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서 중구만큼 역사 자원이 풍부한 곳도 없다. 덕수궁과 정동, 남산, 한양도성, 명동, 숭례문과 광희문 등 조선 초기부터 근현대까지의 역사 명소와 이야깃거리로 가득한 ‘지붕 없는 박물관'이다.
여기에 서소문역사공원이 추가됐다. 중구는 서소문공원이었던 곳을 2011년부터 8년간 서울시와 서소문공원 관광 자원화를 위한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해, 지난해 6월 4만6천㎡ 규모의 역사공원으로 재탄생시켰다. 지상은 공원과 시민 휴식처로 거듭났고 지하에는 전시실, 도서관, 문화·커뮤니티 공간 등이 들어섰다.
사연 없는 장소가 없겠지만 이곳만큼 기구한 곳도 드물다. 서소문역사공원 일대는 조선시대 서소문 밖 저잣거리였는데 태종 때부터 중죄인을 처형하는 장소였다. 홍경래의 난, 갑신정변, 동학농민운동 등의 주동 인물들이 처형됐고 19세기 세 차례 천주교 박해로 숱한 천주교도가 희생됐다. 이런 연유로 2014년엔 프란치스코 교황이 다녀가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17세기부터는 칠패시장과 서소문시장이 형성돼 성 밖 상업지로 흥했고 일제강점기에도 수산청과시장이 있었다. 이후 1976년 근린공원이 조성됐지만 경의선과 서소문 고가도로, 고층 건물에 포위돼 도심 속 외딴섬이 됐고 외환위기로 노숙인이 급증하면서 한동안 이들에게 ‘점령’되기도 했다.
굴곡진 역사를 안고 서소문역사공원으로 탈바꿈했다. 설계 공모 당시 296팀이 응모할 만큼 치열한 경쟁 끝에 빚어낸 공간과 건축물이다. 우선 지상 공원은 외곽을 숲으로 감싸고 내부 중심엔 광장을 조성해 완성도와 개방감을 높였다. 또 수목 45종 7100그루, 꽃과 풀 33종 10만여 본으로 연중 시들지 않는 공원이 되도록 꾸몄다. 지난가을에는 일렁이는 억새로 인근 직장인들의 큰 사랑을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1984년 세워진 순교자 현양탑은 그대로 보존하면서 조형물들을 추가 배치했다. 그중 캐나다 조각가 티머시 슈말츠의 <노숙자 예수>와 우물 조형이 눈에 띈다. 노숙자 예수상은 교황청에 설치된 것과 같은 작품이며 우물은 사형집행수(망나니)가 죄인을 참수한 뒤 칼을 씻었던 장소를 표현한 것이라 한다.
공원을 거닐다 보면 빨간 벽돌담이 계속 눈에 들어온다. 이 정체는 공원 엘리베이터나 긴 램프를 따라 내려가면 닿는 지하에서 알 수 있다. 방문객들에게 가장 인기 많은 곳. 바로 ‘하늘광장’(사진)이다. 바닥은 지하 3층에 있지만 하늘은 탁 트인 구조로 한 변 33m인 정사각형에 18m 높이의 붉은 벽돌담으로 되어 있다. 과거 이곳에서 희생당한 모든 이를 추념하는 의미에서 만든 공간이다. 폐목을 재료로 한 조각품 <서 있는 사람들>도 인상적이다.
하늘광장과 연결된 내부로 들어가면 생소한 이름의 ‘콘솔레이션 홀’이 있다. 콘솔레이션은 위안이란 뜻인데 높이 12m의 거대한 철제구조물로 둘러싸인 공간이다. 구조물은 바닥 위 2m까지 내려와 있어 어두운데 하늘광장과 대비된다. 겸허한 마음으로 이곳을 드나들도록 살짝 고개 숙일 만한 높이로 설계했다고 한다.
서소문역사공원의 두 랜드마크를 보았다면 이제 상설전시실로 발길을 돌릴 차례다. 이곳엔 조선 후기부터 서소문에 축적된 역사와 조선 후기 사상 흐름과 관련된 사료, 조형물들이 여유롭게 전시돼 있다. 한쪽에는 서소문과 그 주변 지역 변화에 관한 전시물도 갖췄다. 종교적 감수성을 강요하지 않고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노력한 흔적이 엿보인다. 서소문역사공원 지하 시설은 오전 9시30분부터 오후 5시30분까지 개방한다. 월요일만 휴관이니 지상 공원과 함께 보려면 화~일요일 중에 찾으면 좋다.
신성영 중구 홍보전산과 언론팀 주무관, 사진 중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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