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주여성과 함께하니 제 삶도 넓어져”

결혼이주여성들과 마을기업 키워가는 전명순 마을무지개 대표

등록 : 2019-07-18 15:26
2007년 한국어 교실 봉사로 인연

이주여성 8명, 주민 4명 힘 모아

다문화 교육, 케이터링 사업

“더 많은 이주여성 같이 일하길”

다문화 마을기업 ‘마을무지개’는 은평구 대조동에서 다문화 음식점 ‘루덴스키친, 타파스’를 운영한다. 11일 가게에서 전명순(뒷줄 오른쪽 두 번째) 대표가 베트남·필리핀·중국 결혼이주여성 직원들과 함께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운명처럼 이끌려 12년째 해왔어요. 어렵고 힘들지만 한 단계씩 나아가 현재까지 온 것 같아요.”

지난 11일 은평구 대조동 다문화 음식점 ‘루덴스키친, 타파스’에서 만난 전명순(56) 마을무지개 대표는 그간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가는 듯했다. 마을무지개는 결혼이주여성들과 주민이 함께 운영하는 마을기업이자 사회적기업이다. 현재 이주여성 8명과 주민 4명(상근 4명, 비상근 8명)이 다문화 교육과 음식점, 케이터링(행사나 연회에 음식을 공급하는 것) 사업을 한다. 최근 행정안전부가 지역사회에 공헌하면서 꾸준히 운영해온 마을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고도화 사업에 선정되기도 했다.

전 대표와 이주여성들의 인연은 우연히 시작됐다. 2007년 전업주부였던 그가 어린이도서관 봉사활동을 막 시작했을 때였다. 국문학 전공자라 아이들 독서교실을 열었다. 취미로 중국어도 배웠다. 때마침 도서관이 있는 동주민센터에서 ‘한국어 교실’이 열렸다. 은평구는 결혼이주여성이 서울 자치구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곳이라, 이들의 한국 생활 적응을 돕기 위해서 마련됐다.


그는 중국어 말하기 연습을 해볼 요량으로 도우미 교사로 참여했다. 8개 나라(베트남·필리핀·중국·캄보디아·타이·몽골·러시아·일본)에서 온 10여 명의 수강생과 가까워지면서 이들의 고충을 알게 됐다. 한국에 산 기간이 일주일부터 3년여까지 다양했고, 젊은 나이에 엄마가 된 이들도 꽤 있었다. 낯선 환경과 문화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도와주고 싶어 바느질, 글쓰기, 기타 등 문화 프로그램을 열었다. 그런데 실제로 많은 이주여성이 가장 바라는 것은 경제활동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체로 넉넉지 않은 집안 형편에 보탬이 되고 싶어 했다. 한국어가 서툰 이들이 할 수 있는 부업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전 대표는 이들의 모국 문화 이야기가 학생들에게 다문화 교육으로 좋겠다는 생각에 도서관 프로그램으로 한번 해 보자고 제안했다. “이주여성들은 처음엔 가르친 경험이 없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평소 우리에게 얘기하듯 하면 된다고 설득해 시작했어요.” 정원 20명에 40명이 신청할 정도로 반응이 좋아, 이후엔 유치원 프로그램으로 이어졌다. 서울시 교육청 공모사업에 참여해 한국인 강사와 다문화 강사가 2인 1조로 짝을 맞춰 초등학교의 특별 수업으로도 진행했다. 마을기업 ‘마을엔’의 팀이 되어 활동을 넓혀갔다. “카페 운영, 도시 텃밭, 다문화 교육 3개 분야 사업을 동시에 진행하다보니 중간에 지원금 반납을 고민할 정도로 운영이 힘들었어요.”

마을기업 2차 연도에 마을엔에서 독립해 ‘마을무지개’를 창업했다. 기업 운영 경험이 없었던 전 대표는 이주여성들과 하나하나 같이 배워나갔다. 2014년 은평구 사회적경제허브센터에 입주하면서 또 한 번의 성장을 하게 된다. 다문화 교육 사업은 방학과 학년 초의 매출 없는 ‘보릿고개’ 시기가 문제였다. 강사는 많아지는데 살림살이가 넉넉지 않았다. 월례회의 때 밥값이라도 줄여보자고 각자 자기 나라 음식을 만들어 돌아가며 점심을 챙기기로 했다.

첫 번째로 베트남 쌀국수를 준비했다. 지나가던 옆 사무실 직원들이 와서 쌀국수를 맛보고 “이거 어디서 시켰어요?”라고 물을 정도로 반응이 좋았다. 센터의 협조를 받아 입주자를 대상으로 매주 수요일 점심에 주문을 받아 도시락을 만들어 팔았다. “5천원이라 수익은 거의 없었지만, 경험을 쌓아 케이터링 사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케이터링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자체 조리시설 마련이 필요했다. 공간을 알아보면서, 다문화 음식점도 같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위에선 음식점을 하면 반년도 못 버틴다고 걱정했다. “직원들과 머리를 맞대고 의논했는데, 다들 한번 해보자고 해 용기를 냈어요. 늘 그랬듯이 할 수 있는 만큼만 해보자는 마음으로 골목길의 8평짜리 공간을 마련했어요.” 이름 ‘타파스’는 스페인의 음식 이름이다. 한입 음식으로 종류가 2천여 가지에 이를 정도로 다양해, 다문화 음식점 특성에 어울려 전 대표가 지었단다.

지난해 새로운 기회가 왔다. 지하철 3호선 불광역 3번 출구 부근에 있는 50평 규모의 공간으로 옮긴 것이다. 올 10월 임대계약 만기를 앞둬 고민이지만 전 대표는 “늘 어려운 문제들이 생기지만, 새로운 좋은 일이 생길 거라 믿어요”라고 웃으며 말한다. 함께 일하는 이주여성들이 밝고 씩씩해 힘이 된단다.

전 대표는 이주여성들과 함께하면서 자신의 삶이 바뀌었다고 한다. “세상을 보는 시야도 넓어졌고, 무엇보다 이주여성들이 일할 곳을 만들고 다문화에 대한 인식을 바꿔 나가는 일을 해 보람을 느껴요.” 그는 이들이 우리 사회가 다문화 사회로 잘 안착하는 데 몫을 할 거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앞으로의 바람을 묻는 말에 전 대표는 주저 없이 “함께하는 이주여성들이 계속 일할 수 있고, 더 많은 이주여성이 같이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