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in 예술

생존을 위한 ‘예술 소통’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기획전시 ‘무무’에 참여하는 정은혜 작가

등록 : 2019-10-10 14:56 수정 : 2019-10-10 23:22

“예술은 아름다움을 넘어 생존을 위한 소통의 언어죠.” 국내 유일의 장애 예술가 창작공간인 잠실창작스튜디오 입주작가 기획전시 ‘무무’(10월16~30일, 플랫폼엘 컨템포러리 아트센터)에 참여하는 정은혜(29)씨는 자신의 작품을 이렇게 소개했다.

얼굴을 그리는 작업을 하는 정 작가에게 모델이 됐던 이들이 하나같이 예쁘게 그려달라 부탁하면 “에이 다 예쁘면서…”라고 웃으며 둘러댄다. 최근 서촌에서 진행된 전시 ‘은혜씨의 얼굴’에선 각자의 표정을 담은 2천 명의 얼굴을 전시했다. 2017년 도심과 북한산을 잇는 우이경전철의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달리는 미술관’에 참여할 당시만 해도 1천 명이었는데, 2천 명을 돌파했다니…. 매일 한 명씩 늘린 셈이다.

몇 년째 같은 주제를 반복하는 고행이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시작하게 됐을까. “만화가인 어머니의 화실에서 우연히 어깨너머로 그리게 됐어요.” 이후 한 동네의 벼룩시장에서 캐리커처를 그리기 시작했단다. 그의 작품은 여느 그림과 조금 다르게 보인다. 가느다란 연필로 스케치한 얼굴은 마치 끊어지지 않은 실타래처럼 하나로 이어진다. 각각의 특징이 과장되게 그려진 2천 명은 좀처럼 비슷한 면을 찾을 수 없다. 주로 부정적인 면을 감추는 데 급급한 것과 달리 “예쁘든 아니든 각자의 개성만으로도 충분하지 않냐?”고 되묻는다. “낯설게 바라보는 타인의 시선만으로도 우리는 하찮은 인간이 되죠. 차가운 눈빛을 견뎌내기도 쉽지 않은데 마음의 병까지 얻거든요.” 다운증후군의 외모를 가진 그는 그림을 접하기 전에 겪었던 일상을 이렇게 고백했다.

그는 매일 그린 수천 명의 얼굴을 통해 고통받았던 시선강박증뿐 아니라 말더듬증과 틱 장애까지 이겨냈다고 한다. 2천 개의 미소를 담은 데에 정 작가는 이런 메시지를 던진다. “소통이 어려울 것이라는 편견에서 살아가는 냉혹한 현실 속 발달장애인이지만, 인간 본연의 ‘사랑의 모습’은 별반 다르지 않아요.”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팀장

■ 정은혜는 잠실창작스튜디오 10기 입주작가다. 주요 전시로는 ‘은혜씨 천명의 얼굴전’(2017, 문호리 리버마켓), ‘달리는 미술관’(2017, 우이신설선), ‘SPRING’(2019, 양평 폐공장), ‘은혜씨의 얼굴전’(2019, 서촌 갤러리비) 등이 있으며, 장애와 비장애가 공존하는 포럼 ‘같이 잇는 가치’(2019, DDP) 등에 참여했다. 출연작으로는 단편영화 <다섯 개의 시선>(2006)이 있고, 저서로는 컬러링북 <네 마음을 말해봐>(2016)가 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