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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의 100년 역사가 ‘생생’
서울식물원의 또 다른 볼거리 ‘마곡문화관’
등록 : 2019-05-30 16:20
마곡지구 개발 전 논밭 일대에
100년 전 배수펌프장 들어서
2007년 등록문화재 등록 뒤 복원
벽면 그라피티도 그대로 보존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여기가 다 탁 트인 논밭이었는데 말이에요. 일 끝나면 동료들이랑 고기 구워 먹고 헤어지곤 했다고요. 마곡지구가 이렇게 신도시가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마곡동으로 들어서는 택시 운전사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그의 말처럼 강서구 마곡동과 가양동 일대가 오늘날처럼 번쩍번쩍한 모습을 갖춘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옛 김포평야의 한 축을 담당해온 땅의 시간을 50여 년 정도 거슬러 올라가면, 1963년 서울시역으로 포함된 이후 서울의 농경문화를 다지며 변화에 맞춰 약동하던 시대와 만나고, 거기서 50여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양천수리조합’의 전신인 1908년 옥구서부수리조합이 설립돼 배수펌프장이 들어선 때와 만난다. 이는 현재 ‘마곡문화관’으로 변신한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 품은 100년 시간의 요약이다.
‘수리조합’이란 토지나 집 소유자들이 모여서 농지를 위해 관개용 저수지와 제방 등을 만들고 관리하는 등 수해 예방 사업을 목적으로 만든 법인체다. 한 해 농사를 좌우하는 수량을 관리한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은 김포평야 일대 관리를 위해 일제가 지은 건축물이었다. 100여 년 동안 천천히 낡아가며 ‘흉물’로 방치돼 있었으나, 2005년 서울역사발물관이 진행한 ‘서울특별시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양천수리조합사무실의 존재가 알려지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 뒤 2006년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벌인 ‘서울강서구 마곡동 가양동 일원 도시계획 예정 부지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 처음 발견되는 성과가 있었고,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7년 등록문화재 제363호가 된 후 지난해 복원되었다. 지난 23일 오후 마곡문화관에서 열린 ‘마곡문화관 근대 건축 및 전시 투어'를 맡은 이주옥 전시해설사의 설명이다. “올해 서울식물원 정식 개원에 맞춰 완벽히 복원된 마곡문화관 지하까지 선보이게 됐습니다.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은 이른바 ‘네거티브 문화재’로 알려졌는데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지은 건물을 부숴야 할까 보존해야 할까 논쟁하던 끝에 보존 쪽으로 선택된 건축물입니다. 마곡이라는 장소성 자체가 도시의 오랜 농경문화를 품고 있는데, 그 땅의 시간과 기억을 문화관에서 계속 관리하고 선보이기로 한 겁니다” 마곡문화관이 바로 마곡의 오랜 농경문화를 서울식물원의 식물 문화로 맥을 잇는 거점인 셈이다. 서울식물원을 찾았다면 마곡문화관까지 들러볼 만하다. 약 4m에 이르는 콘크리트 구조체 위에 나무로 지은 건축물은 삭아버린 펌프 파이프와 물길까지 모두 드러내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했다. 펌프장으로 쓰이던 당시, 물은 건물 천장까지 차오르곤 했다. 찰랑거리는 수면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하로 들어서면 삭은 채 주둥이를 내놓은 대형 파이프로 곧바로 눈과 귀가 몰린다. 오랜 구조물이 전시장 사진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조합을 이룬다. 근대 농업 유산으로 자리잡은 마곡문화관은 앞으로도 전시, 문화, 공연 행사 등을 통해 시민들과 접점을 만들 계획이다.
지금 전시장에선 박준범 기증 특별전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서울 근대 문화유산의 기억을 담다’가 열리고 있다. 재단법인 서울문화유산연구원 부원장 박준범씨의 마곡문화관 관련 작품 사진과 기록 사진, 더불어 건축물 복원 과정에서 건축물의 의미를 찾아가는 사고 흐름을 찬찬히 볼 수 있다.
“누구도 건물에 주목하지 않을 때 박준범 부원장과 몇몇 작가들이 건물 곳곳을 찍고 기록했습니다. ‘근대유산’으로 건물을 보기보다 건물의 사용가치에 집중하던 시절 말이죠. 그래서 어떤 사진들은 이제 영영 사진으로만 남아 날것 그대로의 땅이 역사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배수펌프장에서 마곡문화관으로 탈바꿈하는 사이, 건물은 여러 번 용도를 바꾸었다. 한때는 철물점으로, 고물상으로, 주변 청소년들의 탈선 장소로 쓰였다 한다. “벽면에 그라피티(길거리 그림)는 그때 생겼다고 추측합니다. 모두 지우지 않고 사진 전시물과 어울릴 수 있게 살려둔 이유는 그 역시 이 건물이 지닌 시간이자 멋으로 여겨서죠.” 이주옥씨의 말에 한 50대 중년 여성이 답했다. “내가 마곡에 오래 살았는데, 그동안 방치된 이 건물을 안 부수고 뭘하는지 궁금했어요. 오늘 지하까지 샅샅이 구경하니 의문이 풀리네요. 복원 의미를 알겠어요. 재밌게 봤습니다.”
마곡문화관은 매주 월요일 휴관하며, 평일과 주말, 공휴일엔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연다. (입장 마감 오후 5시) 지하철 9호선과 공항철도선 마곡나루역에서 걸어서 20분, 9호선 양천향교역에서 걸어서 10분 걸린다. 관람료는 무료다. 하루 두 번 해설사가 함께하는 마곡문화관 답사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예약은 서울시 공공예약시스템(yeyak.seoul.go.kr)에서 할 수 있다.
문의 마곡문화관 02-2104-9798
글·사진 전현주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마곡문화관 바깥 전경.
그 뒤 2006년 상명대학교 박물관에서 벌인 ‘서울강서구 마곡동 가양동 일원 도시계획 예정 부지 문화유적 지표조사’에서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이 처음 발견되는 성과가 있었고, 지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2007년 등록문화재 제363호가 된 후 지난해 복원되었다. 지난 23일 오후 마곡문화관에서 열린 ‘마곡문화관 근대 건축 및 전시 투어'를 맡은 이주옥 전시해설사의 설명이다. “올해 서울식물원 정식 개원에 맞춰 완벽히 복원된 마곡문화관 지하까지 선보이게 됐습니다.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은 이른바 ‘네거티브 문화재’로 알려졌는데요, 일제강점기 때 일제가 지은 건물을 부숴야 할까 보존해야 할까 논쟁하던 끝에 보존 쪽으로 선택된 건축물입니다. 마곡이라는 장소성 자체가 도시의 오랜 농경문화를 품고 있는데, 그 땅의 시간과 기억을 문화관에서 계속 관리하고 선보이기로 한 겁니다” 마곡문화관이 바로 마곡의 오랜 농경문화를 서울식물원의 식물 문화로 맥을 잇는 거점인 셈이다. 서울식물원을 찾았다면 마곡문화관까지 들러볼 만하다. 약 4m에 이르는 콘크리트 구조체 위에 나무로 지은 건축물은 삭아버린 펌프 파이프와 물길까지 모두 드러내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했다. 펌프장으로 쓰이던 당시, 물은 건물 천장까지 차오르곤 했다. 찰랑거리는 수면의 모습을 상상하며 지하로 들어서면 삭은 채 주둥이를 내놓은 대형 파이프로 곧바로 눈과 귀가 몰린다. 오랜 구조물이 전시장 사진들과 어우러져 독특한 조합을 이룬다. 근대 농업 유산으로 자리잡은 마곡문화관은 앞으로도 전시, 문화, 공연 행사 등을 통해 시민들과 접점을 만들 계획이다.
마곡문화관에서 박준범 기증 특별전 ‘서울 구 양천수리조합 배수펌프장, 서울 근대 문화유산의 전경을 담다’가 열리고 있다.
마곡문화관 내부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