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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 울리면 새 화장실로 달려가는 아이들

등록 : 2016-06-16 16:29 수정 : 2016-06-16 16:39
서양식 변기와 깔끔한 세면대, 색색의 타일로 꾸며진 미동초등학교의 새 화장실에서 6학년 아이들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다윤아, 너 내년에 2학년 올라갈 때 3반은 피하는 게 좋아.”

“언니, 왜?”

“2학년 3반 앞은 옛날 화장실이야. 좁은 칸에 쪼그려 앉기가 너무 불편하거든. 1학년 때는 새 화장실을 써서 좋았는데….”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의 미동초등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인 임채영양의 표정이 금세 뾰로통해졌다. 1학기가 반 이상 지났는데도 교실 위치와 화장실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채영이의 얘기를 듣고 있던 1학년 강다윤양도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린다.

옛날 화장실 새 화장실이라니, 도대체 무슨 말일까?

미동초는 1896년 ‘한성공립소학교’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다. 올해가 개교 120주년이다. 오랜 역사는 자랑스럽지만, 그에 따른 불편함도 만만치 않다. 긴 세월 같은 터를 지키다 보니 낡은 시설이 많다. 아이들은 무엇보다 쪼그려 앉아 볼일을 보는 동양식 변기에 전전긍긍했지만 학교 예산만으로는 변기 교체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다 변화의 기회를 맞았다. 2014년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이 시작한 ‘꾸미고 꿈꾸는 학교 화장실, 함께 꿈’ 사업의 시범학교로 선정된 것이다. 1층부터 4층까지 층별로 남녀 1개소씩, 모두 8개 화장실을 전면 보수했다. 서양식 변기와 깔끔한 세면대는 기본이고, 색색 타일로 꾸민 실내에다 출입구에서 화장실 내부가 보이지 않도록 벽으로 가리는 세심함까지, 아이들 마음에 쏙 들게 화장실이 바뀌었다.

하지만 덩달아 새 고민거리도 생겼다. 여전히 낡은 채로인 나머지 13개 화장실이 하루아침에 ‘찬밥 신세’가 돼 버렸다. 각 층 복도의 양쪽 끝에 새 화장실과 헌 화장실이 있다 보니 반 배치에 따라 아이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쉬는 시간 종이 울리면 새 화장실 앞으로 아이들이 몰리는 ‘웃픈’ 풍경이 펼쳐지곤 한다.


아이들이 외면하던 낡은 화장실 13개도 곧 새단장을 할 예정이다. 장철규 기자 chang21@hani.co.kr
4학년 송유근군은 “교실이 헌 화장실 앞이지만 그 화장실은 거의 가지 않는다. 큰 볼일이 급할 때는 새 화장실을 이용하는데, 사람이 늘 많다. 그럴 때는 참았다가 방과후 수업 시간에 간다”고 귀띔한다.

다행스럽게도, 새 화장실을 향해 복도를 달리는 아이들 모습은 추억 속의 장면으로 남게 되었다. 2016년 함께 꿈 사업 대상으로 결정돼, 13개의 낡은 화장실에 대해서도 개선 작업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 디자인 디렉터가 함께 모여 ‘화장실 디자인 태스크포스(전담)팀’을 구성하고, 5주 동안 회의해서 새 화장실의 디자인을 확정했다. 변기와 세면대 등 시설 개선은 물론이고, 실제 사용자인 학생들의 의견을 반영해 감성까지 채울 수 있는 공간으로 꾸밀 계획이다. 딸과 함께 전담팀에 참여한 이은영(41)씨는 “완성된 화장실 앞에 전담팀 이름이 새겨지기 때문에 아이들이 스스로 해냈다는 자부심이 클 것”이라고 말한다. 디자인 디렉터를 맡은 건축사무소 아크21의 박인권 대표도 “아이들이 직접 디자인에 참여해 만든 공간인 만큼 애착을 갖고 잘 관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난 1일 화장실 도면을 확정하기 위한 전담팀의 마지막 회의가 열렸다. 디렉터가 설계 도면을 나눠 주자 아이들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진다. 복잡한 선과 기호들로 가득한 설계도를 보며 자신들의 생각이 잘 반영돼 있는지 꼼꼼히 확인한다. 이미 완성된 새 화장실이 있는데도 아이들은 그대로 따라 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새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느낀 불편한 점과 그사이 자란 생각들을 설계도 여백에 빼곡히 적어 놓는다.

“남자 소변기가 높으면 키 작은 저학년은 불편해요.” “세면대가 분리되어 있어서 손 씻을 때 줄이 길어요. 일체형 세면대가 좋겠어요.” “태권도복을 갈아입을 탈의실이 필요해요.” “탈의실에는 선반과 거울을 달아 주세요. 아!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도 있으면 좋아요.”

미동초 아이들이 꿈꾸고 꾸미는 새 화장실 공사는 여름방학에 맞춰 시작해 2학기 중에 끝날 계획이다. 다윤이와 채영이가 화장실에 대한 걱정을 말끔히 지울 날이 멀지 않았다.

윤지혜 기자 wisdom@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