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고라니요? 갤러리입니다

기념관이 주민 커뮤니티 공간에서 마을 갤러리로, “문화예술 쌍문동” 기대

등록 : 2016-06-23 16:06 수정 : 2016-06-24 13:21
갤러리에서 작품을 감상하는 지역 어르신. 함석헌기념관은 새로 갤러리를 열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어! 차고였는데 전시장으로 바뀌었네?” 활짝 열린 문으로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온다. 손에는 골목 어귀의 슈퍼마켓에 다녀온 듯 검은 비닐봉투를 들고 있다. 천천히 전시장에 걸린 함석헌 선생의 생전 모습을 담은 사진 30여 점을 돌아보던 아주머니는 한 사진을 가리키며 “함석헌 선생이 김대중 대통령과도 같이 계셨네요! 대단한 분이셨구나!” 혼잣말을 내뱉었다. 도봉구 쌍문동 함석헌기념관 지하 1층 갤러리의 풍경이다.    

함석헌 사진과 미술동아리 작품으로 개관전  

지난해 9월 문을 연 함석헌기념관은 선생이 1983년부터 1989년 돌아가실 때까지 7년 동안 살았던 집이다. 도봉구청에서 사들여 기념관으로 활용하던 중 이용 빈도가 낮은 지하 1층 차고를 새단장해 갤러리 공간으로 꾸몄다. 지역 주민들이 참여하고 이용하는 공간으로 쓰려고 기획해서 만들었다.  

갤러리 개관식도 ‘지역 주민을 위한 갤러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난 5월25일 조촐하지만 이웃이 함께하는 잔치로 치렀다. 퓨전 타악기 핸드팬과 기타 듀엣으로 구성한 이너심 팀의 소박한 공연이 주민들의 노고를 위로했고, 이동진 도봉구청장은 함석헌 선생의 시 ‘그 사람을 가졌는가’를 낭송해 공간의 의미를 더했다. 함께 자리한 함석헌 선생의 유족과 함석헌기념사업회 관계자들은 잔잔히 웃으며 갤러리 개관을 축하했다.  

개관전은 공간의 특성과 목적에 맞게, 함석헌기념관 특별 전시전과 지역 미술동아리 ‘마음의 초상’의 작품들로 꾸몄다. 한국 근현대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선생과 민주화 인사들이 함께 찍은 사진들과 선생이 쌍문동 집에서 지내는 일상의 모습을 담은 사진 30여 점은 함석헌기념사업회에서 빌려 준 것들이다. 동아리 ‘마음의 초상’의 미술 작품 20여 점은 1층 온실에서 주민들을 맞았다. “쉽게 이용할 수 있는 공간과 갤러리가 지역 주민 모임 활성화와 문화 생활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시에 참여한 백현진(44·작가) 씨는 새롭게 문을 연 갤러리에 대한 기대가 컸다. 동아리는 그동안 함석헌기념관에서 모임을 해 온 터라 갤러리 개관의 의미가 더 각별한 듯했다. 개관 기념 전시회에 함석헌 선생의 초상화를 낸 최정인(57) 작가와 정은선(57) 작가는 공간이 간직한 특별함을 작품화했다. “정신적 지주였던 함석헌 선생의 순수하던 젊은 시절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고, 작품을 그리는 과정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며 소감을 전했다.  

지역에 자리 잡은 기념관은 주민이 스스로 참여하고 가꾸어나갈 때 광장으로서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함석헌기념관이 지하 1층을 세미나실 겸 게스트룸, 도서 열람실, 온실 등으로 꾸며 인근 주민들의 복합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주택이라 포근하고 편안한 느낌이 좋습니다. 캘리그라피 수업을 하고 있는데, 부모님들의 반응도 좋구요. 이제 갤러리도 생겼으니 작품 전시도 함께 할 수 있어서 더 좋을 것 같습니다.” 기념관에서 수업을 하는 변종성(52·캘리그라피 강사) 씨의 말은 기념관이 주민들의 삶 속에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기념관 사용 절차도 도봉구청 누리집(www.dobong.go.kr) 예약으로 끝낼 수 있어 간편하고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등 접근성을 높인 것도 함석헌기념관이 지역 주민의 사랑방과 쉼터로 사랑받게 된 이유 가운데 하나다.    

예술을 매개로 지역 커뮤니티 활성화에 기여  


이미 주민에게 문을 연 기념관에 갤러리 시설을 추가한 데에는 지역 주민들의 요구뿐 아니라 주민 커뮤니티를 활성화하려는 도봉구청의 의지도 한몫을 했다. “주민동아리나 지역 예술가들이 작은 규모로 부담 없이 전시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갤러리가 만들어진 거지요.” 최영근(53) 도봉구청 문화예술과 관광진흥팀장의 설명이다. 갤러리는 주민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전시 기획과 운영은 주민이 맡고, 구청은 홍보를 비롯한 행정 지원에 주력할 예정이다.  

골목과 맞닿은 갤러리 출입구로 주민들의 발걸음이 계속된다. 갤러리에 들어온 주민들은 사진을 감상하고 휴대전화를 꺼내 기념촬영도 한다. 골목을 공유해 온 한마을 사람의 이야기이기에 전시 작품에 대해 낯설어하는 빛은 보이지 않는다. 관람객이자 지역 주민이기에 유족들과 얽힌 인연을 이야기하고 어르신들은 함석헌 선생의 기억을 되새기며 추억에 잠기기도 한다. 문화예술경영을 공부하는 이 마을의 한 대학생은 전시 관계자에게 전시 기획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구경만 하는 기념관에서 벗어나 주민들의 커뮤니티 공간으로 몫을 하던 함석헌기념관은 갤러리까지 문을 열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함석헌기념관 갤러리는 <응답하라 1988> 속에 추억으로 남아 있던 쌍문동을 사람 냄새 가득한, 문화예술을 즐기는 쌍문동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디딤돌이 되고 있다.

글ㆍ사진 김미현 마을콘텐츠제작단 엠블대표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