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대사 잘 잊어도 인생 공부 깊어져요”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소속 시니어 연극단 ‘대학노애’ 최고령 연극인 김상미씨
등록 : 2019-07-11 15:12 수정 : 2019-07-11 16:54
연기 인생 9년차 ‘베테랑 배우’
고독사 등 노인 문제 자주 다뤄
내성적 성격 많이 밝아지고
아들에 전화할 틈도 없이 바빠져
“젊을 때와 달리 암기가 잘되지 않아요. 대사를 달달 외웠는데도 무대에 서면 순간 잊어버려요. 이것뿐만 아니고 일상생활도 그래요.”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연극단 ‘대학老愛(노애)’ 최고령 단원인 김상미(76)씨는 아무리 연습을 열심히 해도 돌아서면 대사를 잊어버리곤 한다고 했다. 그래서 날마다 대본을 들고 다니면서 시간 날 때마다 연습한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지 대본이 너덜너덜했다. 6월28일 종로노인종합복지관에서 시니어연극제 공연 준비로 바쁜 김씨를 만났다.
“대사가 기억 안 날 때도 맥락에 맞는 대사를 해 크게 실수한 적은 없죠. 오래한 사람은 그게 돼요.”
9년차 연극인인 김씨는 순간 대사를 깜빡해도 임기응변을 발휘해 대본과는 다르지만 극 흐름에 어긋나지 않는 대사를 쳐서 위기를 넘기는 ‘베테랑’이 됐다. 김씨는 2011년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연극단 ‘빨래터’ 창단 멤버로 연극을 시작했다. 당시 복지관 게시판에 붙어 있는 단원 모집 내용을 보고, 칠십 평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망설여질 법도 했지만 그저 재밌겠다는 생각에 도전했다고 했다. 빨래터는 2014년에 극단 명칭이 ‘대학노애’로 바뀌었다. 극단이 있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이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와 가까워 ‘대학로를 사랑하는 노인들’이라는 의미로 극단 이름을 정했다. 대학노애는 65살 이상 노인 12명으로 구성된 시니어 연극단으로, 김씨는 극단에서 최고 연장자이면서 가장 오래 연극을 해왔다. 대학노애는 주로 노인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다. 올해 작품 <다함께 차차차>는 고독사를 주제로 단원들이 함께 고독사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대본으로 썼다. 이 작품은 고독사로 이어지는 노인의 외로움과 소외를 노인의 시각으로 다룬 작품으로, ‘고독사를 방지하려면 서로 대화하고 정을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노애는 1일부터 5일까지 종로노인종합복지관 4층 종로마루홀에서 열린 제3회 서울시니어연극제에 참가해 1일 <다함께 차차차>를 공연했다. 김씨는 이번 연극제를 위해 2월부터 대본 읽기를 시작으로 5월부터는 매주 1~2회, 매회 2시간씩 맹연습해왔다. 그는 이 작품에서 술주정뱅이인데다 괴팍한 욕쟁이 노인 ‘독수리2’ 역을 맡았다. “욕쟁이 노인의 대사는 거친 말투가 포인트예요. 평소에 제가 쓰지 않는 말투와 단어가 많아 힘들어요.” 착한 사람이라서 평소 욕 같은 걸 할 줄 모른다면서도 “욕쟁이 노인은 남몰래 죽음을 생각하고, 외롭게 살다보니 성격이 부정적으로 변해 괴팍해진 것 같아요”라며 ‘독수리2’를 동정했다. ‘독수리2’에게는 딸이 하나 있지만 서로 왕래도 잘하지 않고 떨어져 살다보니 대화도 없다. “(딸이) 괜히 바쁜데 신경 쓰일까봐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고 말하기가 어렵더라고. 그게 부모 마음이잖아.” 극에서 내뱉는 김씨의 대사는 현실을 사는 김씨의 처지와 닮았다. 김씨는 아들 부부와 바빠서 자주 연락 못하지만 생일이나 명절에 찾아오고, 가끔 식사도 같이한다고 했다. “연극을 하기 전에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지만 연극을 하고부터 오히려 내가 바빠서 전화할 새가 없어요”라고 웃으며 “대학생들보다 내가 더 바빠요” 하고 덧붙였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 없다. “내 욕심엔 날마다 보고 싶지요. 먼저 연락하고 싶지만 일하느라 바쁜데 방해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돼서 망설여요.” 대학노애의 연출은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박상준씨가 맡았다. 노인과 아마추어 연극단에 관심이 많은 박 감독은 5년 동안 대학노애를 이끌었다. 시니어 연극단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연극계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섭외해 연기 지도도 한다. 김씨는 2011년 <신판 심봉사전>에서 심청이를 공양미 300석에 사가는 상인 역을 시작으로 <경로당 폰팅 사건>(2012~2013년), <지상 최고의 댄서>(2014년), 제1회 서울시니어연극제 출품작 <삼시 세끼>(2015년) 등에 출연했다. 2016년에는 <생애사 옴니버스 연극>으로 제2회 서울시니어연극제 개인연기상을 받을 만큼 연기력이 좋아졌다. 김씨는 <007 핸드폰>(2017년), <삼시 세끼>(2018년) 리메이크작 등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김씨는 새벽 3시께 일어나 밤 10시께 잠자기 전까지 바쁘게 살아간다. 하루의 대부분을 복지관에서 보내는데, 연극 외에 사진도 배운다. 또한 미디어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복지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찍은 영상을 편집해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2017년에는 김씨 어머니를 직접 찍은 영상을 영화 형식으로 편집해 만든 <어머니의 독백>을 노인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김씨는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연극을 계기로 대화도 많이 하고 밝아졌다고 한다. “뭐든지 배우려고 애쓰고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죠.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나이도 잊고 성취감을 느껴요.”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6월28일 종로노인종합복지관 3층 회의실에서 시니어 연극단 ‘대학노애’ 최고령 단원인 김상미씨가 대본을 읽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9년차 연극인인 김씨는 순간 대사를 깜빡해도 임기응변을 발휘해 대본과는 다르지만 극 흐름에 어긋나지 않는 대사를 쳐서 위기를 넘기는 ‘베테랑’이 됐다. 김씨는 2011년 종로노인종합복지관 연극단 ‘빨래터’ 창단 멤버로 연극을 시작했다. 당시 복지관 게시판에 붙어 있는 단원 모집 내용을 보고, 칠십 평생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어 망설여질 법도 했지만 그저 재밌겠다는 생각에 도전했다고 했다. 빨래터는 2014년에 극단 명칭이 ‘대학노애’로 바뀌었다. 극단이 있는 종로노인종합복지관이 연극의 메카인 대학로와 가까워 ‘대학로를 사랑하는 노인들’이라는 의미로 극단 이름을 정했다. 대학노애는 65살 이상 노인 12명으로 구성된 시니어 연극단으로, 김씨는 극단에서 최고 연장자이면서 가장 오래 연극을 해왔다. 대학노애는 주로 노인 문제를 연극으로 만들어 사회적 메시지를 전한다. 올해 작품 <다함께 차차차>는 고독사를 주제로 단원들이 함께 고독사에 대해 나눈 이야기를 대본으로 썼다. 이 작품은 고독사로 이어지는 노인의 외로움과 소외를 노인의 시각으로 다룬 작품으로, ‘고독사를 방지하려면 서로 대화하고 정을 나누면서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대학노애는 1일부터 5일까지 종로노인종합복지관 4층 종로마루홀에서 열린 제3회 서울시니어연극제에 참가해 1일 <다함께 차차차>를 공연했다. 김씨는 이번 연극제를 위해 2월부터 대본 읽기를 시작으로 5월부터는 매주 1~2회, 매회 2시간씩 맹연습해왔다. 그는 이 작품에서 술주정뱅이인데다 괴팍한 욕쟁이 노인 ‘독수리2’ 역을 맡았다. “욕쟁이 노인의 대사는 거친 말투가 포인트예요. 평소에 제가 쓰지 않는 말투와 단어가 많아 힘들어요.” 착한 사람이라서 평소 욕 같은 걸 할 줄 모른다면서도 “욕쟁이 노인은 남몰래 죽음을 생각하고, 외롭게 살다보니 성격이 부정적으로 변해 괴팍해진 것 같아요”라며 ‘독수리2’를 동정했다. ‘독수리2’에게는 딸이 하나 있지만 서로 왕래도 잘하지 않고 떨어져 살다보니 대화도 없다. “(딸이) 괜히 바쁜데 신경 쓰일까봐 보고 싶어도 보고 싶다고 말하기가 어렵더라고. 그게 부모 마음이잖아.” 극에서 내뱉는 김씨의 대사는 현실을 사는 김씨의 처지와 닮았다. 김씨는 아들 부부와 바빠서 자주 연락 못하지만 생일이나 명절에 찾아오고, 가끔 식사도 같이한다고 했다. “연극을 하기 전에는 아들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했지만 연극을 하고부터 오히려 내가 바빠서 전화할 새가 없어요”라고 웃으며 “대학생들보다 내가 더 바빠요” 하고 덧붙였다. 하지만 말은 이렇게 해도 자식을 보고 싶은 마음은 숨길 수 없다. “내 욕심엔 날마다 보고 싶지요. 먼저 연락하고 싶지만 일하느라 바쁜데 방해되는 것은 아닐까 걱정돼서 망설여요.” 대학노애의 연출은 대학로에서 활동하는 박상준씨가 맡았다. 노인과 아마추어 연극단에 관심이 많은 박 감독은 5년 동안 대학노애를 이끌었다. 시니어 연극단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연극계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을 섭외해 연기 지도도 한다. 김씨는 2011년 <신판 심봉사전>에서 심청이를 공양미 300석에 사가는 상인 역을 시작으로 <경로당 폰팅 사건>(2012~2013년), <지상 최고의 댄서>(2014년), 제1회 서울시니어연극제 출품작 <삼시 세끼>(2015년) 등에 출연했다. 2016년에는 <생애사 옴니버스 연극>으로 제2회 서울시니어연극제 개인연기상을 받을 만큼 연기력이 좋아졌다. 김씨는 <007 핸드폰>(2017년), <삼시 세끼>(2018년) 리메이크작 등으로 꾸준히 작품 활동을 이어왔다. 김씨는 새벽 3시께 일어나 밤 10시께 잠자기 전까지 바쁘게 살아간다. 하루의 대부분을 복지관에서 보내는데, 연극 외에 사진도 배운다. 또한 미디어봉사단 활동을 하면서 복지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찍은 영상을 편집해 인터넷에 올리기도 한다. 2017년에는 김씨 어머니를 직접 찍은 영상을 영화 형식으로 편집해 만든 <어머니의 독백>을 노인 영화제에 출품하기도 했다. 김씨는 내성적이었던 성격이 연극을 계기로 대화도 많이 하고 밝아졌다고 한다. “뭐든지 배우려고 애쓰고 도전해봐야겠다는 생각이죠. 그렇게 노력하다보면 나이도 잊고 성취감을 느껴요.”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