자들과 4·19혁명 유공 건국포장 수상자 426구의 유해가 안치됐다. 엄홍길 대장과 시민들이 4·19묘역을 참배하는 동안 ‘수호예찬의 비’에 음각된 추모 시구들이 이들의 못다 한 말들을 풀어주고 있었다.


엄홍길 대장과 박겸수 강북구청장, 시민들이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참배하고 더불어 안전한 산행을 기원했다.

순국선열과 애국지사 16위 흉상이 놓인 길을 지나는 시민들.

강북구 순례길 트레킹 코스는 북한산 둘레길 가운데 하나다. 국립4·19민주묘지에서 시작해 우이동 봉황각까지 약 4.2㎞ 구간을 걷는다. 근현대사기념관, 유림 선생 묘소 입구, 신숙 선생 묘소, 4·19전망대, 솔밭근린공원, 소나무쉼터, 손병희 선생 묘역을 지나며 대한민국 근현대사가 남긴 문화유산을 살핀다. 천혜의 자연과 역사 현장이 만나 자유와 평화의 의미를 되새겨보는 풍광 좋은 길이다. 산비탈을 오르며 호흡이 거칠어질 즈음이면 거점마다 문화해설사를 만나고, 5분쯤 쉬면서 설명을 듣고, 땀이 식기 전 다시 출발하는 리듬이다.

“제가 사는 집이 국립4·19민주묘지 바로 위 산자락에 있습니다.” 엄 대장이 등산지팡이에 두 손을 모으며 설명했다.

“동네 주민 한 사람으로서 ‘자부심’ 같은 겁니다. (웃음) 평소에도 북한산 둘레길을 자주 걷습니다. 더구나 민주화의 성지, 4·19혁명을 일으킨 선열들 혼이 서린 곳을 시민들과 함께 걷는다는 것이 취지가 좋지 않습니까. 많은 분들과 대화하고 공감하며 걷는 길이 즐거워 해마다 참여하고 있습니다.”

우이동 봉황각에 도착한 시민들이 엄홍길 대장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아이들은 울고 웃는 동안 자신만의 걸음을 터득했다. 북한산 둘레길도 네팔 히말라야 산맥처럼 존엄한 스승이자 대자연으로 다가오는 순간이었다. “재작년에도 세 자녀와 도전했는데, 아이들이 너무 힘들어해서 등반에 실패했어요. (웃음) 재도전인데 이제 잘 따라와 다행입니다.” 최정훈(41)씨가 힘이 넘치는 8살 첫째 딸에게 끌려가며 인터뷰에 응했다. “큰 신념으로 참여했다기보다는, 평소 좋아하는 북한산을 어린 아들과 같이 걸으며 자연스러운 배움을 얻어가길 바랬어요.” 느긋하게 수다를 푸는 아이 덕에 행렬에서 멀리 떨어졌지만, 자녀와의 오롯한 시간을 갖게 된 예병학(42)씨가 말했다.

‘4·19혁명 세계화’도 단단한 한 걸음부터

유림 선생 묘역 입구.

산행에 앞서 박겸수 강북구청장은 “한국의 4·19혁명은 영국 명예혁명, 미국 독립혁명, 프랑스혁명과 더불어 세계 4대 혁명으로 손꼽아야 할 만큼 세계사 차원에서 재평가되길 바란다. 특히 4·19혁명 기록물은 모범적인 한국 민주화 과정을 기록한 자료”라며 힘주어 말했다. 1960년 4월, 학생부터 노동자를 가리지 않고 한국 사회 전반으로 퍼져나간 반독재 민주주의 운동을 강북구가 기리며, 4월13일부터 19일까지 4·19민주혁명회, 4·19혁명희생자유족회, 4·19혁명공로자회와 함께 구 곳곳에서 ‘4·19혁명 국민문화제’를 연 이유다.

“4·19혁명 세계화 추진이 우리 구의 당면 과제라고 본 거죠. 지금은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 및 기념사업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기록물이 세계기록유산으로 오를 수 있도록 국제 학술회의를 적극 준비하고 있습니다. 학술자료집은 세계 주요 도서관과 대학에 보급합니다. 예를 들어 외국의 연구자들이 4·19혁명을 인용하려면 영문 자료가 필요한데, 그 기초 작업을 다지는 겁니다. 사업을 펼치는 동안 4·19혁명기록물이 문화재청의 세계기록유산 등재 신청 대상으로 선정됐습니다.”

근현대사기념관 상설전시관

지난 17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연 제3회 4·19혁명 국제학술회의는 ‘4·19혁명의 시선에서 바라본 동아시아의 평화’를 주제로 국내외 석학들이 다양한 평가를 내렸다. 미국평화봉사단원으로 1967년에 한국에 와서 잠깐 살았던 에드워드 슐츠 명예교수(미국 하와이대학)는 “4·19혁명 정신 계승이 한반도 평화 구축과 궤를 같이한다”며 “1960년 4월,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새로운 질서뿐만 아니라 한반도 평화를 염원했다. 이는 70~80년대 광주항쟁, 나아가 지난 촛불시위의 원동력이 된 4월의 유산”이라 평했다.

4월의 봄을 만끽하는 강북구 여행

4·19전망대에서 내려다본 국립4·19민주묘지

‘순례길 트레킹’ 코스는 3명 이상 등반할 때, 강북구 누리집(www.gangbuk.go.kr)에서 예약하면 문화해설사를 배정받아 돌아볼 수 있다. 독립 열망으로 가득찬 길, 민주화 발자취를 담은 길, 북한산 소나무 향이 가득한 길 등으로 묶은 3개 코스는 각 2시간 20분~3시간쯤 걸리며 높지 않아 아이들도 곧잘 따라 걷는다.

주변 볼거리도 챙겨두자. 동요 작사·작곡가이자 어린이 문화운동에 큰 발자취를 남긴 윤극영(1903~1988) 선생의 가옥이 국립4·19민주묘지 가까이 있다. 아동인권과 권리에 무지했던 시절, “사라져가는 우리 풍속을 내 손으로 되찾아 너희에게 안겨주마”라는 말을 남긴 선생의 유품과 흔적이 소중하다.

윤극영 선생 가옥.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