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성의 LP 이야기

‘떠날 때는 말없이’ ‘안개’…60년대 히트곡 OST 많아

대중음악과 영화의 공생 100년, 50~60년대 편

등록 : 2019-06-07 15:38
50년대 라디오 연속극 영화로 제작

연속극 주제가가 영화 주제가로

60년대 옛 노래 영화로 리바이벌

정훈희 데뷔곡 ‘안개’ 40만 장 대히트

1950~60년대 발매된 10인치 한국 영화 OST LP들.

1919년 10월27일, 김도산 감독이 연출한 한국 최초 영화 <의리적 구토>(義理的 仇討)가 단성사에서 개봉되었다. 그날이 한국 영화의 날로 지정된 이유다. 100년이 지난 2019년 5월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을 받으며 한국 영화의 존재 가치를 전 세계에 증명했다. 한국 영화는 2012년에 관객 1억 명 시대를 돌파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그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1960년대의 슬픈 풍경이 떠오른다. 필자가 살았던 동네에 엿장수가 오면 아이들이 빈병, 폐지를 들고 나가 달콤한 엿과 바꿔 먹었다. 5살 때부터 어른들의 손을 잡고 공짜로 극장을 드나들었던 필자는 엿보다 회색 깡통이 좋았다. 그 안에 가득 찬 필름을 밀짚모자에 두르면 햇빛에 반사되어 근사했기 때문이다. 그땐 그저 폼 나는 놀이기구로만 생각했던 깡통은 극장 상영 후 버려진 소중한 한국 영화 필름들이었다. 동네 아이들의 즐거운 놀이가 소중한 우리 영화 유산을 훼손하는 처참한 현장이었음에 자괴감이 든다.

한국 영화 100주년을 맞아 흥행 몰이에 일조한 중요 주제가 LP들을 50~60년대, 70~90년대로 나눠 2회에 걸쳐 소개한다.


과거에는 영화 주제가 녹음은 곧 출세의 지름길이란 등식이 형성되었다. 최초의 창작 가요인 이정숙의 ‘낙화유수’는 1927년 이구영 감독이 연출한 동명의 무성영화 주제가였다. 영화계는 개봉 전에 주제가를 미리 발표하는 흥행 전략을 세웠다. 가요계도 영화의 흥행이 주제가의 히트로 이어지는 음반 판매 효과를 기대했다. 이처럼 한국 영화와 대중가요는 오랜 기간 공생 관계를 맺어왔다.

당시 인기를 끈 라디오 연속극이 영화로 제작되는 흐름이 생겼다. 1956년 중앙방송국의 라디오 연속극 <청실홍실>은 최초로 드라마 주제가를 만들었다. 전국을 강타한 인기 덕에 이 드라마는 이듬해에 영화로 제작되어 새로운 지평을 예고했다. 1957년 유성기 음반으로 발표된 송민도의 노래 ‘나 하나의 사랑’도 연속극의 빅히트로 1958년 한형모 감독이 연출한 영화 <나 혼자만이>의 주제가로 쓰여 흥행에 일조하며 60년대 초에 LP로도 발매되었다. 1958년 오향영화사를 창립한 작곡가 박시춘이 감독까지 맡았던 영화 <딸 칠형제>는 당대의 인기 가수들이 대거 출연해 주제가의 위력을 과시했다.

한국 영화는 1959년에 무려 111편을 제작하며 다수의 주제가를 히트시켰다. 권영순 감독의 영화 <가는 봄 오는 봄>은 백설희가, 가수 고복수는 직접 제작한 영화 <타향살이>를 통해 자신의 히트곡을 리바이벌했다. 안다성이 주제가를 부른 홍성기 감독의 영화 <비극은 없다>는 제3회 부일영화상 남우주연상 등을 휩쓸며 제7회 아시아영화제에도 출품된 당대의 흥행작이다.

같은 해 개봉한 노필 감독의 영화 <꿈은 사라지고>는 남녀 주인공 최무룡과 문정숙이 주제가를 직접 불러 성공 신화를 일궈냈다. 유성기 음반으로 처음 발매된 영화 주제가들은 10인치 LP로도 재발매되었다. 특히 문정숙이 부른 명곡 ‘나는 가야지’는 양옥집을 부상으로 받을 정도로 히트해 영화 주제가 편집 LP 제작 붐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발매된 중요 한국 영화 OST 음반들.

1960년 개봉한 유두현 감독이 연출한 영화 <카츄샤>의 주제가인 송민도의 ‘카츄사의 노래’와 주연배우 최무룡이 부른 ‘원일의 노래’도 긴 생명력을 보여주었다. 1962년 개봉한 영화 <연산군>은 1회 대종상에서 음악상 등 8개 부문을 휩쓴 흥행작이다. 이 시기에는 30~50년대 유성기 시절에 사랑받았던 이애리수의 ‘황성옛터’(1961), 남인수의 ‘이별의 부산정거장’(1961),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1962), 김정구의 ‘눈물 젖은 두만강(1963)’, 현인의 ‘비 내리는 고모령’(1969) 등이 영화로 제작되며 리바이벌 붐을 일으켰다.

1964년은 무려 147편의 한국 영화가 제작되는 양적 팽창을 이루며 흥행 규모도 해방 이후 처음으로 외화를 넘어섰다. 당시에는 제2회 청룡영화상 음악상을 받은 <맨발의 청춘>(1964) 같은 청춘물과 <갯마을>(1965) 등 문예영화들의 인기가 대단했다. 1964년 쟈니브라더스가 부른 영화 <빨간 마후라>의 주제가는 대만의 공군가로 사용되었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현미는 1964년 개봉한 영화 ‘떠날 때는 말없이’의 주제가를 최고의 명곡으로 언급한다. 같은 해 영화 <동백아가씨>의 주제가를 빅히트시킨 이미자는 영화와 드라마 주제가를 무려 600여 곡 넘게 노래한 국내 최다 음반 녹음 가수로 평가된다.

1965년 개봉한 김기덕 감독의 영화 <남과 북>은 제1회 동양방송(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주제가상을 비롯해 국내외 영화제를 휩쓴 명작이다. 곽순옥이 부른 주제가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는 20년 후 KBS의 ‘이산가족 찾기’ 특별방송 때 부활해 온 국민의 눈물샘을 자극하며 이산의 슬픔을 각인시켰다. 1966년 정승문 감독의 영화 <아빠의 청춘>은 오기택이 부른 주제가가 IMF 외환위기 때 어깨가 처진 아빠들의 응원가로 부활해 시대를 초월한 명곡으로 사랑받는다. 같은 해 개봉한 영화 <하숙생>은 최희준이 부른 주제가가 제2회 동양방송(TBC) 방송가요대상 주제가상을 받으며 흥행에 성공했다.

1967년 개봉한 영화 <안개>는 김승옥의 소설 <무진기행>이 원작이다. 이 영화는 한국 영화의 표현 영역을 한 차원 높인 수준 높은 작품성으로 국내외 영화제를 휩쓸어 노래, 영화, 소설 모두 ‘트리플 걸작’의 신화를 남겼다. 이 영화의 OST는 재발매를 거듭하며 40만 장이 팔려나갔다. 주제가 ‘안개’는 1970년 제1회 도쿄국제가요제에서 정훈희를 국내 최초의 국제가요제 수상자로 등극시켰다.

세기의 라이벌 남진과 나훈아를 스타로 견인한 공전의 히트곡 ‘가슴 아프게’(1967)와 ‘사랑은 눈물의 씨앗’(1969)도 모두 영화주제가였다. 1968년 정소영 감독의 영화 <미워도 다시 한번>은 서울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37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 영화 흥행사를 새로 썼다. 신파조 최루성 멜로드라마의 고전으로 평가받는 이 영화는 대만과 일본에도 수출됐다.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도 1969년 청춘스타 남진과 트윈폴리오, 조영남, 최영희 등이 출연한 영화 <푸른 사과>를 통해 영화음악으로 데뷔했다.

글·사진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ㅣ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