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업 앞에 장애는 없다

시각장애인과 함께 직조 쿠션 만드는 로사

등록 : 2016-06-16 14:24

색을 구별하기 힘든 시각장애인이 쿠션을 만든다? 그것도 정교한 무늬가 아름다운 직조 기술로? 가능한 일일까? 시각장애인이 만든 쿠션은 이미 덴마크에서 소비자의 높은 관심을 받고 있다.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장인 정신과 협업이 만들어낸 쿠션은 서울국제핸드메이드페어 국제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시각장애인들과의 협업 프로젝트 ‘수공예 직조’(Hands on Woven, H.O.W)를 이끌고 있는 로사 톨노 클로젠(사진)에게서 핸드메이드의 장인 정신과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의지가 만나 기적을 일군 이야기를 듣는다.  

어릴 때부터 어머니 옆에서 재봉틀을 따라 했다는 로사는 2007년부터 직조를 제대로 공부했다. 덴마크 콜딩 디자인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이탈리아, 핀란드, 일본에서 공부하며 디자이너로 일했다. 2012년 덴마크로 돌아온 뒤 직조 제품의 상품화에 관심을 가졌지만, 대부분의 직조 제품은 외국에서 만든 것들이었다. 외주에 의존하지 않고 국내에서 직접 제작하는 회사를 찾던 로사는 시각장애인들이 모여 만든 직조 작업 단체 ‘시각장애인의 작업’(Work by the Blind)을 알게 됐다.  

“시각장애인은 촉각이 굉장히 예민합니다. 그들이 독특한 패턴을 만들 수 있는 힘이자 그들이 만든 제품이 대중에게 사랑받는 이유지요.” 로사는 ‘시각장애인의 작업’ 팀 시각장애인들의 뛰어난 감각을 활용해 디자인부터 제품 생산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담당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이번 전시의 핵심이자, 대표 프로젝트 ‘수공예 직조’를 가능하게 한 ‘툴박스’다. ‘툴박스’는 시각장애인 직조자가 작업 공정에 맞춰 독립적으로 자신만의 직조 재료, 구성, 색감을 선택해 상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돕는 도구 세트다. “툴박스는 작업자 개인의 장애 정도, 작업 자세 등을 고려해 각자의 개별 특성에 맞춰 만듭니다.”  

판매를 위해서는 상품의 질도 중요하다. 로사는 직원들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상품의 질을 관리했다. “색과 면 대비에서 어떤 조합이 더 나은지, 값은 적당한지 등 상품이 완성되기까지 전 과정을 직원들과 상의해서 발전시켜요. 이 평등한 협업 방식이 상품의 질을 높이고 매출을 꾸준히 늘리는 비법이에요.”  


로사와 함께 일하는 시각장애인 직조자들은 분업에도 최적화됐다. 질병이나 사고 때문에 후천적으로 시각을 잃은 직원들은 색을 알고 조합할 수 있기 때문에 디자인 과정에 참여한다. 태어날 때부터 시각을 잃었거나 아주 희미하게나마 색을 구별할 줄 아는 직원들은 패턴을 짜고 직조하는 일을 맡는다. 상품이 완성되기까지 전 과정에서 협업이 이뤄지지만 통일 될 수 없는 감각은 각자의 장점을 발휘하도록 해 쿠션에 개성을 더하는 것이다.  

로사는 시각장애인과 협업해서 만들어낸 아름다움을 통해 사람과 사람이 함께할 때 창조할 수 있는 가치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수공예는 사람을 연결하는 매개체입니다. 그러니 연결하는 사람에 따라 그 매개체는 달라져야 합니다.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까닭입니다.” 이번 전시 기간 동안 로사는 ‘시민과 함께 완성하는 직조 작업’ 이벤트도 연다. 시민들의 협업으로 탄생할 개성 있는 직조물은 로사가 전시를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보여 줄 것이다. 글 정고운 기자 nimoku@hani.co.kr 사진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