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도 이탈리아 무더위, 외려 ‘요리 열정’ 자극

권은중의 나이 쉰에 떠난 이탈리아 요리 유학기 ⑨ 나이 어린 동기들에게서 깨달음 얻다

등록 : 2019-07-11 14:34
외국인 등록 위해 경찰서 찾던 날

많게는 25살까지 어린 6명 동기

인턴 생활 위해 전국 흩어졌다

한 달여 만에 다시 한자리에 모여

가슴속 쌓인 인턴 고달픔 쏟아내

폭염에 화상·땀띠 달고 살지만

청년 특유 에너지에 필자도 ‘충전’

다음 만날 땐 시원한 맥주 쏘리라


한국인 동기들이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 요리학교 실습실에서 초청 셰프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검은 모자를 쓴 학생 8명이 한국인 동기다.

7월1일 아침 8시30분. 이탈리아 피에몬테주 아스티역 앞 카부르 호텔에서 20분 이상 걸어서 아스티경찰서에 도착했다. 처음 가본 이탈리아 경찰서는 신입 기자 시절 열심히 드나들었던 한국의 경찰서와는 사뭇 달랐다. 위압적인 높은 담과 쇠창살이 없었다. 겉보기에는 우리나라 구청 건물처럼 생겼다.

이날 경찰서를 찾은 것은 외국인 등록을 하기 위해서다. 내가 가야 할 이민국 앞에는 벌써 5~6m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앉을 곳은 전혀 없었고 경찰서 앞에서 만난 한국인 동기들과 복도에서 하염없이 서서 기다려야 했다. 아스티시에 있는 ‘외국인을 위한 이탈리아요리학교’(ICIF)에서 졸업 전에 내게 준 서류의 예약 시간은 8시38분이었지만 이탈리아에서 시간이란 의미가 없다. 실제 경찰서 벽에 걸린 시계는 다 멈춰 있었다. 인턴을 하고 있는 토리노 외곽의 레스토랑에서 아스티경찰서까지 오는 데는 서너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전날인 6월30일 일요일 저녁 근무를 빠지고 아스티의 호텔에서 1박을 했는데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7월1일 오전 8시반 아스티경찰서 모습

이탈리아에서는 외국인 관리 업무를 경찰서에서 담당한다. 이날 나를 비롯해 한국인 동기 7명은 아스티의 경찰서에서 외국인 체류 등록을 해야 했다. 이날 외국인 등록은 20분가량 1 대 1 인터뷰를 한 뒤 옆방으로 건너가 10개 손가락은 물론 손바닥 지문까지 다 찍는 절차로 진행됐다.

‘나 게을러’라고 얼굴에 써 있는 듯한 40대 남자 경찰서 공무원이 내 서류를 처리하고 몇 가지 질문을 한 뒤 옆방으로 내 서류를 넘겼다. 옆방 문 앞에서 30분 넘게 기다리고 있었더니 요란한 반짝이 은색 옷에 흑인처럼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꼬아놓은 이탈리아 중년 여성이 실리콘 장갑을 끼고 친절하게(?) 내 손과 손가락과 손바닥을 그의 체중을 실어 꾹꾹 눌러가며 지문을 찍었다. 이탈리아 문화와 음식이 좋아서 이탈리아로 유학 온 나로서는 불쾌한 경험이었다. 한국이면 30분도 안 걸릴 외국인 등록 절차는 무려 3시간을 기다려 끝났다.

우리는 경찰서를 나와 아스티에서 중국인이 하는 무한리필 초밥집인 ‘료진’에 갔다. 이탈리아의 초밥집은 대부분 중국인이 해서 맛은 좀 떨어지지만 쌀밥과 김, 된장국만으로도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랠 수 있어 즐겨 먹었다. 이날 우리는 5월 말 학교를 떠나 각자 인턴 레스토랑으로 떠난 이후 처음으로 마주 앉았다. 한 달여 만에 동기들 얼굴을 보니 참 좋았다. 우리는 초밥을 먹으며 한 달밖에 안 됐지만 가슴속에 쌓아놓았던 인턴 생활의 고단함을 풀어놓았다.

이탈리아에서 초밥은 쌀밥과 김, 된장국을 제공해 한국에 대한 향수를 달래준다.

나도 날마다 숨 쉴 틈 없이 일해왔다고 생각했지만 나보다 더 심한 노동에 시달리는 동기도 많았다. 동기 중에 한 명은 손님이 15명이 되지 않을 경우 설거지 담당자를 부르지 않기 때문에 손님이 없는 주중에는 자기가 설거지한다고 말해 우리를 놀라게 했다. 또 그날 새벽 2시에 끝나고 아침에 일어나서 기차를 타고 와 내내 지친 동기도 있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해 주방에 단 3명밖에 없어서 점심 영업이 끝난 이후에 휴식 시간이 없다고도 했다. 점심 영업 뒤 쪽잠이 얼마나 유용한지 잘 알기에 그가 안쓰러웠다.

격무보다 동기들이 힘들어하는 것은 더위였다. 이탈리아는 6월 말에 이미 최고 기온이 38도까지 올라갔다. 6월인데도 새벽 4시쯤 더위 탓에 일어나 샤워를 하고 다시 잠을 잔다는 동기도 있었다. 이탈리아의 8월은 최고 기온이 40도가 넘는다며 벌써 걱정하기도 했다. 6명 가운데 기숙사 자기 방에 에어컨이 있는 사람은 1명밖에 없었다. 자상과 화상은 일상이었고 입안이 헐거나 땀띠로 고생하는 동기도 있었다. 화상과 땀띠는 나도 늘 겪고 있는 고통이다. 그동안 단체채팅방에 가끔 올라왔던 이야기였지만 실제로 만나서 들어보니 더 생생하고 더 처절했다.

내가 인턴 실습 중인 레스토랑의 하루 할 일 목록. 이 많은 일을 시간 안에 끝내려면 아침 9시부터 저녁 11시까지 쉴 새 없이 일해야 한다.

동기들에 견주니, 내 인턴 생활은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점심시간 뒤 4시부터 6시까지 휴식 시간도 주고 일주일에 이틀을 쉬는 사람도 내가 유일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있는 레스토랑은 국립공원 바로 옆이라서 새벽에는 추워서 두꺼운 솜이불을 덮고 자야 했다.

또 동기들은 셰프가 나에게 직접 지시한다는 점을 부러워했다. 대부분의 동기는 20~30대의 수셰프(부주방장)나 파트장 지시를 받는 반면 나는 셰프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을 때가 많았다. 학교의 초청 강사를 할 정도로 경험 많은 셰프가 직접 요리를 코치하면 더 많이 배울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게 동기들의 논리였다.

날마다 셰프가 고리눈을 뜨고 호통을 쳐서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나를 부러워하는 게 처음에는 의아했다. 그러나 생각해보니 동기들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셰프가 무심코 시키는 듯한 조리법은 상당히 유용했다. 또 호통을 많이 치긴 하지만 가끔은 칼질까지 지도할 정도로 자상한 면도 있다(물론 호통치는 게 열 번 이상이면 지도하는 건 한 번쯤이긴 하다). 천국과 지옥은 관점의 차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내가 인턴으로 일하는 레스토랑 셰프가 만든 라구소스 타야린.

깊은 맛의 라구소스와 찰떡 궁합이다.

대부분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인 동기들은 폭염와 강도 높은 노동에 분명 지쳐 있었다. 그러나 요리에 대한 열정은 졸업 전보다 오히려 더 강해진 듯했다. 사실 전쟁터인 레스토랑에서 배우는 것은 훈련소쯤인 학교에서 배우는 것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그런 레스토랑에서 일하다보니 생각하는 게 많아진 듯했다. 한 단계 한 단계 더 높은 곳으로 도약하고 싶어 하는 청년 특유의 에너지가 느껴졌다.

우리는 초밥집에서 나와 아스티에서 가장 유명한 젤라토 집에서 젤라토를 먹고 커피를 한잔 더 한 뒤 오후 4시쯤 아스티역 앞에서 헤어져 각자의 레스토랑으로 돌아갔다. 이날 동기들과 만남은 이탈리아 경찰서에서 겪은 불쾌함을 한순간에 추억으로 만들어주는 마술을 경험하게 했다. 그리고 내가 직면한 인턴 생활의 현실을 좀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발상의 전환점도 찍어줬다. 이탈리아 경찰서에서 지문 찍고 온 이날, 나는 나보다 많게는 25살이나 어린 동기들에게 순백의 두부 같은 깨달음을 얻을 수 있었다. 다음에 만나면, 동기들에게 초밥은 못 사더라도 시원한 맥주라도 한 병씩 쏴야 할 것 같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