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일상에서 이토록 수려한 것들을 쓰며 살 수 있었다니! 디자인 전시는 생활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게 해 준다. 금호미술관만 해도 2014년에 ‘KITCHEN, 20세기 부엌과 디자인’ 전시를 열어 순수예술의 본능적 울림과는 다른 현재를 누리는 즐거움을 주었다. 프랑크푸르트 부엌은 간결한 겉모습 속에 효율적 동선은 물론이고, 물 빠짐을 위해 선반을 사선으로 기울이며, 파리가 싫어하는 파란색을 썼다. 똘똘한 면면을 들여다보며 감탄을 거듭했다. 이런 장면에서는 볼거리를 넘어 합리적인 사고방식까지 배울 수 있어 요긴하다.
금호미술관의 디자인 전시는 어디서 저렇게 찾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컬렉션이 다채롭고, 지하부터 2~3층까지 가득 채워 보여 주기 때문에 보는 내내 풍요로움을 느낀다. 어린이 가구와 장난감을 진열한 이번 전시도 겹겹이 다른 맛을 씌운 막대 사탕을 녹여 먹는 기분이었다.
전시는 동화작가로만 알고 있던 브루노 무나리의 기능성 침대로 시작한다. 빨간 침대에 올려진 허리가 잘록한 고무 말 ‘로디’(RODY)를 보니 어쩐지 기분이 좋다. 내 생각일 뿐이지만, 어린이 물건이 주는 충족감은 특별하다. 그래서 장난감 앞에서 무너져 무모한 쇼핑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1층 안쪽에는 반투명한 공을 가득 채운 천국 같은 볼풀이 있다. 이정민 작가의 작품이다. 다행히 함께 간 아이들이 그곳에서 놀이에 몰입해 어른들은 느긋하게 전시실을 돌 수 있었다.
찰스&레이 임즈가 만든 장난감 겸 의자 ‘임즈 코끼리’, 의자와 책상이 연결된 장 푸르베의 학교 책상, 놀면서 조형감과 인지력, 상상력을 키울 수 있는 엔조마리의 나무 퍼즐 등 익숙한 이름과 실물이 반갑다. 장애아를 위해 만든 동물 장난감과 환경 보호의 의미를 담아 팸퍼스 기저귀 포장재로 만든 의자는 산뜻하지 않은데도 아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한다. 아이들의 선호 기준은 대체 무엇일까 싶다.
요람, 기차, 책상, 의자, 인형, 퍼즐 등 별별 것이 다 있다. 작은 사이즈, 알록달록한 색과 유려한 선을 지닌 물건들은 모두 달콤하다. 지하 1층에서 발견한 상자는 단연 사탕 맨 안쪽에 숨겨진 초콜릿맛 캐러멜이었다. 문도 달렸고, 책걸상도 있고 심지어 지붕 위에 올라가 잘 수도 있다.
루이지 콜라니의 1975년 작, ‘라펠키스트’(Rappelkiste). 식탁 밑에 들어가 놀고, 이불 굴을 만들어 아지트를 마련하던 어린 시절의 행복한 기억 때문인가. 이제 그런 ‘유치한’ 행동을 할 수 없으니 정신적으로나마 상자 속에 숨어본다. 라펠키스트가 ‘열광’이라는 뜻이라니 이런 기분이 맞는 듯하다.
전시가 끝날 무렵 실컷 논 아이들이 2층으로 올라오더니 “뭐야! 여기도 재밌잖아!” 하며 가구를 타고 논다. 어린이 물건 구경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재밌는 일이다. ‘BIG:어린이와 디자인’ 전시는 금호미술관에서 9월11일까지 열린다. 사진 금호미술관 제공
이나래 생활칼럼니스트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