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관승의 새벽 3시
차도남에서 콧수염남으로…변신의 로망 인정하라
늦은 나이에 외모 변신을 꾀하는 중년 남성들의 심리는
등록 : 2019-05-02 15:17
깔끔한 이미지의 후배
어느 날 콧수염 차림으로 나타나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는 로망
내 스타일이라도 바꿔보자
하마터면 그를 못 알아볼 뻔했다. 몇 년 만에 저녁 식사 자리에서 만난 후배는 멋진 콧수염을 길러서 완전히 다른 남자로 변신해 있었다. 과거의 그는 일명 ‘차도남’이라 이르는, 차가운 도시형 남자의 전형이었다. 지적이면서도 깔끔한 이미지였던 터라 갑작스러운 변신 이유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오래전부터 저의 로망이었습니다. 회사 분위기나 제가 담당하던 업무 성격 때문에 감히 시도하지 못했을 뿐이죠. 최근에 제 보직이 바뀌고 직장 분위기에 변화가 오면서 과감하게 수염 기르기를 시도해보았는데, 너무 이상하지는 않은가요?”
그의 변신을 지켜보니 20년 전쯤 또 다른 남자의 얼굴이 떠오른다. 많은 이가 부러워하던 직장을 어느 날 갑자기 그만둬서 주변을 의아하게 만든 사람이었다. 비슷한 연령대 직장인들 가운데 최고의 연봉, 사회적인 지위 등을 구가할 수 있는 기득권을 마다하고 사표를 냈다. 도대체 왜 그러느냐고 만류하는 이들에게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콧수염을 기르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을 가보아도 많은 직장인이 수염을 기르고 있던데, 왜 불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수염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개성을 죽이라는 말이잖아요.” 사표를 낸 뒤 그는 그토록 원하던 콧수염을 기르고 사람들 앞에 웃으며 다시 나타났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조직생활과 멀었다. 물론 집안의 가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지난 20년 사이에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때는 서울에서 콧수염 기르는 직장인은 희귀했고, 머리를 삭발하고 출근하는 직장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렇듯 직장인 남자들에게 콧수염과 삭발은 탈규범, 자유, 독립을 의미했다. 혹은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는 ‘메타포’(은유)로도 읽힌다. 외모에 무감각한 나에게 최근 새로운 습관 하나가 생겼다. 늦은 시간에 귀가하면 식구들 틈에 끼어 잠깐이나마 홈쇼핑 방송을 보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홈쇼핑을 보고 상품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이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곤 했다. “코에 기름 바른 것 같은 소리만 하고, 과잉 리액션을 반복하는 쇼호스트(상품안내자)와 출연자들, 유치하기 짝이 없네. 정말, 유치해!” 그러던 나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언제인가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탈모, 그리고 탈모 관련 홈쇼핑 방송을 본 뒤부터였다. 머리가 많이 빠진 사람은 흑채로 탈모 부위를 감추면 상당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내용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한번 써볼까? 단골 미용실에 갔을 때 슬쩍 효과를 물어보았다. “중요한 자리에 가실 때는 당연히 쓰셔야죠.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어도 자존심 상하실까봐 말씀 안 드렸습니다. 헤헤!” 미용실에서 적극 이용을 권유한 덕분에 나도 결국 흑채를 사기에 이르렀다. 강연을 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날에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하기 짝이 없다. 내친김에 나는 배가 나왔는데도 당당히 청바지를 입고 연단에 서기도 한다. 외모의 변신은 단순한 유행이나 개성의 표현일까? 아니면 ‘나를 찾는 작업’의 하나일까?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요즘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승객들이 어떤 신발을 신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언젠가부터 한 칸에 탄 사람들 가운데 똑같은 신발을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모양이나 스타일, 상표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다. 이전 세대 사람들이 몰개성 사회에 살았다면 요즘 세대는 신발부터 개성을 주장하는 듯싶다. 무엇보다 운동화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듯싶다. 미국에서는 나이키와 뉴발란스 같은 회사에서 생산하는 ‘스니커’라는 이름의 운동화의 경우 한 켤레에 무려 3천만원 가까이 하는 희귀 모델을 거래하는 가게가 있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특수 디자인을 거래하는 전문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을 정도로 운동화 생태계는 급성장 중이다. 운동화는 단순한 신발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핵심인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직장인 남성 한 명은 이렇게 화답한다. “제가 어떤 신발 좋아하는지 아세요? 저는 무조건 키노피입니다.” “키노피? 그거 어느 나라에서 만든 브랜드인가요?” “아, 그거요? 키를 높이 보이게 하는 신발입니다. 상표는 중요하지 않은데, 당연히 깔창도 있어야 하지요. 하하하!” 디자이너 출신의 중년 남자 한 명은 안경이 100개 이상이나 된다. 그는 거의 날마다 다른 안경을 쓰고 외출한다. 안경은 그가 남들과 자기를 차별화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안경은 사물을 잘 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잘 보이기 위한 수단임이 틀림없다. 과거에는 지나치게 자기를 감췄다면 지금은 정반대다. 머리 모양, 옷 입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스타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 탈평범함은 분명 이 시대의 화두다. 그것이 지나쳐,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에서 튀지 않으면 못 견디는 ‘관심병 종자'를 뜻하는 ‘관종’이라는 비속어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는 하여도 외모의 변신은 확실히 무죄다. 모두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스타일의 변신은 주변에 젊고 활력적인 에너지 파동을 가져다준다. 답답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먼저 자기 스타일이라도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l저서『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콧수염을 기르고 싶었어요. 그런데 우리 회사는 그걸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이웃 나라 일본을 가보아도 많은 직장인이 수염을 기르고 있던데, 왜 불가능한지 모르겠습니다. 수염이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곧 개성을 죽이라는 말이잖아요.” 사표를 낸 뒤 그는 그토록 원하던 콧수염을 기르고 사람들 앞에 웃으며 다시 나타났다. 그 이후로 그의 삶은 조직생활과 멀었다. 물론 집안의 가업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이지 지난 20년 사이에 세상은 많이 바뀌었다. 그때는 서울에서 콧수염 기르는 직장인은 희귀했고, 머리를 삭발하고 출근하는 직장인은 더더욱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렇듯 직장인 남자들에게 콧수염과 삭발은 탈규범, 자유, 독립을 의미했다. 혹은 남들과 다르게 살겠다는 ‘메타포’(은유)로도 읽힌다. 외모에 무감각한 나에게 최근 새로운 습관 하나가 생겼다. 늦은 시간에 귀가하면 식구들 틈에 끼어 잠깐이나마 홈쇼핑 방송을 보는 것이다. 불과 몇 달 전만 해도 홈쇼핑을 보고 상품을 사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가 없었기에 이를 시청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핀잔을 주곤 했다. “코에 기름 바른 것 같은 소리만 하고, 과잉 리액션을 반복하는 쇼호스트(상품안내자)와 출연자들, 유치하기 짝이 없네. 정말, 유치해!” 그러던 나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언제인가부터 급속도로 진행된 탈모, 그리고 탈모 관련 홈쇼핑 방송을 본 뒤부터였다. 머리가 많이 빠진 사람은 흑채로 탈모 부위를 감추면 상당한 효과를 누릴 수 있다는 내용에 솔깃하지 않을 수 없다. 나도 한번 써볼까? 단골 미용실에 갔을 때 슬쩍 효과를 물어보았다. “중요한 자리에 가실 때는 당연히 쓰셔야죠. 솔직히 말씀드리고 싶어도 자존심 상하실까봐 말씀 안 드렸습니다. 헤헤!” 미용실에서 적극 이용을 권유한 덕분에 나도 결국 흑채를 사기에 이르렀다. 강연을 하기 위해 사람들 앞에 서야 하는 날에는 필수품이 되어버렸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감이 생겼다는 사실이다. 그토록 사람의 마음이란 간사하기 짝이 없다. 내친김에 나는 배가 나왔는데도 당당히 청바지를 입고 연단에 서기도 한다. 외모의 변신은 단순한 유행이나 개성의 표현일까? 아니면 ‘나를 찾는 작업’의 하나일까? 도대체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일까? 요즘 나는 지하철을 탈 때마다 승객들이 어떤 신발을 신고 있는지 유심히 관찰하는 버릇이 생겼다. 언젠가부터 한 칸에 탄 사람들 가운데 똑같은 신발을 발견하기 힘들어졌다. 모양이나 스타일, 상표에 이르기까지 제각각이다. 이전 세대 사람들이 몰개성 사회에 살았다면 요즘 세대는 신발부터 개성을 주장하는 듯싶다. 무엇보다 운동화로 자신을 증명하려는 듯싶다. 미국에서는 나이키와 뉴발란스 같은 회사에서 생산하는 ‘스니커’라는 이름의 운동화의 경우 한 켤레에 무려 3천만원 가까이 하는 희귀 모델을 거래하는 가게가 있을 정도로 마니아층이 형성되어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특수 디자인을 거래하는 전문 커뮤니티가 형성되고 있을 정도로 운동화 생태계는 급성장 중이다. 운동화는 단순한 신발이 아닌 라이프스타일의 핵심인 것이다. 그 얘기를 들은 직장인 남성 한 명은 이렇게 화답한다. “제가 어떤 신발 좋아하는지 아세요? 저는 무조건 키노피입니다.” “키노피? 그거 어느 나라에서 만든 브랜드인가요?” “아, 그거요? 키를 높이 보이게 하는 신발입니다. 상표는 중요하지 않은데, 당연히 깔창도 있어야 하지요. 하하하!” 디자이너 출신의 중년 남자 한 명은 안경이 100개 이상이나 된다. 그는 거의 날마다 다른 안경을 쓰고 외출한다. 안경은 그가 남들과 자기를 차별화하는 방식이다. 이 경우 안경은 사물을 잘 보기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스스로 잘 보이기 위한 수단임이 틀림없다. 과거에는 지나치게 자기를 감췄다면 지금은 정반대다. 머리 모양, 옷 입는 방식에 이르기까지 남다른 스타일로 자기 자신을 드러내려고 한다. 탈평범함은 분명 이 시대의 화두다. 그것이 지나쳐, 온라인이나 소셜미디에서 튀지 않으면 못 견디는 ‘관심병 종자'를 뜻하는 ‘관종’이라는 비속어가 등장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기는 하여도 외모의 변신은 확실히 무죄다. 모두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은 것이다. 스타일의 변신은 주변에 젊고 활력적인 에너지 파동을 가져다준다. 답답한 세상을 바꿀 수 없다면 먼저 자기 스타일이라도 바꿔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손관승 CEO·언론인 출신의 라이프 코치l저서『me, 베를린에서 나를 만났다』등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