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골목길 고택, 달빛 비추는 창살

성북구 최순우 옛집

등록 : 2019-06-13 16:04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을 때가 있다. 이런 마음이 든다면 성북구의 ‘최순우 옛집’(사진)에서 낯선 즐거움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툇마루에 앉아 새소리에 귀 기울이고, 고택의 정취를 한껏 느껴보는 시간이 될 것이다. 혜곡 최순우는 국립중앙박물관 제4대 관장이자 미술사학자로 박물관 전시, 유물 수집과 보존 처리, 연구는 물론 교육과 인재 양성 등에도 노력과 애정을 기울였다. 그런 그가 1976년부터 1984년 작고할 때까지 살았던 집으로, 2002년부터 시민문화유산으로 보존되고 있다.

성북구 성북로15길 9. 주소를 따라 성북동 한 골목으로 들어선다. 다세대주택 사이, 낯설기도 하고 반갑기도 한 한옥 한 채가 눈에 들어온다. 단단함이 느껴지는 명패와 반쯤 열린 대문 사이로 보이는 내부의 분위기에 끌려 어느새 발길은 최순우 옛집 안으로 향하게 된다.

대문 안에 들어서면 100년이 훌쩍 넘은 나무가 마당에 있고, 낯선 돌확과 네모 모양 우물이 눈길을 끈다. 정원의 푸름과 잘 어우러진 근대 한옥 모습이 멋스럽다. ‘ㄱ'자형 안채 건물과 ‘ㄴ’자형 바깥채 건물이 마주 보고 있어, 균형감 있게 ‘ㅁ’자형을 이뤘다. 마치 집이 마당을 감싸 안고 있는 것만 같아 안락함이 느껴진다.

‘杜門卽是深山’(두문즉시심산)이라고 적혀 있는 사랑방 현판은 그가 추구하던 삶의 방식을 잘 보여준다. ‘문을 닫으면 곧 깊은 산 속’이라는 뜻으로, ‘용’(用)자 창살을 통해 이곳의 뒤뜰 풍경을 보았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대목이다. 최순우 선생이 ‘가장 정갈하고도 조용할뿐더러 황금률이 적용된 쾌적한 비례의 아름다움을 갖추었다’는 평을 한 용(用)자 창살. 그는 실제로 방 안에서 창살을 통해 들어오는 달빛을 즐겼다고 한다.

창을 통해 맛본 뒤뜰을 가보니 마치 작은 숲속에 와 있는 듯해, 일상 속 여유를 느끼기에 제격이다. 툇마루에 앉아 평소에 미뤄두었던 책을 읽어도 좋고, 사색에 빠져도 좋다. 온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에도, 누군가와 함께 차분히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기에도 좋은 곳이다.

또한 ‘음악이 꽃피는 한옥’ ‘시민축제’ 등 시민과 함께하는 프로그램이 진행되기도 한다. 최순우 옛집 누리집(choisunu.com)에서 소식을 확인해볼 수 있다. 새로운 행사와 소식을 받아볼 수 있는 메일링 서비스도 있다. 공간의 여유로움과 예술의 아름다움, 함께하는 사람들의 에너지가 어우러져 더할 나위 없는 하루를 보낼 수 있다.

이곳을 찬찬히 둘러보다보면 어느새 자신을 투영시키고, 이 공간이 나에게 어떤 울림을 주는지 알 수 있다. 누군가는 이곳이 시민문화유산 1호라는 것에 의미를 둘 것이고, 또 누군가는 역사의 흔적에 여운을 느낄 것이다. ‘도심 속에서 휴식과 자연 치유를 할 수 있는 곳’ ‘고택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 ‘시민 문화 프로그램이 개최되는 곳’이 될 수도 있다. 이렇게 다양한 이름이 붙는 최순우 옛집에 오랫동안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기를 바란다.


글 이민주·사진 송의현

성북구 서울형 청년뉴딜일자리 사업 참여자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