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문화재단 주최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 29일 대규모 폐막 공연
서울시향 단원 25명,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단원과 ‘신세계로부터’ 등 연주
지난 13일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5층 서울시향 대연습실에서 서울시립교향악단 단원들과 생활예술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윌슨 응 서울시향 부지휘자의 지휘 아래, 29일 제6회 ‘서울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 폐막식에서 연주할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4악장을 함께 연습했다. 손홍주 <씨네21> 기자
“56마디에선 악센트를 강하게 줘야 해요. 58마디부터 62마디까지는 음정이 어려우니 천천히 가보지요. 자, 이런 리듬이에요. 따라라란따랏따….”
지난 14일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4층 연습실. 서울시립교향악단 제1바이올린 연주자 두루미 단원이 설명하며 바이올린 활을 켜자, 박정용(16)군은 한 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두 귀를 쫑긋 세웠다.
박군은 올해 중학교 3학년이지만 바이올린을 배운 지는 11년이나 됐다. 만 6살 이후 바이올린을 손에서 놓지 않은 그는 현재 경기도 남양주시 화도청소년오케스트라에서 악장을 맡을 정도로 또래들 사이에서는 실력을 인정받는다. 그런 박군이지만 “어제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서울시향 단원에게 레슨받는 귀한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다. 박군과 함께 두루미 단원에게 레슨받는 다른 아마추어 바이올린 연주자 5명도 다들 긴장한 표정이었다.
바이올린뿐만이 아니다. 이날 세종문화회관 연습실에선 비올라, 호른, 더블베이스, 트롬본, 오보에, 첼로, 클라리넷, 플루트, 튜바, 바순 등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갖가지 악기 소리가 울려퍼졌다. 두루미 단원을 비롯해 서울시향의 또 다른 제1바이올린 연주자 양유진, 플루트 연주자 송연화, 튜바 연주자 지승렬 등 18명의 서울시향 단원이 전체 56명의 생활예술오케스트라 단원을 지도했다. 모두 서울문화재단에서 주최하는 ‘제6회 서울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에 참여한 아마추어 연주자들이다.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는 서울문화재단이 2014년부터 해마다 진행하는 ‘시민 누구나 음악의 주인공이 되는 축제’다. 20명 이상 단원으로 이루어진 생활예술오케스트라가 참가 신청을 하면, 소정의 심사를 거쳐 참가팀을 선정한다. 선정된 팀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할 기회를 얻는다. 올해는 이런 과정을 거쳐 선발된 30개 생활예술오케스트라와 서울시교육청이 선발한 9개 학생 오케스트라, 그리고 2016년 서울시에 재학 중인 학생들을 중심으로 창단한 서울학생필하모닉오케스트라가 참가해 21일부터 29일까지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을 벌인다.
아마추어 오케스트라단으로서는 국내 최고 무대인 세종문화회관에 선다는 것은 ‘꿈의 무대’에 서는 것과 같다. 하지만 올해는 여기에 더해 더욱 꿈같은 일이 벌어졌다. 국내 최고라 평가받는 서울시향 단원들이 생활예술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지도한 것이다. 서울시향 단원들이 이렇게 많은 아마추어 연주자들을 지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마스터 클래스’라 이름 붙인 이 프로그램은 폐막식 공연을 멋지게 장식하기 위해 마련했다.
올해 폐막식 공연은 역대 서울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 행사 중에서도 최고의 무대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서울시향 단원 25명과 마스터 클래스에서 시향 단원들의 지도를 받은 생활예술오케스트라 단원 56명, 그리고 국악 등을 하는 시민 29명, 모두 110명이 함께 오케스트라 무대를 구성해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제9번 <신세계로부터> 4악장 등을 연주할 것이기 때문이다. 서울시향 단원들과 아마추어 오케스트라 연주자들이 대규모로 함께 무대에 서는 이런 합동 공연도 처음 있는 일이다.
서울문화재단이 이런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은 생활예술오케스트라를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더욱 활성화하기 위한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생활예술오케스트라는 싹 트는 단계다. 자치구나 학교, 백화점 문화센터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생활예술오케스트라가 생겨나지만, 아직은 몇 개나 있는지 실체 파악조차 안 된 상태다. 하지만 생활예술오케스트라에 참여하는 아마추어 연주자들의 열의는 굉장히 높다.
마스터 클래스에서 서울시향의 고관수 단원에게 오보에 레슨을 받은 최창실(61)씨는 오보에 연주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약사인 최씨는 2011년 발레 공연 <백조의 호수>를 보다 절묘한 순간에 터져나오는 오보에 독주 소리에 빠졌다. ‘높은 소리의 나무 피리’라는 어원을 가진 오보에가 내는 높고 날카로운 음색에 반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흔치 않은 악기여서 레슨해줄 연주자를 찾기조차 쉽지 않았다고 한다. 최씨는 어렵게 개인 강사를 섭외하고 연습 시간 확보를 위해 약국을 대리 약사에게 맡기며 오보에 레슨에 열중했다. 현재 청량리 롯데백화점에서 운영하는 샤롯아마추어오케스트라에서 활동 중인 그는 이번 마스터 클래스가 자신의 오보에 연주 실력을 점검해보고 한 단계 더 나아갈 수 있는 시간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서울시향 단원들, 비올라·호른·오보에 등 악기별 특별 레슨
아마추어 단원들 57명 ‘꼼꼼’ 지도
국내 처음…생활예술 활성화 노력
“따뜻한 마음, 소통하는 연주 될 것”
베를린에선 프로·아마 1천 명 협연
13일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5층 서울시향 대연습실에서 ‘마스터 클래스’ 레슨을 마친 서울시교향악단 단원과 생활예술오케스트라 단원이 나란히 섰다. 왼쪽부터 박정용(제1바이올린)군, 서울시향 송연화(플루트) 단원, 박화나(제1바이올린)씨, 최창실(오보에)씨, 대학생아마추어연합오케스트라(AOU) 실무자 조현진(제2바이올린)씨, 서울시향 양유진(제1바이올린) 단원, 조기호(베이스)씨. 손홍주 <씨네21> 기자
서울문화재단이 이렇게 생활예술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열정을 서울시향 단원들의 레슨을 통해 ‘실력 향상’으로 이끌고자 하는 것은 그 과정에서 생활예술오케스트라 활동이 좀더 활발해지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사실 오케스트라 선진국이라고 할 수 있는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는 이미 이런 협력사례가 적지 않다. 서울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축제의 예술감독을 맡은 황미나 지휘자는 대표 사례로 독일에서 열리는 ‘심포닉 몹행사’를 꼽았다. 황 감독은 “심포닉 몹은, 오케스트라 연주를 한국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플래시 몹’ 같은 행사”라고 설명했다.
2014년 여름 처음 해본 이 행사는 그해의 연주곡을 공지한 뒤, 정한 날짜에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모든 연령대의 전문 음악가와 아마추어 음악가가 한곳에 모여 하나의 대규모 오케스트라로 합동연주를 하는 것이다. 2016년 5월의 ‘심포닉 몹’ 때는 1천 명 이상의 참가자가 함께했을 정도로 대중적인 인기가 높다.
이 야심찬 행사가 이루어질 수 있는 것도 베를린에 있는 도이치심포니오케스트라(DSO, https://www.dso-berlin.de)가 서울시향처럼 중추가 되기 때문이다. 영국에서 바이올린을 전공한 양유진 단원은 “영국은 자그마한 동네에서도 아마추어 오케스트라가 조직돼 있는 등 오케스트라가 상당히 많다”며 “심포닉 몹도 베를린에서 이런 오케스트라의 대중화가 돼 있기에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날 마스터 클래스를 마친 생활예술오케스트라 단원들은 폐막식 연주에 더욱 기대가 된다고 한다. 법무법인 율촌에 근무하는 베이스 연주자 조기호(43)씨는 “서울시향 단원에게 레슨을 받는다고 하니, 프로 베이스 연주자인 아내가 살짝 부러워하는 듯했다”며 “폐막식 공연이 멋지게 마무리되도록 노력하겠다”고 했다. 친구들과 함께 ‘본 오케스트라’라는 생활예술오케스트라를 꾸려가는 조씨는 대학 재학 시절 학교 오케스트라에서 ‘수석’을 지낸 바 있다.
춘천에서 마스터 클래스에 참여하기 위해 세종문화회관을 찾은 제1바이올린 연주자 박화나(41)씨는 대학 때 바이올린을 전공했지만, 결혼과 육아 때문에 10여 년 활동을 쉬었던 터라 이번 레슨이 더욱 설렌다고 말한다. “10·8살 두 아이를 낳고 오래 쉬었는데, 이번에 서울시향과 함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줄수 있어 무엇보다 기쁘다”고 했다.
서울시향 단원들에게도 마스터 클래스가특별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날 마스터 클래스에서 생활예술오케스트라 연주자 2명을 지도한 플루트 연주자 송연화 단원은 “음악이라는 것은 언어가 필요 없는 것이어서 전공자든 아마추어든 음악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이라며 “인공지능 시대에 로봇이 할 수 없는 것은 이렇게 따뜻한 마음으로 소통하며 연주하는 것일 것”이라며 폐막식 연주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프로 연주자든 생활 예술가든 폐막식 대공연을 기다리는 마음은 하나같았다.
김보근 선임기자 tr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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