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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용소서 품위 있는 인간의 삶 묻다

국내 최초 ‘수용소 다크 투어’ 만든 여준민 활동가

등록 : 2019-06-07 16:12 수정 : 2019-06-07 16:14
05년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만들어

“과거 청산과 피해 복구 목소리 기록”

선감학원·몽키하우스 등 둘러봐

“보호란 명분의 인권유린 현장 확인”

국내 최초로 ‘수용소 다크투어’ 프로그램을 기획한 여준민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 활동가.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수용소 현장에 가면 피해자들의 아픔을 공감하게 되고, 품위 있는 인간의 삶이 무엇인지 묻게 되죠.”

장애·인권 단체인 ‘장애와인권 발바닥행동’(발바닥행동) 활동가 여준민(45)씨는 5월24일부터 시작한 ‘수용소 다크 투어’를 기획했다. 지난해 9월부터 두 달 동안 진행한 ‘수용소 역사 강좌’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여러 수용 시설을 돌아보는 다크 투어를 기획하는 계기가 되었다.

“역사 강좌를 끝내고 감금의 역사를 지닌 수용시설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을 어떻게 하면 더 확산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던 중, 수용소 현장에서 직접 시민들과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다크 투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시작했다.” 다크 투어는 전쟁과 학살 등 비극적인 역사의 현장이나 재난과 재해를 당한 곳을 돌아보는 여행이다. 수용소 다크 투어는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 지원사업으로 선정돼 서울 시민이면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2019년 수용소 다크 투어: 감금과 배제의 역사기행’은 상반기(5~6월)와 하반기(9~10월)로 나눠서 간다. 상반기에는 일제강점기부터 독재 정권까지 계속된 청소년 부랑인 감금의 현장, 경기 안산 선감학원(5월25일), 성매매 여성 감금의 역사를 지닌 경기 동두천 몽키하우스(6월8일), 정신질환자 수용소였던 충남 장항 수심원(6월29~30일)을 돌아본다. 하반기에는 강제 노역과 강제 결혼을 자행한 충남 서산개척단, ‘부랑인 수용소’ 부산 형제복지원, 노숙인과 장애인 수용 시설 대구시립희망원, 한센병 환자들을 수용했던 전남 고흥 소록도, 장애인을 성폭력했던 광주 인화원 등 모두 8곳을 둘러본다.

이번 다크 투어는 연구자와 피해자가 함께 가서 해설하는 게 특징이다. 연구자는 시설에 대한 일반적인 이야기부터 역사적 배경과 상황 등을 설명하고, 피해자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여 활동가는 “이번에 선정한 역사 현장들 대부분이 아직 투어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지 않은 곳들이라, 개인적으로 가기엔 어려움이 있는 곳”이라며 “‘보호’라는 명분으로 인권을 유린하는 만행을 일삼은 수용 시설 현장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여 활동가는 1997년부터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에서 인권 운동을 시작했다. 2005년 발바닥행동 창립 멤버로 참여했으나, 목수가 꿈이었던 그는 농사를 짓기 위해 2006년부터 2009년까지 잠시 인권 단체를 떠나 있었다. 그러다 2010년 다시 주위 동료들의 요청으로 발바닥행동에 복귀해 탈시설 운동과 인권 운동을 계속 해왔다.

발바닥행동은 시설에서 벌어지는 감금과 폭행 등 인권유린 실태와 비리를 사회에 고발하고 개선하는 데 힘써왔다. 광주 인화학교 사건(일명 ‘도가니’), 부산 형제복지원 사건 등이 발바닥행동이 앞장선 대표적 활동이다. 발바닥행동은 이런 공로를 인정받아 호루라기 인권상(2013년), 서울시 복지대상 최우수상(2014년), 한국장애인인권 대상(2015년)을 받았다.

여 활동가는 탈시설 운동을 하던 2012년 형제복지원에 주목했다.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던 피해자 한종선씨의 말은 너무 참혹했다. 한씨가 쓴 책 <살아남은 아이>를 읽고 감금이 국가 정책이었고, 국가폭력의 문제라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이후 선감학원, 서산개척단 등의 사건도 알게 돼 피해자들의 명예를 찾기 위해 노력했다.

이처럼 억울한 삶을 산 사람들의 피해 보상과 명예 회복을 위해서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기본법’(과거사법) 개정안이 하루빨리 국회에서 통과돼야 한다. 2005년 여야 합의로 설치된 진실화해위원회는 2010년까지 진상 규명을 위한 조사 활동을 한 뒤 기한 만료로 해산했다. 하지만 신청 기한의 제한과 짧은 조사 활동으로 상당수 피해자에 대한 조사가 완료되지 못했고, 형제복지원·선감학원 사건 등 아동·청소년을 강제수용한 국가폭력 사건이 뒤늦게 드러나면서 진실화해위원회의 활동을 다시 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국가는 가난하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는 논리를 앞세워 감금과 폭력을 묵인하고 정당화해왔다. 지금도 늦지 않았으니 그 안에서 살았던 사람들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한다.”

여 활동가는 “요즘도 서산개척단 피해자 분들이 서울에 오면 국회에 모시고 다니기도 하고, 인권위에 진정도 하러 다닌다”며 “모두 돌아가시기 전에 이분들의 목소리를 기록으로 남겨 이 같은 역사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권 단체의 이런 노력에도 ‘복지시설’에서 인권유린은 사라지지 않았다. 발바닥행동은 이를 근본적으로 없애려면 모든 수용 시설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 활동가는 “시설에서 삶과 시설 밖에서 삶이 어떻게 획기적으로 변할 수 있는지 똑똑히 목격했다. 이들은 우리의 이웃으로 함께 살아갈 때 가장 행복해한다”며 탈시설 운동의 중요성을 설명했다.

“앞으로 토론회 등을 통해 수용소 다크 투어의 사회적 의미를 정리하고, 여성·부마항쟁·광주민주화운동 등 주제별 다크 투어를 확산해가겠다.” 여 활동가는 “과거 청산과 피해 복구를 위해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기록해야 한다”며 “수용소 다크 투어는 그런 과정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싶다”고 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