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LP 이야기
IMF 이후 아버지 노래 크게 늘어
등록 : 2019-05-09 15:06
유성기 시절부터 어머니는 핵심 소재
66년 영화 주제곡 ‘아빠의 청춘’
30여 년 뒤 IMF 때 아버지 응원가로
‘사랑하는 어머니께’는 불효 노래
5월은 어린이날을 시작으로 어버이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기념일이 넘쳐나는 가정의 달이다. 시기에 맞게 부모님을 중심으로 가족과 연관된 대중가요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어린이, 부부와 연관된 노래들은 지면 관계상 다음 기회로 미룬다.
가족과 연관된 대중가요는 유성기 시절부터 어머니가 핵심 소재로 각광받으며 한국인의 심금을 울려왔다. 또한 가족들로 그룹을 결성한 김시스터즈, 김브라더스, 작은별가족, 김트리오 등도 동시대 대중의 뜨거운 관심을 이끌어냈다.
사람이 입에 올리는 단어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엄마’라고 한다. 문득 지방에서 레코드 가게를 운영했던 친구에게 전해 들은 이야기가 뇌리를 스친다. 은퇴를 앞둔 한 노교수는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가 집안일을 하면서 늘 흥얼거렸던 노래를 다시 듣고 싶어 친구의 가게를 찾아 일본어로 몇 소절 흥얼거렸다고 한다. 노래는 귀에 익었지만 제목이 생각나지 않아 찾아주지 못했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그 노래는 1935년 김연월의 ‘산곡의 등불’ 이후 정시스터즈, 최희준, 패티김, 송창식 등 많은 가수가 번안했던 ‘산골짝의 등불’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노교수는 이미 정년퇴임을 해버려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 외 어머니의 별세 소식에 통곡하며 녹음을 마친 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와 신세영의 ‘전선야곡’도 큰 공감대를 형성했던 유성기 시절의 명곡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뤄진 북한 육상 선수 신금단 부녀의 극적인 만남은 남북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녀의 애틋한 사연은 온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에 황금심의 ‘눈물의 신금단’, 최숙자의 ‘눈물의 십분간', 임화춘·신화자의 ‘신금단 부녀의 이별’ 등이 담긴 LP들이 동시다발로 발표되어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오기택의 ‘아빠의 청춘’은 1966년 개봉한 동명의 영화 주제가다. 이 영화는 자식들의 장래를 위해 재혼도 하지 않고 헌신하며 살아온 아버지의 애환을 그린 당대의 흥행작이다. 30여 년의 세월이 지난 외환위기(IMF) 때, 이 곡은 한껏 쪼그라든 아버지들의 기를 살려주는 응원가로 되살아났다.
아버지 노래는 꾸준하게 등장하지만 어머니 노래보다 수가 적다. 히트곡도 바블껌의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이수미, 권태수 등의 ‘아버지’(파파), 윤승희의 ‘아빠랑 엄마같이’, 현숙의 ‘타국에 계신 아빠에게’, 최불암·정여진의 ‘아빠의 말씀’, 아버지가 생전에 쓰던 의자를 소재로 한 정수라의 ‘아버지의 의자’, 배따라기의 ‘아빠와 크레파스’ 그리고 최백호의 ‘애비’ 정도에 불과하다. 이는 언제나 다정한 친구나 연인 같은 어머니와는 달리 무서웠던 아버지의 가부장적 이미지가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1969년 김소월의 시를 가사로 사용한 유주용의 ‘부모’는 가정의 달이 되면 라디오에서 부활하는 노래다. 스스로 부모가 되어봐 부모님의 애틋한 마음을 알게 됨을 노래한 이 곡은 많은 가수가 다시 부르면서 시대를 초월한 명곡이 되었다.
70년대까지 대중가요에 등장하는 어머니들은 자식의 성공을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는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점에서 1971년 시각장애인 가수 이용복이 번안한 ‘1943년 3월 4일생’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에 대한 원망이라는 전혀 다른 질감으로 애절함을 더했다. 당시 노래 제목의 날짜를 이용복의 생년월일로 오해하는 사람이 많았다. 1972년 이용복이 특별출연한 영화 <어머니 왜 나를 나셨나요>가 개봉했을 정도로 이 노래는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되었다.
1972년 동양방송(TBC) TV 드라마 <어머니>의 주제가 ‘모정의 세월’은 나훈아의 구수한 음색이 드라마의 인기에 일조했다. 하지만 이 노래는 1년 뒤에 다시 부른 한세일의 대표곡으로 우리는 기억한다. 자식들에 대한 근심으로 살아가는 어머니의 애절한 인생을 노래한 ‘모정의 세월’은 한세일에게 MBC 신인 남자 가수상까지 안겨주었다. 1972년 발표된 김상희의 ‘팔벼개’는 어머니의 정겨운 체취와 추억을 되살려주는 마력의 노래다. 1973년 발표된 이연실의 ‘찔레꽃’도 가슴 먹먹해지는 눈물겨운 사모곡이다.
1983년 김창완의 첫 독집 <기타가 있는 수필>에 수록된 ‘어머니와 고등어’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노래는 어머니가 자식에게 주려고 냉장고에 넣어둔 고등어를 한밤중에 발견한 아들이라는 평범한 일상을 통해 모자의 진한 애정을 전달해 큰 공감대를 형성했다. 강인엽의 ‘그리운 어머니’는 MBC TV의 군 위문 프로그램 <우정의 무대> 테마송으로 사용되면서 군인들이 가창 애창하는 어머니 노래로 각인되어 있다. 이 노래는 1991년 영화 <어허 어이 어이가리>의 주제가로 강인엽이 처음 발표했다.
어느 시기나 어머니 노래는 효심이 기본이지만 예외는 있다. 어머니의 뜻에 반대해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멀리 떠나겠다는 최성빈의 ‘사랑하는 어머님께’가 그런 노래다. 1995년 발표된 이 노래는 착한 제목 때문에 어버이날이면 각 라디오의 단골 신청곡으로 각광받지만 ‘불효막심한’ 가사 내용 때문에 절대로 방송해서는 안 되는 노래로 유명하다.
세기가 저물어가던 1999년 발표된 지오디(god)의 ‘어머님께’는 어머니가 일하는 공장에서 나눠주는 도시락을 먹지 않고 몰래 싸가지고 와 자식들에게 나눠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곡이다. 가사에서는 도시락을 짜장면으로 대체했다. 이 노래는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랩 스타일이지만 모든 세대의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선사했다. 또한 2007년 테이의 ‘어머니’와 박효신의 ‘1991년 찬바람이 불던 그 밤’, 2008년 라디의 ‘엄마’ 등 최근에 발표된 어머니 노래들도 친근하고 다정한 어머니의 존재감이 여전함을 증명한다.
김진표, 자화상, 싸이, 데프콘의 ‘아버지’, SG워너비의 ‘아버지 구두’ 등에서 보듯 아버지 노래는 IMF 이후에 급증했다. 이전과는 달리 아이들과 놀아주고 육아와 가사를 아내와 분담하면서 친구처럼 친근한 이미지로 변신한 아버지들이 늘어난 결과가 아닐지. 이처럼 무조건적이고 헌신적인 사랑을 주는 어머니와 친근하게 변신한 아버지를 소재로 한 대중가요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겨주는 가장 쉬운 공감 소재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가족으로 구성된 그룹과 가족과 연관된 대중가요가 수록된 LP들.
한참 세월이 흐른 후, 그 노래는 1935년 김연월의 ‘산곡의 등불’ 이후 정시스터즈, 최희준, 패티김, 송창식 등 많은 가수가 번안했던 ‘산골짝의 등불’임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노교수는 이미 정년퇴임을 해버려 늘 마음에 걸린다고 했다. 그 외 어머니의 별세 소식에 통곡하며 녹음을 마친 진방남의 ‘불효자는 웁니다’와 신세영의 ‘전선야곡’도 큰 공감대를 형성했던 유성기 시절의 명곡이다. 19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이뤄진 북한 육상 선수 신금단 부녀의 극적인 만남은 남북 최초의 이산가족 상봉으로 기록되어 있다. 부녀의 애틋한 사연은 온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했다. 이에 황금심의 ‘눈물의 신금단’, 최숙자의 ‘눈물의 십분간', 임화춘·신화자의 ‘신금단 부녀의 이별’ 등이 담긴 LP들이 동시다발로 발표되어 뜨거운 화제가 되었다.
아버지 노래가 수록된 대중가요 LP들.
어머니 노래가 수록된 대중가요 LP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