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과 하얀 벚꽃 어우러져…남산의 봄 완성되다

장태동의 한양도성 순성 ③ 남산 구간

등록 : 2020-04-16 14:11 수정 : 2020-04-20 10:05
장충체육관 뒤~국립공원 지나 남산 오르는 길

녹색·흰색 뒤섞여 파스텔 톤으로 변해

해발 270m 사방 툭 트인 정상에 서보니

오래된 성곽 품은 숲, 도심으로 번진다

엔(N)서울타워 옆 전망대에서 본 남산 숲. 신록과 벚꽃이 어울린 숲이 싱그럽다.

장충체육관 뒤에서 출발해 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을 통과한 뒤 국립극장 앞을 지나면 남산으로 올라가는 길이다. 남산 순환버스 정류장을 지나 나무 계단 길로 접어든다. 태조 이성계 때 쌓은 성벽을 따라 걸어서 정상에 도착했다. 사방으로 터진 전망을 즐긴 뒤 남산 케이블카 승강장 쪽으로 내려간다. 잠두봉 포토아일랜드를 지나면 도착 지점인 백범광장이 나온다. 그렇게 한양도성 순성 남산 구간 4.2㎞를 걸었다. 신록의 숲과 하얀 벚꽃이 어울려 남산의 봄을 완성했다. 머리 위 높은 곳에서 보호막처럼 하늘을 가린 벚꽃이 공중에서 반짝였다. 그 숲을 굽어보고 그 숲속을 걸었다.

성돌에 새겨진 글씨들


장충체육관 뒤에서 시작 된 한양도성 순성 남산 구간 성곽 바로 옆 길을 걷는다.

한양도성 순성 남산 구간의 출발 지점은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약 160m 거리, 장충체육관 뒤쪽이다. 성곽 안과 밖으로 걸을 수 있다. 성 밖에 난 길로 걷는다. 그 길은 조선시대 초기 한양도성 성곽 축성의 역사와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이 섞인 길이다.

성곽 바로 옆에 난 길을 따라 완만한 경사의 오르막을 오른다. 산책하는 사람들이 오가는 길옆 도로 한쪽에는 건물을 새로 꾸미는 공사 현장의 바쁜 하루가 흘러간다. 뒤돌아본 풍경에 성곽 위로 웃자란 화사한 벚나무와 내리막길을 달리는 짐 실은 오토바이가 한눈에 들어왔다. 불어가는 바람 따라 공중에서 흩날리는 벚꽃잎에 오전 댓바람부터 나른하다.

경상도 흥해군(지금의 포항시 흥해읍) 백성이 공사를 담당했던 구간의 시작 지점을 표시한 성곽 돌

성곽 아래 안내판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옛사람 흔적이 남아 있다. 경상도 경산현(지금의 경북 경산시) 백성이 공사했던 구간의 시작 지점을 표시한 글씨가 성곽 돌에 새겨졌다. 또 다른 돌에는 13번째 공사 구간을 알리는 글자가 남아 있다. 경상도 흥해군(지금의 포항시 흥해읍) 백성이 담당했던 구간을 알리는 글자도 볼 수 있다.

한양도성 자료에 따르면 한양도성 성곽에 글자가 새겨진 돌은 280개 이상이다. 축성 구간을 표시한 것,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것, 축성 관리 책임자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 것 등이다. 이른바 공사 실명제였다. 세종 때는 성곽이 무너지면 해당 구간을 담당했던 지방 백성을 한양으로 불러와서 다시 쌓게 했다.

태조 때는 1396년(태조 5년) 음력 1월9일부터 2월28일까지, 8월6일부터 9월24일까지 각각 49일 동안 연인원 19만7400명이 축성 공사에 동원됐다. 흙으로 쌓은 구간을 돌로 쌓은 건 세종 때 일이다.

그 옛날 혹한과 혹서기 축성 공사 현장을 상상하는 사이 오르막길 언덕에 도착했다. 뒤돌아본 풍경에 성곽의 긴 꼬리가 도심으로 스며든다.

태조 이성계 때 쌓은 성벽 옆을 걸어 정상에 도착하다

‘한양도성 순성길(국립극장) 700m’를 알리는 안내판 옆에 조팝나무 꽃이 피었다. 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 체육시설 담장 옆 데크 길로 걷는다. 신록과 하얀 꽃들이 남산 숲을 파스텔 톤으로 물들였다. 자연을 이루는 고유한 생명들이 햇빛을 머금었다가 각각의 색으로 빛의 가루를 퍼뜨리는 것 같다. 숲이 은은하게 빛난다.

길은 반얀트리클럽&스파서울을 지나 국립극장 앞으로 이어진다. 국립극장 앞을 지나 남산 순환버스 정류장 앞에서 잠시 쉬며 풍경에 취한다. 키 큰 벚나무들이 하늘을 가렸다. 하늘과 땅 사이 사람이 다니는 길 위에 벚꽃이 무슨 보호막처럼 피었다. 꽃잎이 햇볕을 거른다. 바람이 불어 꽃잎이 공중에서 흩날린다. 꽃잎마다 햇빛이 반짝인다.

남산 순환버스가 다니는 길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길 오른쪽에 숲으로 들어가는 나무 계단이 나온다. 성벽 옆 나무 계단을 따라 숲으로 들어간다.

노란 남산 순환버스가 가는 길로 걷다보면 길 오른쪽에 나무 계단 길이 보인다. 계단을 따라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에 쌓인 성곽이 이 봄에도 무거워 보인다.

태조 때 쌓은 성곽이다. 태조 때는 평지는 토성으로 성곽을 만들고 산에는 돌로 성곽을 쌓았다고 한다. 성곽을 감싼 숲은 연둣빛으로 물들었다. 600년도 더 된 낡은 성벽과 새봄의 신록이 하나로 숨을 쉬는 그 길을 걸었다.

이정표를 만나면 한양도성 순성길을 따르면 된다. 전망대에 올라 숨을 고른다. 신록과 하얀 꽃이 어우러진 풍경을 굽어본다. 오래된 성곽을 품은 숲이 도심으로 번진다. 가없이 펼쳐지는 풍경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길은 다시 숲으로 이어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남산 정상 전에 있는 남산 순환버스 종점에 도착했다.

남산 정상에 있는 여러 전망대에서 보는 다양한 서울의 풍경도 좋지만 남산 순환버스 종점 전망대에서 보는 풍경도 멋지다. 막 도착한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 숲길을 걸어서 이곳까지 올라온 사람들에게는 휴식 같은 풍경을 선물한다. 일상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는 아쉬움을 달래는 위로 같은 풍경일 것이다.

신록의 숲에 그려진 하얀 벚꽃 길

남산은 해발 270m로 높지 않지만 시야가 사방으로 터진다. 정상 곳곳에 전망대가 있어 서울을 빠짐없이 볼 수 있다.

남산의 원래 이름은 인경산이었다. 경사스러운 일들을 생기게 한다는 뜻이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남산의 산신을 목멱대왕으로 봉하고 나라의 제를 올렸다고 한다. 남산을 목멱산으로 불렀다. 나라의 제를 올렸던 국사당이 있던 터를 알리는 표석이 팔각정 옆에 있다. 국사당은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남산에 신사를 만들면서 헐렸다. 국사당은 현재 인왕산 골짜기에 남아 있다.

봉수대가 있던 터에 봉수대를 복원했다.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집결하던 곳이었다. 제1봉수대부터 제5봉수대까지 다섯 곳에 봉수대가 있었다. 그중 한 봉수대를 복원한 것이다.

남산 정상 한쪽에 서울의 중심점을 알리는 원점 표지가 있다. 대한민국 최초의 경위도 원점이었던 곳을 알리는 표지다. 남산 정상 곳곳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을 돌아본 뒤 전망을 즐긴다.

한양도성 낙산 구간, 낙산공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백악산(북악산)과 인왕산을 지난 산줄기의 맥이 남산으로 이어지고 그 맥이 다시 낙산으로 흘러 백악산에 다다르는 형국을 한눈에 넣는다. 그 둘레를 잇는 것이 한양도성 성곽이고, 그 안이 조선시대 한양도성이었다. 북한산·도봉산·수락산·불암산·아차산이 멀리서 한양도성을 호위하며 내달리는 형국이다.

자리를 옮겨 유장하게 흐르는 한강과 도심이 어우러진 풍경을 바라본다. 연둣빛으로 물든 숲에 구불거리며 이어지는 하얀 띠를 만든 건 남산 순환버스가 다니는 길에 피어난 벚꽃이다. 멀리 불꽃 같은 모습으로 서울의 남쪽을 지키고 서 있는 건 관악산이다.

한시도 쉬지 않는 봄바람에 떠밀려 산을 내려간다. 도착 지점인 백범광장 전 안중근 기념관 앞 거대한 비석 한쪽에 매화나무가 있다. 와룡매다. 안내문에 따르면 임진왜란 때 출병했던 다테 마사무네가 창덕궁에 있던 매화나무를 1593년 일본으로 반출했다. 그 나무는 일본의 한 절에서 자랐다. 400여 년이 지난 1999년에 안중근 의사 순국 89주기를 맞아 그 절의 한 스님이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한 사죄의 뜻을 담아 그 나무의 후계목을 반환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