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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행복 언어’ 큰 차이…10개 친근어 중 사랑·기쁨만 동일

서울-평양 미래 포럼 남북 주민의 행복 개념 차이, 인공지능 알고리즘 통한 첫 분석

등록 : 2019-04-25 15:43
북 문학잡지 <청년문학> 분석 결과

행복과 같이 쓰이는 단어 살펴보니

세상·헌신·인민·가정·보람 등

<한겨레> 문화면 기사 분석해보니

인생·누구·타인·당신·마음 등

‘알고리즘 분석으로 본 남북 주민의 행복 개념.’

지난 22일 열린 ‘제1회 서울-평양 미래 포럼’ 제2세션에서 김보근 <서울&> 편집장과 엄원석 한겨레 디지털기술부장이 함께 발표한 발제문 제목이다. 두 사람은 이 발제에서 2013년 구글이 개발한 알고리즘 워드투벡터(Word2Vec)를 이용해 남북한 주민들의 행복 개념의 차이를 분석했다.


남북 주민들의 마음 차이를 인공지능 알고리즘으로 분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동안 ‘남북 주민들의 마음 통합’이 진정한 통일을 위한 필수조건으로 인식되면서 탈북자 연구 등을 통한 마음 차이 분석은 여러 차례 했지만, 알고리즘을 이용한 분석은 없었다. 워드투벡터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거리를 벡터화해 측정함으로써 단어들이 얼마나 친근한 관계인지 파악하는 인공지능 알고리즘이다.

두 사람은 분석 텍스트로 북한의 <청년문학>에 실린 2000년 이후 소설·수필 등 931개의 작품과 2015년 7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한겨레> 문화면에 실린 기사를 선정했다. <청년문학>은 북한의 3대 문학잡지 중 하나로, 신진 작가나 작가가 되고자 하는 청년들이 주로 작품을 내는 매체다.

워드투벡트 분석 결과 남북의 ‘행복’ 개념에는 상당한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우선 ‘행복’이라는 단어와 함께 쓰인 친근한 단어들에서 차이를 보였다. 북한에서는 ‘기쁨, 사랑, 세상, 헌신, 인민, 조국, 가정, 보람, 세월, 가슴속’의 순으로 행복이라는 단어와 가깝게 쓰인 것으로 나타났다. 남한에서 ‘행복’과 함께 많이 쓰인 단어는 ‘인생, 사랑, 기쁨, 누구, 타인, 누리, 당신, 마음, 인간관계, 미래’ 등인 것으로 분석됐다. 행복과 같이 쓰인 단어 중 남북 공통 단어는 ‘사랑’과 ‘기쁨’ 두 개에 불과했다.

김 편집장은 “함께 쓰인 사랑과 기쁨을 제외한 단어들을 보면, 북한에서는 ‘헌신, 인민, 보람’ 등 민족이나 국가 전체와 연관되는 단어가 많고, 남한에서는 ‘인생, 타인, 당신, 인간관계’ 등 사람 사이의 개인적 관계를 떠올리게 하는 단어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함께 쓰인 단어들도 실제 예문을 살펴보면 차이를 보였다. 가령 ‘사랑’의 경우, <청년문학>에서는 “이 땅의 천만 자식들을 사랑의 한품에 안으시고 기쁨과 행복만을 안겨주시던 경애하는 아버지 김정일 장군님”(수필 ‘길’, <청년문학> 2012년 제6호) 등 사랑과 행복을 최고 존엄과 연관지어 사용한 사례가 많았다. 이에 반해 남한에서는 “아빠는 등굣길 지연의 가방을 들어주고 밥도 차려주며 지금껏 못 준 사랑을 가득 퍼붓는다. 마냥 행복하고 기쁘지만, 그동안 함께하지 못한 미안함이 더 크다”(‘13년 만에 만난 아빠와 딸의 동행’, <한겨레>, 2017년 11월4치) 등 개인적 관계에서 사용한 사례가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김 편집장은 북한의 ‘행복’ 사례가 모두 집단적이고 전체적인 행복만 얘기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행복’과 ‘가정’이 함께 쓰인 사례 중에서는 개별 가정의 행복에 대한 강조도 눈에 띈다는 것이다. 가령 <청년문학> 2011년 제8호에 실린 단편소설 ‘사랑의 다리’에서는 “꽃송이를 내미는 딸애를 담쑥 들어올리니 생긋한 꽃향기가 짜릿하도록 온몸을 감싼다. 은옥은 촉촉이 젖어드는 쌍겹진 눈을 깜빡이며 밝게 웃었다. 아, 행복, 가정의 행복은 이런 것인가”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김 편집장은 “알고리즘 분석 등을 통해 더 많은 개념을 비교해보면 어떤 부분이 많이 변했고 어떤 부분에서 동질성이 많이 남아 있는지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엄원석 부장도 “북한 문헌이 디지털화되어 온라인에 올라오는 사례가 점차 많아진다. 이에 따라 워드투벡터 등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한 남북관계 분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가 대 국가는 쉽지 않아도 도시간 교류 가능 영역 있다”

축사 l 신원철 서울시의회 의장

한반도에 평화를 향한 변화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서울이 수도로서 역할을 해야 할 때입니다.

오늘은 바로 그런 미래를 준비하는 자리입니다. 서울이 미래를 계획하면서, 평양과의 협력은 이제 배제할 수도 없고 배제해서도 안 되는 부분입니다. 특히 미래 스마트시티를 제대로 준비하고, 한반도의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기 위해서는 남북 간 상호 협력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국가 대 국가로서는 쉽지 않은 일도 도시 대 도시로서는 가능한 영역이 있습니다. 과거 독일이 통일로 나아가던 과정을 돌이켜보면, 동서독 간 활발한 도시 교류가 평화의 마중물 역할을 했습니다.

도시 단위의 문화예술 교류와 공동 연구 확대 등 적극적인 교감을 통해, 통일은 정치의 영역에서 개인 일상의 영역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오늘 포럼이 그 마중물 역할을 해주길 바랍니다.

“스마트시티 등 4차 산업혁명은 공동 번영 위해 반드시 협력해야”

축사 l 김원이 서울시 정무부시장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 발전이 둔화하면서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스마트시티와 빅데이터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 분야에 정부 차원의 지원은 물론이고, 민간 차원의 투자 또한 크게 늘고 있습니다. 북한 역시 김정은 시대에 개혁·개방을 표방하면서 낙후한 경제를 빠르게 발전시켜 주민 생활을 향상하고자 ‘과학기술 분야’의 발전을 통한 ‘단번도약’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스마트시티와 빅데이터 등 4차 산업혁명은 남과 북이 서로 큰 관심과 기대를 걸고 있는 분야로, 한반도가 과거가 아닌 미래 지향적인 방향에서 서로 협력하고 공동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반드시 협력해야 하는 분야입니다. 물론 4차 산업혁명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에 대한 남과 북의 협력 구상도 논의 초기 단계입니다. 그런 만큼 서울-평양 미래 포럼이 관련 전문가와 시민이 참여해 지속적으로 논의를 발전시켜나감으로써 가능성을 현실로 만드는 자리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충신 기자 csless@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