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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용 마스크 부족 덜고 봉제인 돕고’ 상생의 면마스크
등록 : 2020-04-09 14:39
3월2일 봉제협회 등 10곳 모여 국민안심마스크제작협의회 출범
KF80 수준 효능 갖춘 필터 교체형 면마스크 제작·보급 사업 추진
3월27일 오전 성북구 정릉4동 주민센터 앞. 노란색·회색 방역복을 입은 주민 20여 명이 흰색 소형 분무기를 메고 옹기종기 모여 있다. 주민 자율 방역단원인 이들은 두 달째 요일마다 나눠 버스정류장 등을 집중적으로 소독해왔다. 그동안 보건용 마스크 부족으로 고생이 적잖았다.
이날 이승로 성북구청장은 이들에게 ‘조금 특별한’ 이름의 마스크를 일일이 나눠줬다. 필터를 갈아 넣어 계속 쓸 수 있는 천마스크 세트다. 한 세트에 면마스크 1장과 필터 4장이 들었다. 파란색 비닐봉지엔 ‘국민안심마스크’라 쓰여 있다. 이 구청장은 “우리 동네 봉제인들이 만든 KF80 수준의 제품이니 믿고 써달라”고 했다. 방역 봉사자들은 따뜻하게 박수를 보냈다.
앞서 이 구청장은 성북소방서 소방대원들, 장위1동 어린이집 돌봄 교사들에게도 국민안심마스크를 전달했다. 윤득수 성북소방서장은 “요즘 가장 반가운 게 마스크다”라고 기뻐했다. 박선화 장위1동 어린이집 원장은 “긴급돌봄을 하느라 시간 내 외출하기가 어려워 마스크를 못 사 불안했는데 큰 도움이 되겠다”며 고마워했다.
이날 이 구청장은 국민안심마스크를 만드는 봉제 업체도 찾았다. 성북구청이 주문한 10만 세트를 생산하는 30여 곳의 지역 봉제 업체 가운데 한 곳이다. 직원 8명과 작업에 여념이 없던 대하실업의 이제욱 대표는 “일감이 없어 죽을 지경이었는데 가뭄에 내린 단비 같다”고 했다. 직원들도 바쁘게 손을 움직이면서 노고에 감사하는 이 구청장에게 “저희가 더 감사하다. 일감이 이어졌으면 좋겠다”고 부탁했다.
국민안심마스크 사업 구상은 2월 중순 시작됐다. 코로나19 집단감염 우려가 커져 보건용 마스크 부족 사태가 생기면서부터였다.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전순옥 소상공인연구원 이사는 패션봉제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패션봉제 협회·협동조합 임원들과 머리를 맞대면서 보건용 마스크 수급 불균형도 덜고, 일감이 줄어 경영난을 겪는 봉제인들도 돕는 방안을 고민했다.
세트당 2200원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에 필터 교체형 면마스크를 자체 개발해보기로 했다. 지역의 봉제인들이 생산하고, 공공기관이 공적 구매하는 방식으로 사업 틀을 짰다. 3월2일 국민안심마스크제작협의회(제작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협의회가 출범했다. 지역 패션봉제 협회·협동조합 10곳이 참여했다. 전순옥 이사가 자문위원으로 지방정부의 참여를 끌어내기로 했다. 봉제의 달인들은 뚝딱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표백하지 않은 무색소의 미색 면을 이중으로 덧대고 그 사이에 필터를 넣을 수 있게 했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서 안전성과 유해성, 효능 검사를 받아 3월12일 통과했다. 제작협의회의 최고다 사무국장은 “KF80 보건용 마스크 수준의 비말 차단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본부에서 마스크 사용 권고사항을 개정해 3월부터 면마스크 사용을 권했다. 비상상황에서의 마스크 사용 한시적 지침으로 ‘감염 우려가 크지 않거나, 보건용 마스크가 없는 상황에서는 면마스크(정전기 필터 교체 포함)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제작협의회는 국민안심마스크를 대량생산해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에 발 벗고 나섰다. 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은 서울시 동북권 자치구 패션봉제산업발전협의회와 함께 했다. 패션봉제업체가 많은 서울시 9개 자치구(강북·광진·도봉·동대문·성동·성북·종로·중구·중랑)와 12개 패션봉제협동조합, 서울시 관련 부서, 소상공인연구원이 참여해 2017년 결성한 협의체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국민안심마스크제작협의회와 동북권 패션봉제산업발전협의회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3월17일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어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자치구별로 10만 세트 이상 주문할 것을 권하고, 생산은 지역 봉제업체 조합이 한다. 공적구매 계약에 관한 규격, 성능, 안전성 등은 제작협의회와 의논한다. 최상진 중랑패션봉제협동조합 이사장은 “같은 원부자재를 사용하고 함께 품질 관리를 해나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일감 사라진 봉제인들 “가뭄에 내린 단비 같다” 환호 동북권 패션봉제산발협 자치구 9곳 각 10만 세트 공적구매, 신속히 결제 방역 참여자, 돌봄종사자 등에 지급
자치구들은 봉제 업체에 선급금 30%를 주거나 대금결제를 신속하게 하기로 약속했다. 마스크 배부는 자치구들이 지역 여건에 맞춰 진행하기로 했다. 시행은 9개 자치구에서 즉시 하고, 향후 구청장협의회를 통해 나머지 16개 자치구로 넓혀 나가기로 했다. 서울시구청장협의회장인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구청장들의 화상회의에서 참여 의향을 보이는 곳이 늘고 있어 보급을 확대할 수 있을 거라 본다”고 했다.
업무협약 뒤 국민안심마스크 생산과 보급은 순풍에 돛 단 듯 진행됐다. 성북구 주문을 받은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는 회원사를 포함해 지역 업체 전체를 대상으로 참여 신청을 받았다. 이 협회에는 성북 지역 봉제 업체의 30%가량이 회원이다. 협회는 하루 생산량, 희망 생산량, 생산 시작 시점 등을 적은 신청서를 모아 일감을 나눠줬다. 업체마다 하루에 많게는 2만 세트, 적게는 1천 세트를 제작했다. 1만 세트는 주문받은 지 일주일만인 3월30일 납품을 끝냈다.
김제경 서울패션섬유봉제협회 본부장은 “코로나로 경영난 스트레스를 받는 봉제인들에게 일감 확보가 절실한 상황인데 너무 고마운 일이다”라고 했다. 제작협의회를 통해 강서구의 10만 세트 제작 주문도 받았다. 김 본부장은 “제작 공임 수준이 좋은 편이라 물량을 더 달라고 하는 봉제업체가 많다”며 “성북구는 추가 주문했고 다른 구의 주문도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중랑구는 3월25일부터 국민안심마스크를 배부했다. 공무원, 소방대원, 경찰 등에 8천 세트를 나눠줬다. 나머지는 저소득층 주민과 면역력이 약한 홀몸노인·장애인·임산부 등 건강 돌봄이 필요한 사람과 다중이용시설·대중교통시설에 마스크를 배부했다. 강북구는 복지시설 종사자와 공공기관 직원, 건강 취약계층 등에게 나눠줬다.
한편, 서울시도 보건용 마스크 부족 해소를 위해 필터 교체형 마스크 지원 사업을 하고 있다. 3월 하순부터 서울의 봉제업체 100여 곳에서 면마스크 1장과 필터 5장을 넣은 세트 60만 개를 단계적으로 구매해 보급하고 있다. 마스크가 필요하나 공적 마스크 구매가 어려운 단기체류 외국인, 취약계층 등에게 나눠주고 있다.
시는 어르신, 임신부 등 건강 취약계층과 감염 고위험 직업군에는 보건용(KF94) 마스크를 지원한다. 비교적 감염 위험이 크지 않은 환경에 있는 일반인이 면마스크를 쓰고 보건용 공적 마스크를 기부하면 면마스크와 손소독제를 주는 ‘착한 마스크 캠페인’을 자치구들과 펼치고 있다.
코로나19가 확산하면서 ‘마스크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마스크 구매 대란이 심각했다. 다행히 공적마스크 5부제 시행 한 달 만에 잠잠해지고 있다. 이번을 계기로 감염병 극복을 위한 마스크의 안정적인 조달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전순옥 소상공인연구원 이사는 “이제 마스크는 감염병, 미세먼지 등에 대처하는 필수 보건위생용품이 됐다”며 “국민안심마스크 사업이 보건, 의료 관련 제품을 지역 제조업체들이 생산하고 공적 구매가 이뤄지는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했다.
이현숙 선임기자 h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3월26일 성북구 장위동에 있는 봉제업체 대하실업의 직원들이 성북구청이 주문한 국민안심마스크 제작에 한창이다. 국민안심마스크는 필터 교체형 면마스크다. 지역 패션봉제 협회·협동조합 등이 생산하고, 자치구들이 공적 구매해 보급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세트당 2200원 정도의 ‘합리적인’ 가격에 필터 교체형 면마스크를 자체 개발해보기로 했다. 지역의 봉제인들이 생산하고, 공공기관이 공적 구매하는 방식으로 사업 틀을 짰다. 3월2일 국민안심마스크제작협의회(제작협의회)라는 이름으로 협의회가 출범했다. 지역 패션봉제 협회·협동조합 10곳이 참여했다. 전순옥 이사가 자문위원으로 지방정부의 참여를 끌어내기로 했다. 봉제의 달인들은 뚝딱 시제품을 만들어냈다. 표백하지 않은 무색소의 미색 면을 이중으로 덧대고 그 사이에 필터를 넣을 수 있게 했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서 안전성과 유해성, 효능 검사를 받아 3월12일 통과했다. 제작협의회의 최고다 사무국장은 “KF80 보건용 마스크 수준의 비말 차단 효과가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고 말했다. 때마침 식품의약품안전처와 질병관리본부에서 마스크 사용 권고사항을 개정해 3월부터 면마스크 사용을 권했다. 비상상황에서의 마스크 사용 한시적 지침으로 ‘감염 우려가 크지 않거나, 보건용 마스크가 없는 상황에서는 면마스크(정전기 필터 교체 포함)를 사용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제작협의회는 국민안심마스크를 대량생산해 신속하게 공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하고 시행에 발 벗고 나섰다. 사업의 본격적인 시작은 서울시 동북권 자치구 패션봉제산업발전협의회와 함께 했다. 패션봉제업체가 많은 서울시 9개 자치구(강북·광진·도봉·동대문·성동·성북·종로·중구·중랑)와 12개 패션봉제협동조합, 서울시 관련 부서, 소상공인연구원이 참여해 2017년 결성한 협의체다. 류경기 중랑구청장이 현재 회장을 맡고 있다. 국민안심마스크제작협의회와 동북권 패션봉제산업발전협의회는 업무협약을 맺었다. 3월17일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온라인 기자회견을 열어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자치구별로 10만 세트 이상 주문할 것을 권하고, 생산은 지역 봉제업체 조합이 한다. 공적구매 계약에 관한 규격, 성능, 안전성 등은 제작협의회와 의논한다. 최상진 중랑패션봉제협동조합 이사장은 “같은 원부자재를 사용하고 함께 품질 관리를 해나가는 방식”이라고 했다.
일감 사라진 봉제인들 “가뭄에 내린 단비 같다” 환호 동북권 패션봉제산발협 자치구 9곳 각 10만 세트 공적구매, 신속히 결제 방역 참여자, 돌봄종사자 등에 지급
이승로 성북구청장이 3월26일 정릉4동 주민센터 앞에서 방역봉사를 하는 주민 자율방역대원들에게 국민안심마스크를 나눠주고 있다. 정용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