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에 담긴 ‘한국인의 사랑과 잔치’ 배우는 곳

서울의 작은 박물관 ⑰ 종로구 관훈동 뮤지엄 김치간

등록 : 2019-11-21 14:46
김장, 가난한 시절 나눔·베품의 고갱이

담그는 법 공유 늘면서 점점 다양해져

전라도 반지김치, 강원도 북어김치 등

각 지역 이색 김치 구경 재미도 ‘쏠쏠’

201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가 등재됐다. 가족, 친척, 동네 사람들이 모여 겨울을 나는 음식인 김치를 담그고 담근 김치를 나누는 김장 문화의 의미가 세계에 뿌리내린 것이다. 김장은 잔치다. 그렇게 담근 김장 김치는 북풍한설 엄동을 이겨낼 따듯한 온기다. 고향 집에 온 가족이 모여 김장을 담그기 전에 종로구 관훈동 뮤지엄 김치간에 다녀왔다.

김장은 잔치다

할머니가 밭에서 거둔 배추를 할아버지와 삼촌들이 리어카에 싣고 마당으로 들어오면서부터 김장은 시작됐다. 코흘리개 잔손도 김장할 때는 큰 일꾼이어서, 마당에 부려놓은 배추를 한 포기씩 품에 안고 샘가로 날랐다. 할머니 엄마 고모들이 샘가에 앉아 배추 겉잎을 따고 정리한 뒤, 반으로 잘라 미지근한 소금물에 담갔다 뺀 다음 굵은 소금을 뿌려 절였다.

켜켜이 쌓인 절인 배추는 두세 번 위아래 자리를 바꿔야 골고루 잘 절여졌다. 그렇게 밤을 보낸 절인 배추를 다음 날 아침 잘 씻어 물기를 뺀다. 절인 배추에서 빠지는 물도 그냥 버리지 않았다. 옛날 충청도 깊은 내륙에서는 그 물을 김칫소와 양념을 갤 육수로 썼다.

김칫소와 양념에 들어가는 재료는 고춧가루, 파, 마늘, 생강, 새우젓이 전부였다. 지역마다 그 재료는 달랐지만 바다 없는 산골짜기 동네에서는 그게 다였다. 그렇게 담근 김치는 봄이 되면 국물이 많이 생기고 시원하고 톡 쏘는 맛이 좋았다.

농사가 천하의 근본이었던 세상이 변해 농촌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들어 정착했던 2차 산업 시대에도 김장 문화는 사라지지 않았다. 앞뒤옆집이 가족이고 친척이던 농촌 사회에서의 김장이 집안 잔치였다면 도시의 동네에서 벌어졌던 김장은 동네잔치였다.

해마다 김장철이 되면 네집 내집 할 것 없이 동네 아줌마들이 모여 다니며 김장 품앗이를 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어렵게 정착해 사는 사람들끼리 서로 의지하고 나누며 살던 시절, 김장은 그 나눔과 베품의 고갱이였다. 김장하는 사람은 다 같아도 김장하는 집에서 준비한 재료에 따라 김치 맛이 달랐으니, 김장하는 마당은 김장 재료에 대한 정보 공유의 장이기도 했다. 그래서 김치에 들어가는 재료와 김장하는 방법은 해마다 다양해질 수밖에 없었다.

종로구 관훈동 뮤지엄 김치간에 가면 김장과 그 문화의 주인공 김치가 어떻게 사람을 모으고 사랑을 베푸는지, 그리고 21세기에도 그 따듯한 문화의 온기가 어떻게 이어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

김치를 직접 담가볼 수 있는 6층 체험공간.

뮤지엄 김치간 6층 한쪽 벽에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에 ‘김장, 김치를 담그고 나누는 문화’가 등재됐다는 내용의 전시물이 있다. 가족, 친척, 동네 사람들이 모여 겨울을 나는 음식인 김치를 담그고 담근 김치를 나누는 김장 문화의 의미를 보여준다.

유네스코 자료에는 ‘문화재청이 2011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약 73.8%의 한국인이 동거하거나 동거하지 않는 가족 구성원 및 기타 지인과 함께 정기적으로 김장을 담근다고 답했다’라는 내용이 나온다. 자료는 또 ‘광범위한 도시화와 서구화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90% 이상은 가족이나 친지가 집에서 담가주는 김치를 먹는다’라는 내용도 보여준다.

뮤지엄 김치간은 지금도 이어지는 김장 문화, 그리고 그 주인공인 김치에 대해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

1986년 한 개인이 문을 연 김치박물관을 87년 풀무원에서 이어받았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 중 하나인 김치와 김치에 얽힌 우리의 문화를 우리 속에, 세계 속에 널리 알리기 위한 첫걸음이었다. 이후 김치박물관은 강남 한국무역센터 단지 시대를 끝내고 2015년 지금의 자리에 뮤지엄 김치간이라는 이름으로 자리 잡았다.

건물 4~6층에 걸쳐 있는 뮤지엄 김치간 관람은 4층에서 시작한다. 전시장으로 들어서기 전 벽에 걸려 있는 소반 하나, 손님을 맞이하는 정갈한 인사다. 전시장 정면 벽을 장독 뚜껑과 이색적인 항아리 몇 개가 장식했다. 경기도 김포 지역의 검은 항아리, 청자색 칠을 한 항아리, 청화백자 항아리, 황해도 해주에서만 만들었던 해주 항아리 등이다.

4층 전시공간 중 하나인 김치사랑방에 전시된 김치 모형. 동치미와 배추김치의 특징을 섞어 담근 반동치미(왼쪽)와 명태 아가미를 넣고 담근 서거리지 모형이다.

다른 한쪽 벽면을 가득 메운 막에서 김치 담그는 영상이 상영된다. 경상북도 안동 한 종갓집과 광주광역시의 한 집안에서 담가오던 김치의 역사를 구성지게 풀어낸다.

다른 한쪽 벽을 장식한 ‘김치의 탄생과 진화’는 연표로 보는 간략한 김치의 역사다. 김치를 담글 때 젓갈은 언제부터 사용했는지, 고춧가루는 언제부터 넣어 빨갛고 매운 김치를 먹게 됐는지, 보쌈김치는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했는지….


김치, 내 손으로 담그니까 맛있네

김치사랑방에서 볼 수 있는 사진 한 장. 부엌 아궁이 앞에 앉은 여인의 모습이 60~70년대 고향 집 아궁이 앞에 앉아 있던 우리들 어머니 같다.

발걸음은 가마솥 건 아궁이, 그리고 부뚜막, 찬마루(상에 올릴 반찬 등 간단한 음식을 만들던 공간)를 재현한 김치사랑방으로 이어진다. 부뚜막과 아궁이를 재현한 시설물에 부채로 바람을 일으키면 전구에 불이 들어온다. 장작불 때던 아궁이를 그렇게 표현했다. 작은 화면에서 보이는 부엌 아궁이 앞에 앉아 불을 때는 여인은 60~70년대 고향 집 우리들 엄마 모습이다. 찬마루를 재현한 곳에서 계절별로 먹던 김치의 재료를 선택하면 밥상이 차려지는 간단한 체험을 한 뒤 찬장을 상징하는 전시물로 눈길을 옮긴다. 명태 아가미를 넣은 김치인 서거리지, 동치미와 배추김치의 특징이 조화를 이룬 반동치미 등 잘 알려지지 않은 김치의 모형과 간단한 설명을 눈여겨본다.

과학자의 방에서 김치의 발효와 유산균에 대한 설명을 본 뒤 김치로드라는 이름의 계단을 통해 5층으로 올라간다. 계단으로 올라가면 잘 익은 김치를 ‘아삭아삭’ 씹는 소리가 들린다.

5층 왼쪽 벽에 김치요리를 만드는 외국 식당을 소개하는 글이 있다. 김치볶음밥을 파는 영국 식당, 김치 돼지갈비찜과 김치라면을 파는 싱가포르 식당, 김치볶음밥을 동그랗게 만들어 튀긴 김치볼을 파는 프랑스 식당, 김치가 들어간 ‘앵그리 비프’라는 이름의 수제 버거를 파는 독일 식당이 소개됐다.

김치공부방은 서울·경기 지방의 보김치, 전라도 반지김치와 고들빼기, 강원도 북어김치, 충청도 호박김치, 경상도 배추김치와 골곰짠지 등을 담그는 영상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볼 수 있는 우리의 김치에 대한 사진과 안내글을 전시하는 공간도 있다. 북한의 ‘김장전투’에 대한 설명이 눈에 띈다. 북한은 김장을 ‘반년 양식’이라 했으며 10월 중순부터 ‘김장전투’가 시작된다고 소개한다. 집집마다 300㎏~1t 정도의 김치를 품앗이 방식으로 도와가며 김장을 한다. 2015년에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북한의 ‘김장 담그기 전통’이 등재됐다는 내용도 나온다.

5층 김치움에 있는 우리나라 김치들.

5층에서 6층으로 연결되는 복도에는 우리나라의 다양한 김치와 세계의 절임채소를 볼 수 있는 김치움이 있다. 가지김치, 당근김치, 연근물김치, 호박김치 등 처음 보는 김치도 있다.

6층은 김치 맛을 볼 수 있는 공간과 김치를 직접 담가보는 체험 공간이 있다. 평소에 집에서 김치를 잘 안 먹던 아이들도 이곳에서 스스로 담근 김치는 잘 먹는다고 한다. 김치를 스스로 담가 먹는 아이들 모습을 생각하니, 김장 배추 나르던 코흘리개 어린 시절이 떠올라 잠시 웃었다.


글·사진 장태동 여행작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