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저는 26살 딸아이와 집에 들어오는 시간 때문에 의견 차이가 심합니다. 딸과 한 달에 서너 번씩 다툼이 있을 때도 있습니다. 딸은 배려심도 있고 다정합니다. 그런데 친구들만 만나러 나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놉니다. 12시 전까지 들어오는 것으로 정했는데도 이야기하다가 늦게 들어올 때는 다음 날 아침 4∼5시에도 들어오곤 합니다. 저는 11시가 넘으면 전화를 하고, 카톡도 보내고 합니다. 지킬 때도 물론 있지만 들어오겠다고 하면서도 아직 안 끝났다며 친구들과 있습니다. 또 술 취한 친구들은 친구 집에 꼭 데려다 주고 오니 딸은 항상 늦습니다. 저는, 너도 위험한데 왜 그렇게까지 하고 늦게 들어오느냐고 화를 냅니다. 제가 더 화가 나는 것은 딸아이가 시간 맞춰 들어오라는 부모가 이상하다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딸은 친구들하고 이야기만 하는 것이고 나쁜 짓 안 하는데 자기를 못 믿는다고, 우리 또래는 다들 늦게 들어간다고 하며 늘 당당합니다. 첫 번째 약속한 친구와 만나서 있다가 또 다른 친구들이 연락하면 또 만납니다. 그러다 보니 번번이 늦습니다. 잔소리처럼 저는 처음 약속한 친구만 만나고 집으로 들어오라고 합니다. 그것이 안 되어서 화가 납니다.
원사랑
A: 원사랑 님의 모녀 이야기를 듣고 있으니 제 나이 25살에 돌아가신 어머니가 생각나네요. 이번에는 제 어머니 이야기를 해 볼까 합니다. 홀로 자식들을 키우신 어머니는, 저희 남매가 아비 없이 자란 자식이라는 소리를 듣지 않게 하려고, 자식 교육에 무척 엄격하셨습니다. 특히 딸이었던 제게 유난히 그러셨는데, 그래서 대학생이 되어서도 친구 집에서 잔다든지 친구들과 여행 가는 게 거의 불가능했고, 엄격한 귀가 통금 시간도 지켜야 했습니다.
저는 어머니 말씀에 상당히 순종적이었던 딸이었지만 그래도 꿈 많은 나이였던지라 거역하는 일이 자꾸 생겨났습니다. 고등학생 때는 어머니 몰래 연극반에 가입해 활동했고, 대학생 때는 학생회 활동을 하느라 통금 시간을 어기는 일이 종종 생겼습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소리치고, 눈물로 호소하며 저를 통제하려고 하셨지요. 어머니가 살아 계시는 동안, 어머니는 저에게 천근만근의 족쇄였습니다. 아버지 없이 홀로 살면서 자식들만을 바라보신 가여운 어머니를 거역하는 일도 그랬지만, 어머니의 울타리 안에 갇혀 사는 일도 저에게는 고문에 가까웠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암을 얻어 몸져눕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병세가 나날이 죽음을 향해 가던 어느 날이었어요. 오래 병원 신세를 지고 있던 어머니가 침대에 누워 파란 가을 하늘을 물끄러미 쳐다보다가 문득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미라야, 이제 너도 자유롭게 살아라. 네가 하고 싶은 건 뭐든지 다 해 보고, 마음껏 돌아다니면서 말이야.” 오직 자식들을 위해 살면서 자신의 삶을 속박했던 과거가 다 부질없게 느껴지고 후회되셨던가 봅니다. 그렇게 어머니는 저의 해방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모질디모진 잔소리, 발작과 같은 분노, 혹독한 매질 등 어머니에 대한 많은 부정적인 기억이 있지만 제가 어머니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은 위와 같은 몇 가지 일화 덕분입니다. 저의 자유를 허락해 준 일, 궁지에 몰린 딸에게 뜻밖의 지지와 격려를 해 준 일 같은 것 말이지요. 지금도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때 그 장면을 떠올리면 힘이 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저는 어머니의 말씀대로 원하는 일을 하며, 자유롭게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큰 사고는 없었습니다. 흔들리고 아파도 25살이면 저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때이니까요. 원사랑 님, 왜 딸의 통금시간에 그토록 매달리시는지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만 그 어떤 이유로도 26살의 성인을 붙잡아둘 수는 없답니다. 원사랑 님이 틀렸고, 따님이 옳다고 말하는 게 결코 아닙니다. 따님이 옳지 않더라도, 어머니의 이름으로도, 더 이상 따님을 강제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마음껏 삐뚤어지는 것, 한껏 틀려 보는 것, 그것이 어쩌면 젊음의 의무일 수 있습니다. 흔들리면서 틀리면서 삶의 지혜를 스스로 터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처럼 흉흉한 세상에 어쩜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 있느냐고 따지실지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신달자 시인이 <엄마와 딸>이라는 에세이집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엄마는 딸의 인생에서도 엄마가 되고자 한다. 딸은 철부지라 모르니까, 어리석어서 속으니까, 착해서 모든 사람에게 이용만 당할 것 같으니까, 딸의 마음 한구석에서조차 엄마가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딸이 어릴 때는 그런 어머니 노릇이 필요하기도 할 겁니다. 그러나 딸이 성장하는 만큼 어머니 노릇을 접어야 합니다.
인간이 평생 수행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심리적 과업이 있는데, 그게 바로 부모로부터의 독립입니다. 그 독립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은 평생 남의 인생을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성공했어도 말이지요.
특히 딸이 어머니로부터 독립하는 건 죽음만큼 힘든 일이라고 하지요. 같은 여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삶의 어느 시기에 모녀는 격렬한 싸움을 시작합니다. 싸움이 지독해야 분리에 성공할 수 있기 때문에 야수처럼 으르렁대며 죽도록 원망하고 미워합니다. 이때가 바로 딸이 어머니로부터 벗어나야 할 시점입니다.
원사랑 님, 딸의 귀가 시간을 강제하는 마음 아래에 있는 더 깊은 의도를 찾아보세요. 귀가 시간이 왜 중요한가요? 딸이 약속 시간을 어길 때 어떤 감정을 느끼시나요? 평소 딸과 어떤 관계였습니까? 당신에게 딸은 어떤 존재입니까? 그 모든 것들을 짚어 보셔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이제 딸과 이별을 준비하셔야 합니다. 마음의 이별이지요. 딸이 자기 자신의 주인이 될 수 있도록 그녀의 마음속에서 이제 그만 나오셔야 할 때입니다. 딸에게 충고나 조언을 해 줄 수는 있으나 강요할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아니, 사실 조언이나 충고조차 이제 접어야 할 때입니다. 그리고 원사랑 님은 당신 자신의 삶을 사셔야 합니다. 오래전부터 당신이 당신을 기다렸을 겁니다. 너무 오래 돌봐 주지 않아서 쓸쓸하고 외롭고 적적해진 당신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 불을 켜고, 먼지를 털어내고, 행복이라는 온기를 그곳에 채우셔야 할 때입니다.
박미라
심리상담가·<천만번 괜찮아>
<치유하는 글쓰기> 저자
지면 상담을 원하시는 분은 blessmr@hanmail.net로 사연을 보내 주세요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