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구 창전동 서강도서관을 찾은 윤지영씨가 ‘올해의 한 책’인 을 아이에게 읽어 주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거북이다! 집에 거북이 장난감 있잖아.”
엄마 윤지영씨가 책 표지를 보여 주자마자 손민서(5)군이 ‘거북이’를 외치며 반긴다. 앉은뱅이책상 옆에 나란히 앉은 민서에게 눈길을 주며 윤씨가 또박또박 책을 읽어 내려간다.
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창전동 마포구립 서강도서관의 ‘꼬마방’. 미취학 어린이들을 위한 독서 공간에서 윤씨와 민서가 책읽기에 푹 빠졌다. 윤씨는 “어릴 적부터 책과 친해지라고 되도록 1주일에 한 번은 이곳에 와요. 집이 가까우니까 편해요”라고 말한다.
윤씨가 아들에게 읽어 준 책은 유설화 작가가 쓰고 그린 <슈퍼 거북>이다. 누구에게나 친숙한 ‘토끼와 거북이’ 우화에서 경주에 승리한 거북이를 ‘꾸물이’로 등장시킨 작품이다. 토끼를 이긴 꾸물이는 ‘빨리 빨리’만을 외치는 주위를 의식해 진짜로 ‘슈퍼’가 되려고 애를 쓰고, 점점 빠른 거북이가 돼 간다. 하지만 그럴수록 지쳐가고 괴로움을 느낀다. 결국 토끼와 다시 대결을 벌인 날, 꾸물이는 경주를 하다 잠이 들고 만다. 마치 지난번 대결에서의 토끼처럼. 그런데 웬일일까? 토끼에게 져 ‘슈퍼’라는 무거운 딱지를 떼어 버린 날, 꾸물이는 아주 오랜만에 편하고 깊은 잠에 빠진다.
빠른 속도와 경쟁에서의 승리만이 제일이 아님을 일러 주는 <슈퍼 거북>은 서울시가 올해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캠페인을 위해 선정한 10권의 책 가운데 하나다. 어린이 책이 <7년 동안의 잠> <슈퍼 거북> 등 4권이고, 청소년 책이 <시인 동주> <오늘의 할 일 작업실> 등 3권이다. 여기에 어른 책이 <뒤뜰에 골칫거리가 산다> <계속해보겠습니다> 등 3권이다.
서울시는 독서 공동체 활성화와 독서 토론 문화 기반을 만들려고 2005년부터 ‘한 도서관 한 책 읽기’ 사업을 시작했다. 미국 시애틀에서 1998년 출발한 ‘한 책, 한 도시’(One Book, One City) 독서운동을 본딴 것이다.
시애틀 공공도서관은 시민들이 같은 책 한 권을 읽고 공통의 정서를 기르자는 취지로 이 운동을 시작했다. 이후 미국의 여러 도시들이 참여하고, 외국에 알려지면서 뿌리가 튼튼해지고 가지도 무성해졌다. 이 캠페인으로 하퍼 리의 <앵무새 죽이기>가 많이 읽혔다고 한다. 국내에서도 부산, 인천, 전남 순천, 경기 군포, 경기 원주 등 30여 곳이 넘는 지방자치단체가 ‘한 책 읽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은 워낙 지역이 넓은 탓에 효율성을 높이려고 서울도서관 주도로 자치구별로 한 책을 읽는 방식으로 변화를 꾀했다. 25개 자치구가 각각 도서관 컨소시엄을 꾸리고, 서울시가 이 컨소시엄을 지원하는 구조다.
마포구에서는 구립도서관과 마포구에 있는 작은도서관, 시립도서관, 학교도서관 등 모두 39곳이 ‘한 책 읽기 마포구 컨소시엄’을 구성해 <슈퍼 거북> <돌 씹어 먹는 아이> <기억 전달자> <시인 동주> <계속해보겠습니다> 등 5권을 ‘한 책 읽기’ 대상 책으로 골랐다. 선정된 책은 각 도서관이 별도 코너에 여러 권씩 준비해 누구든 쉽게 읽을 수 있도록 했다.
이와 함께 ‘한 책’과 좀 더 친숙해질 수 있도록 각 구청은 작가와의 대화, 북콘서트, 원화 전시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11월까지 마련한다. 마포구에선 6월에만 북멘토 연수, <마포에프엠(FM)> 공개방송, 작가 북콘서트, 연극놀이, 무비 토크 등 여러 행사가 열린다.
서울시는 이 운동이 활발해지도록 각 구에 평균 1000만원가량을 지원하고 있다. 서울도서관은 2015년에 한 책 토론하기, 전시회 등 606개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여기에 26만여명의 시민이 참여했다고 밝혔다. 이용훈 서울도서관장은 “한 도서관 한 책 읽기는 단순히 좋은 책을 읽는 것을 넘어, 지역 주민들이 책을 매개로 함께 대화하고 토론하면서 지역공동체를 더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한 도서관 한 책 읽기’의 세부 정보는 서울도서관 누리집(http://lib.seoul.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정재권 선임기자 jj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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