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의 주인 되기

당신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인생에 초조함 느끼는 40대 초반 남성 “내 전성기 이미 지난 거 아닐까요?”

등록 : 2016-06-02 12:53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Q. ‘내 인생의 전성기는 이미 지난 것은 아닐까?’ 올해 들어 부쩍 그런 느낌이 듭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많은 사람들이 성취해서 득의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분명 저도 나름대로 열심히 산 것 같은데 상대적으로 남들에게 내놓을 만한 것들이 별로 없다 보니 의기소침해집니다. 체력도 예전만 못한 것 같고, 집에 가서도 가끔 짜증을 내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직장의 회식 자리에서 노래방에 갈 때면 목에 핏대를 올려가며 임재범의 ‘비상’ 같은 노래를 불러제끼지만, 귀갓길 지하철에서는 오히려 더 초라해집니다. 저만 그런가요? 아니면 나이 탓일까요? 저는 40대 초반 남성입니다.


A. 이젠 세상에 나갈 수 있어 / 당당히 내 꿈들을 보여 줄 거야 / 그토록 오랫동안 움츠렸던 날개 / 하늘로 더 넓게 펼쳐 보이며….”  

이렇게 부르짖는 임재범의 ‘비상’이라는 노래를 언급하시니, 급소를 찔린 기분입니다. 제가 최고경영자(CEO)로 재직 중이던 시절 가끔 직원들과 함께 노래방에 갔는데, 그 노래를 부르는 직원들이 반드시 있었습니다. 곰곰이 되돌아보니 주요 보직을 맡지 못한 사원들이었던 듯싶습니다. 아마도 인사권자에 대한 속상함, ‘나도 할 수 있어’라는 무언의 시위, 아쉬움 등이 혼합된 간접화법이 아니었을까 생각되는군요.  

그렇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려 한국에서 직장인들에게 ‘나’라는 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려운 것이 한국 직장생활의 현실입니다. 평사원, 중간 간부, 임원, 심지어 대표이사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한달이 지나고, 1년이 훅 지나갑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출근하는 현관문 앞에 불쑥 마흔, 혹은 쉰이라는 낯선 숫자가 찾아옵니다. 피곤과 술에 젖어 귀가하는 길에 엘리베이터 거울에서 낯선 얼굴을 만나 깜짝 놀라게 됩니다. 깊은 한숨과 함께 이렇게 탄식합니다.  

“아, 이게 누구야? 언제 이렇게 변했지? 팍삭 갔군!”  

30, 40, 50, 60, 분명 감정도 없는 무심한 숫자에 불과하지만, 그것이 나의 나이를 가리키는 수식어로 다가온다면 그 무게는 실로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며칠 휴가 내서 훌쩍 제주도로 날아가 홀로 올레길을 걷고 싶고, 내 체력의 극한까지 자전거를 타 보기도 합니다. 그런 뒤 거울 앞에서 면도를 하며 남자들은 스스로 이렇게 외치곤 하지요.


“나, 아직 안 죽었어! 안 죽었다구!”  

아마도 상담을 요청하신 분은 마흔이 넘으면 누구에게 한번쯤은 찾아오기 마련이라는 계절풍을 만난 게 아닌가 합니다. 감정의 동요가 파도처럼 몰려오는 심리적인 변곡점입니다.

대체적으로 직장인들은 30대까지는 적응하느라 바빠 본인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습니다. 동창회 등 각종 모임도 불참하거나 참석하더라도 시간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러다 직장에서 어느 정도 자리가 잡혀서 주변을 돌아보는 순간 깜짝 놀라게 되는 것이지요. 청년은 어느새 중년이 되어 있는 겁니다.  

서양인들은 그것을 가리켜 ‘중년의 위기’(middle-age crisis)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중년의 개념은 나라마다 다르고, 신체와 마음의 건강에 따라 다르지만, 폭넓게 보면 나이 마흔이 넘어가면 서서히 중년이란 카테고리에 포함시키는 것이 한국적 관례가 아닌가 합니다.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제각각입니다. 갑자기 평소 하지 않던 일을 합니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독특한 취미를 찾거나 먼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제가 아는 40대 여성 커리어 우먼은 갑자기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해 주위를 깜짝 놀라게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극단적으로 직장을 바꾸거나 새로운 이성에 탐닉하기도 하지요. 어찌 보면 자기 확인의 고통스런 과정이 아닌가 합니다.  

인생의 전성기는 언제인가? 참으로 어려운 질문입니다. 차범근 감독이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돌아왔을 때, 혹은 국가대표 감독에서 해임되었을 때, 모두들 그의 전성기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해설가로서 그는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제 개인적인 경험도 말씀드리고 싶군요. 제가 대표이사 직위에서 물러난 직후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뿐 아니라 제 스스로도 그러하였습니다. 몹시 쓰라리고 초조하였습니다. 게다가 1년 반 정도 무위도식의 상황이 계속되자 흡사 터널 안에 갇힌 폐소공포증 환자의 심정처럼 되었습니다. 그런 쓰라린 방황의 시간을 거친 뒤 조금씩 제 길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글을 쓰고 강연하는 새로운 일이었습니다. 나이 오십 넘어 비로소 제 인생을 발견한 것이지요. 물론 연봉, 근력, 사회적인 파워라는 기준으로 보면 이전에 비해 한없이 초라해 보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비로소 인생에 ‘나’라는 주어를 찾았으니까요. 그러하기에 감히 저는 새로운 전성기라고 주장하고 싶습니다. 중요한 것은 삶의 기준이고 생각입니다.  

‘마이 웨이’로 유명한 미국의 전설적인 가수 프랭크 시나트라, 그리고 토니 베넷이 불러 한 시대를 풍미한 노래는 ‘The Best is yet to come’입니다.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라는 뜻이죠. 독일의 밴드 스콜피언스, 영국의 젊은 밴드 루브 벅, 도널드 로렌스 같은 가수들도 멜로디와 가사는 다르지만 같은 제목으로 노래를 불렀습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직후 당선 연설로 화제를 모은 제목 역시 같았습니다.  

왜 이토록 이 제목에 사람들은 열광하는 것일까요. 성공한 예술가, 성공한 정치가, 성공한 경영자는 공감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마음을 파고들 줄 알아야 우리는 공감이라 표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전성기란 객관적인 데이터를 뜻하지는 않습니다. 남과의 비교도 아닙니다. 간절함이고 굳은 의지입니다. 고민 없는 직장생활 없고, 문제없는 인생 없습니다. 위기란 분명 유쾌한 손님은 아닙니다만, 때로는 그 주기적인 위기가 인생의 더 큰 위기를 감당케 해 주는 예방주사 노릇을 해 주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마음의 항체를 심어 주는 것이지요.  인생은 하루하루 검증받는 과정입니다. 전성기,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꿈과 유머는 고단한 인생을 지탱하게 해 주는 활력소이자 비타민입니다. 꿈과 유머 없는 인생은 지루합니다. 앞서 언급한 프랭크 시나트라가 죽음을 앞두고 어떤 묘비명을 남겼는지 아십니까.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The Best is yet to come”

손관승 세한대학교 교수·전iMBC 대표이사·MBC 기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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