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와 파괴의 인도 신 이야기가 넘치는 곳

서울의 작은 박물관 ⑨ 서초구 서초1동 인도박물관

등록 : 2019-07-11 14:44
12살 때 타고르 시에 영감받은

김양식 시인이 2011년 문 열어

브라흐마·비슈누·시바 힌두교 3 신과

손오공 원형 ‘하누만’ 등 이야기 빼곡

서울에서 인도를 여행한다? 인도박물관에 가면 신의 나라 인도를 알게 된다. 전시품 옆 안내판의 간단한 설명도 재미있다. 인도 사람들의 생활과 함께하는 신들의 이야기를 알게 되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열두 살에 타고르 시에 영감을 받아 시인이 된 김양식 관장의 인도 사랑 40여 년이 박물관에 있다.

타고르에서 인도박물관까지


“타고르가 상처하고 아이들을 키우며 아이들에게 들려준 이야기가 시집 <초승달>에 수록된 시들입니다. 타고르 자신도 어머니 얼굴을 모르고 자랐어요.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들 마음을 누구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거죠. 타고르는 그런 마음으로 시를 지어 아이들에게 들려주었답니다.”

인도의 금속공예품과 오래된 목·석조물, 인도 화가의 회화 작품을 전시하는 전시장에서 김양식 인도박물관 관장은 눈앞에 가득한 전시품과 박물관 소개에 앞서 타고르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어떻게 보면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사람이 타고르였다. 그의 나이 열두 살, 친오빠가 건네준 타고르 시집 <초승달>은 그를 시인의 길로 인도했다.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등단하고, <하늘 먼 자락에 구름 날리면> <초이 시집> 등 시집과 수필집 여러 권을 냈다.

창작과 집필의 여정에서 함께했던 것이 타고르의 시였다. 그에게 시의 영감을 선물한 <초승달>은 물론 타고르의 또 다른 시집 <기탄잘리>를 번역하는 일은 어쩌면 숙명이 아니었을까? 마흔을 넘긴 나이에 동국대학교 대학원 인도철학과에 입학하게 된 것도 그 길의 하나였다.

장신구와 보석들

1975년 그는 타고르의 나라 인도에 첫 발자국을 찍는다. 아시아 시인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인도에 갔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곳에서 인도의 문화유산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 후로 수십 차례 인도 유적지를 찾아다니며 문화유산을 섭렵했다. 유적지 주변에 깨진 채 굴러다니는 유적을 보면 안타까웠다. 그렇게 하나둘씩 그의 마음을 채운 인도의 문화유산을 국내에 소개하고 싶은 마음이 깊어졌다. 그리고 2011년 인도박물관의 문을 그가 열었다.

은하수의 물줄기가 땅으로 흘러 생긴 강, 갠지스

인도박물관 전시관이 있는 2층으로 가는 길, 1층 복도에서 사람들을 반기는 것은 힌두교에서 예술과 학문 등을 관장하는 여신 ‘사라스바티’였다. 사라스바티는 힌두교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의 아내다. 둘 사이에서 인류의 시조인 ‘마누’가 태어났다고 한다. 인도의 예술과 문화를 볼 수 있는 전시관으로 가는 길, 사라스바티의 마중에 의미가 실린다.

인도박물관 1층 복도에 있는 사라스바티

2층 전시관의 문이 열리면 인도 전통 타악기인 만지라를 연주하는 여인과 벽걸이 종, <21세기 타고르>라는 제목의 타고르 그림, 코끼리 상이 사람들을 맞이한다. 그리고 펼쳐지는 인도의 향연, 인도의 금속공예품과 오래된 목·석조물, 인도 화가의 회화 작품 등 150여 점의 전시품들이 인도를 보여준다.

전시장 한쪽에 인도의 전통 현악기인 비나를 연주하는 사라스바티 상이 보인다. 그 뒤에 각각 다른 상황과 동작을 양각한, 문처럼 생긴 커다란 나무판이 있다. 사라스바티의 비나 연주를 들으며 그 문을 통과하면 인도의 오래된 어느 사원에 도착할 것 같았다.

그다음에 눈에 들어온 건 ‘시바’의 상이었다. 시바는 ‘브라흐마’ ‘비슈누’와 함께 힌두교의 세 주신 가운데 하나다. 파괴와 재창조를 담당한다. 이마 가운데 있는 제3의 눈에서 나오는 빛으로 모든 것을 태워버린다고 한다. 천상에서 내려온 갠지스 강을 머리에 이고 있다.

시바 상의 머리에 조각된 물방울이 갠지스 강을 형상화한 것이다. 언제 끝날지 모르던 지독한 가뭄, 신은 하늘의 은하수에 흐르는 물을 땅으로 흐르게 해서 생명을 구했다. 그 물길이 갠지스 강이다. 그러니까 갠지스 강은 하늘과 연결된 물길이며 신의 선물이자 생명을 구원하는 물인 것이다.

시바 상

신들의 이야기 따라 인도 여행

시바 상 옆에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신, 비슈누의 조각상이 있다. ‘가루다’(신화에서 새의 모습을 한 신성. 인도박물관에서는 독수리라고 한다)를 타고 코끼리를 구하는 비슈누 이야기를 커다란 나무판에 조각한 것이다.

강가에서 악어에게 물린 코끼리는 조각판 아랫부분에 있다. 코끼리는 인간의 영혼, 강은 윤회, 악어는 세속적인 충동을 의미한다고 한다. 비슈누는 아내 ‘락슈미’와 함께 인간 형상을 한 가루다를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자신의 법을 상징하는 원반(차크라)을 던져 인간의 영혼을 세속적 충동으로부터 해방한다는 내용이다. 악어의 목에 차크라가 꽂혀 있는 것이 보인다.

가루다를 타고 코끼리를 구하는 비슈누

브라흐마와 그의 부인 사라스바티가 함께 조각된 상도 있다. 창조의 신인 브라흐마와 그의 부인은 지식과 지혜의 상징인 거위(백조)를 타고 있다.

다른 전시품으로 눈길을 돌린다. 비슈누는 세상의 질서를 유지하는 일을 맡은 10개의 분신을 가지고 있다. 그것을 일컬어 아바타라고 한다. 비슈누의 여덟 번째 아바타이자, 인도의 서사시 <마하바라타>에서 영웅으로 그려진 ‘크리슈나’ 상에도 눈길이 머문다. 시바와 파르바티 사이에서 태어난 ‘가네샤’는 코끼리의 얼굴을 하고 있으며, 재복과 번영의 신이다.

가네샤

손오공을 닮은 원숭이 상 이름은 ‘하누만’이다. 선한 원숭이 왕국의 장군이다. 선한 원숭이 왕국과 악한 원숭이 왕국의 전쟁에서 대활약을 펼친다. 분신도 만들고, 구름을 타고 다니며, 성격이 급하고 활기차다. 중국 손오공의 캐릭터와 꼭 닮았다고 생각하며 물어봤더니 손오공 이야기의 원형이 하누만이란다.

신들의 이야기에 시간 가는 줄 몰랐던 인도박물관에서의 반나절, 그 여운이 길다.

하누만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