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 요리의 시작이자 끝

등록 : 2016-06-16 14:02 수정 : 2016-06-17 10:17
부추무침과 근대쌈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자인 내가 요리를 한다고 하면 의아하다는 듯 쳐다보는 사람이 제법 있었다. 물론 그 눈빛은 절대 선망의 빛은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그다음 늘 하는 말이 있었다. “사시미 칠 줄 알아?” 혹은 “갈비찜도 해?”

생존을 넘어서면 음식은 과시로 흐른다. 집이나 차처럼, 남과 다르다는 차별화를 하는 데 음식만큼 요긴한 것은 없다. 궁중 요리나 귀족 음식은 그래서 나왔다. ‘니 집에는 이런 거 없지!’라는 우월감이 숨겨져 있다. 사회학자들은 음식을 ‘소프트 파워’로 명명하기도 한다. 그래서 있는 사람일수록 진귀한 재료와 복잡한 조리법을 고집한다.

하지만 놓치고 있는 게 있다. 그 좋다는 고기도 회도, 채소와 열매 같은 식물의 도움이 없다면 제대로 된 맛을 음미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회는 고추냉이뿌리(와사비)와 콩으로 만든 간장이 없으면 몇 점밖에 못 먹는다. 이런 양념이 없다면 고기와 회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단백질과 지방덩어리에 불과하다.

채소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말하는 맵고 짜고 쓰고 달고 신 다섯 가지 맛이 고기가 아니라 주로 채소에서 나오는 탓이다. 채소는 흙과 물과 햇빛으로만 빚어놓은 조직 속의 화학 물질이 독특한 색깔과 향기를 뿜어낸다. 심지어 이 식물 속 화학물질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키워 주기까지 한다.


요리 초보 시절에는 사실 채소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고기’와 ‘사시미’만 보인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채소가 어느 순간 확 눈에 띈다. 채소의 무궁무진한 맛에 반하게 되는 것이다.

초보자들이 채소를 다루기에는 샐러드만 한 게 없다. 물에 씻어 소스만 뿌리면 되니 속전속결이 가능하다. 샐러드로 승부해 보고 싶다면 아스파라거스를 추천한다. 아스파라거스는 살짝 데치거나 버터·오일에 볶아서 쓴다. 3000~4000원이면 2인분을 살 수 있다. 아삭한 질감과 독특한 향이 있어 샐러드는 물론 고기·생선 어떤 요리와도 어울린다.

쌈은 우리나라의 멋진 채소 요리다.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쌈채소가 지천이다. 쌈은 밥이나 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어 한끼로도 요긴하다. 나는 근대를 특별히 더 좋아한다. 근대는 아욱·머위·호박잎처럼 줄기 껍질을 벗길 필요가 없는데다 국·볶음에 넣어도 맛난 팔방미인이다. 심지어 파스타에 넣어도 근사하다.

소금을 넣고 10초만 데쳐 물을 살짝 짠 뒤 쌈을 싸 먹으면 된다. 잎이 어른 손바닥보다 커 쌈의 모양을 내기도 좋다. 특유의 향과 질감이 좋아 고기를 넣지 않고 쌈장만 얹고 싸 먹어도 맛있다. 근대를 할 줄 알면 머위쌈밥·양배추쌈밥에 도전해 보자. 샐러드와 쌈밥, 여기에 파스타까지 놓으면 제법 근사한 코스 요리가 된다.

글·사진 권은중 <한겨레> 기자 detail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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