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작가의 해먹거나 사먹거나

우래옥의 참맛, 일관성

평양냉면

등록 : 2016-06-23 15:20 수정 : 2016-06-24 13:23
우래옥 평양냉면
연애의 필수 코스가 패밀리 레스토랑이던 시절, 첫눈에 반해 사귀게 된 그녀와 마포의 냉면집에 갔다. 잘 먹고 나온 그녀, 갑자기 가게 앞 근처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리고 구슬 같은 눈물을 똑, 하고 떨어뜨렸다. 하하호호 즐겁게 잘 먹고 마시고 이게 웬일인가. 안절부절못하는 나에게 그녀는 말했다. “너무 맛있어!” 도대체 얼마나 맛있으면 음식을 먹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단 말인가. 온몸의 힘이 빠질 수 있단 말인가.

그때부터였다. 평양냉면(사진)은 나에게 맛있는 음식을 넘어선 그 무언가의 존재였다. 그녀와 헤어진 이후에도 성지를 순례하는 구도자처럼 들리는 냉면집을 들쑤시고 다녔다. 고도를 기다리는 블라드미르와 에스트라공처럼, 언제 나타날지 모를 궁극의 냉면을 찾아 헤맨 것이다.

그 와중에 온갖 냉면 기인들을 만났다. 어린 시절 평양 출신 조부로부터 냉면 먹는 법을 사사한 이와 오장동 땅 부잣집 장손이 펼치는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의 예송 논쟁을 지켜봤고, 대북사업 1세대라는 분에게 평양 옥류관과 서울 유명 냉면집들의 차이를 들으며 분단의 아픔을 체감했으며, 미식가로 유명한 정치인과 첫 대면에서 오직 평양냉면의 도에 대하여 세 시간을 떠들었다. 평양냉면원리주의자를 자처하는 이도 본 적 있다. 그 자체로 완벽한 음식에 식초와 겨자를 넣는다는 건 사문난적이요, 면에 가위를 가져다대는 것은 신체발부수지부모를 모르는 오랑캐 종자나 할 짓이라던 그 앞에서 육수를 들이켜야 하는 건지 수저로 떠먹어야 하는 건지 묻고 싶을 지경이었다.

천하의 고수들에 비하면 말석조차 배당받지 못할 처지지만, 십여 년간 나름 평양냉면을 탐해 오다 보니 깨달은 바가 있다. 평양냉면집의 가장 소중한 가치는 일관성이라는 거다.


양념과 조미료에 좌우되는 음식이 아니다 보니 단맛, 짠맛, 매운맛, 지방 맛 같은 게 없다. 면 맛과 육수 맛 딱 그뿐이다. 슴슴하니, 간간하니, 담백하니 해 봐도 결국 면 맛과 육수 맛이다. 그래서 맛 관리가 어렵다. 내로라 하는 평양냉면집들이 계절마다, 인원 따라, 맛이 달라지는 이유다. 신흥 명가들에 사람이 몰리기 시작하면 속절없이 맛이 떨어지는 이유기도 하다. 주방의 상태와 요리하는 이의 수고가 그대로 한 그릇에 거울처럼 투명하게 비치는 음식이 바로 평양냉면이다. 그래서 아무나 만들 수도 없지만, 평판을 유지하긴 더욱 어렵다. 게다가 입맛 까다로운 이들을 상대하기 때문에 조금만 미끄러져도 평판에 치명상을 입기 마련이다.

이 일관성의 으뜸은 내가 보기에 주교동 우래옥이다. 언제 가도 십여 년 전 처음 갔던 그때의 맛이 떠오른다. 노란빛 감도는 면을 젓가락으로 집는다. 입에 넣는다. 툭툭 끊기는 메밀 면을 가득 품는다. 그릇을 들어 적당히 시원한 육수를 후루룩 들이켠다. 배와 절인 무 등 고명이 적은 편도 아닌데 육향이 치고 올라온다. 다시 그릇을 내려놓고 젓가락질에 가속도를 붙인다. 채 면발을 다 삼키기도 전에, 또 새로운 면발을 입에 넣고 싶은 것이다. 정신을 차린다. 그릇이 갓 설거지를 끝낸 듯 깨끗이 비워졌지만 충만감보다는 아쉬움이 더하다. 이 맛, 이 기쁨을 좀 더 누리고 싶다는 심원한 욕심이 아귀의 그것처럼 요동친다. 그것이 첫 우래옥의 느낌이자, 마지막 느낌이었다.

계절이 바뀌든, 주방장이 교체되든 우래옥 냉면은 이차방정식을 풀기 위한 근의 공식처럼 한결같고 정확하다. 앞으로도 또 다른 명가들이 간판을 올릴 것이다. 그때마다 깃발을 꽂으러 원정을 떠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우래옥을 영원히 떠날 수는 없다. 그때마다 저 문장들을 그대로 사용해서 그 맛을 계속 묘사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글·사진 김작가 음악평론가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