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지금까지 여성에게 호의적이지 않았어요.”
두 줄의 선율로 전통음악의 세계화에 앞장선 해금 연주자 강은일(52)씨는 22~23일 아르코예술극장 대극장에서 공연하는 <오래된 미래: 내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이야기>를 제작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이 공연은 자신의 딸부터 엄마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네 세대를 넘나드는 여성들의 대서사시이다. 원래는 신라 경덕왕 때, 죽은 누이를 그리워하는 ‘제망매가’(祭亡妹歌)에서 착안했는데, 엄마와 할머니가 겪었던 사회적 편견과 차별의 아픔을 이겨내기 위해 ‘제망모가’(祭亡母歌)로 부제를 정했단다. “태어날 때 아들인 줄 알았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강 감독은 손주들이 먹다 남은 음식을 부엌에서 홀로 드시는 할머니를 보고서 섭섭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한국 전통음악의 선두주자로 다방면에서 활동하는 그였지만 때로는 세상이 던지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여성으로서 꿈을 펼치기 쉽지 않았다고 했다. 4대에 걸친 여성 이야기를 들려주는 공연은 각자의 영역에서 명성을 떨치는 네 작곡가가 참여했다. 우선 잉태를 주제로 하와이와 제주도의 민요 느낌을 살린 도널드 워맥, 스페인 카탈루냐 내전과 한국의 내전을 교차하여 전쟁과 여성을 표현한 모이세스 베르트란, 미국 이주민 당사자로 사회적 차별에 힘들어했던 우디 박과 밝은 여성상의 희망을 던지는 김성국까지. 이들이 들려주는 네 공연은 현대음악, 클래식, 전자음악(EDM), 전통까지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음악이 차례로 이어진다. 거기에 공연의 마지막은 강씨의 제자들로 구성된 10명의 딸이 출연하는데, “이제는 자신감을 갖고 행복하게 살길 바란다”는 메시지를 세상의 모든 딸에게 전하고 싶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장
■ 강은일은 한양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했다. KBS 국악관현악단 단원, 경기도립국악단 해금 수석, 서울예술대학교 한국음악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단국대학교 국악과 교수, 해금연구회 이사, 해금 앙상블 활 예술감독, 강은일해금플러스 대표, 서울돈화문국악당 예술감독을 맡고 있다. 수상 경력으로는 동아국악콩쿠르(1998), KBS 국악대상(2004), 문화관광부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2006),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대통령표창(2019) 등을 수상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