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에 눈뜬 평양…파스텔톤 색감으로 북한식 ‘도시재생’
홍민의 서울-평양 마주 보기 ④ 서울과 평양의 색채 변신
등록 : 2020-05-14 14:05 수정 : 2020-05-14 14:35
서울
도시색 떠오르지 않아 표정 없는 느낌
그나마 대표색으로 ‘빨간단청색’ 선정
평양
회색 건물, 붉은 구호판의 무겁던 도시
김정은 시대 들어 ‘색발전 전성기’ 맞아
갖가지 파스텔톤 빛깔 거리 물들이고
천리마타일공장 등 외장재 공장 풀가동
가끔 서울이란 도시엔 표정이 없단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만큼 기억할 만한 서울의 색채가 없었다는 얘기도 된다. 비슷한 높이와 색깔의 아파트 장벽, 육중하게 가로놓여 무덤덤해 보이는 교량과 거대한 회색빛 제방도로가 점령한 수변 경관, 고층 아파트에 가려 보이지 않는 산과 구릉, 도심의 무질서한 간판과 과잉된 고채도 조명, 주변과의 조화를 찾아보기 힘든 건축재료 범람과 부조화, 미세먼지로 가득 찬 뿌연 하늘. 딱히 떠올릴 만한 서울의 색을 생각해내기 쉽지 않다. 우리의 서울은 여전히 표정을 찾기 힘들다.
다행히 2006년 서울시가 “21세기는 모든 것이 디자인의 시대”라고 규정하고 공공디자인의 전면적 혁신을 추진해왔다. 2008년에는 ‘서울색 정립 및 체계화’ 차원에서 서울의 기조색과 상징색을 규정하고 경관별 색채 가이드라인을 구축했다. 대표색으로 ‘빨간단청색’을 선정했다. 도시색채에서 ‘기조색’은 하늘, 산, 들, 땅 같은 원경의 자연환경색을 의미한다. ‘주조색’은 도시 경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건축물 색채다. ‘강조색’은 건물 외관의 부속물, 세부 형태, 간판, 거리 의자 등의 근접색을 뜻한다. 이들의 조화가 도시색채로 기억된다.
영국 런던은 일찌감치 안개 짙은 하늘과 산업화의 어두운 색조 속에서 빨갛고 파란 원색 팝아트의 강조색을 통해 도시색채를 만든 바 있다. 여기에 비하면 서울의 색채 변신은 늦은 감이 있다. 색채를 통한 도시 이미지 창출은 외교, 무역, 관광과 같은 국가 이미지는 물론 국민 정체성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서울의 특징을 보여주는 상징색과 강조색의 일관된 사용만으로도 서울은 쉽게 기억될 수 있다. 더 나아가 자연녹지, 수변, 시가지의 경관을 색채 사용을 통해 조화롭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이런 변신은 더딜 수밖에 없다. 시간을 필요로 하는 변화다.
반면 평양은 하루가 다르게 물들고 있다. 살구, 민트, 겨자, 연보라, 청록의 파스텔 톤 빛깔이 평양을 물들이고 있다. 마치 동화적 색채의 영화 세트장을 거니는 느낌이랄까. 최근 평양을 다녀온 이들의 공통된 인상기다. 과거 은백색 대동강, 회색빛 건물들, 붉은색 거리 구호판 일색의 무겁던 거리 표정이 파스텔 톤의 미소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불과 10년 사이의 변화다. 2010년 도시정화사업부터다. 북한은 ‘색발전의 새로운 전성기’로 지금의 변화를 설명한다. 아마도 기존 사회주의 도시의 획일성, 무채색, 무표정에 파스텔 톤의 동화적 판타지를 넣고 싶었는지 모른다. 일종의 북한식 ‘도시재생’이다.
1950~90년대에 건설된 북한 살림집은 대부분 잿빛이다. 공공건물 역시 콘크리트 구조재료 색 그대로 회색 톤에 흰색 몰딩 장식이 가미된 정도였다. 김정은 시대 들어 무표정했던 이들 건물에 색채를 입히기 시작했다. 연한 분홍이나 녹색의 석회 카바이드를 덧붙여 바르는 방식이다. 물론 오래된 건물의 방수와 내구성을 높이기 위한 차원도 있다. 최근 새로 짓는 건물들은 파스텔 톤 타일과 대형 판유리, 금속재료를 섞어 마감하고 있다. 현대적인 마감재료를 적극 도입하면서 도시가 깔끔하고 화사해진 것이다. 김 위원장 시대 들어 천리마타일공장을 비롯해 외장재, 마감재를 생산하는 공장들이 풀가동 중이다.
건축물에 색을 칠하는 것을 북한에선 ‘입면마감장식’이라고 한다. 김 위원장 집권 이후 북한의 대표적 건축 월간지인 <조선건축>엔 도시색채 관련 글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색채를 과학적으로 적용할 것을 요구한다. 가령 병원 건물은 안정감을 주는 흰색과 중간색·푸른색, 호텔은 친절한 느낌을 주는 누른색(노란색)·연풀색이나 분홍색을, 공항이나 철도역은 명쾌하고 선명한 인상을 주는 푸른색, 학교 건물은 젖빛색(베이지), 상점 건물은 색채를 풍부하게 하여 손님들 눈길을 끌 수 있어야 한다는 식이다. 아파트 입면도 마찬가지다. 따뜻한 기본색에 찬색 계열의 보조색을 더해 안정감과 우아함을 주도록 하고 있다. 거리와 건물의 녹지화도 포함된다.
특히 주목할 부분은 상업시설에 대한 색채 관리다. 상점의 외장 마감색뿐만 아니라 상점 내부 조명에까지 각별하다. 상점과 상품 종류에 따라 색과 조명을 적절히 활용해 ‘비침도’를 보장하고 고객에게 심리적 만족감을 줄 것을 강조한다. 실제로 리모델링하거나 새로 오픈한 상점의 진열대는 우리 디스플레이 방식과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과장된 상품 포장과 진열을 자본주의적인 것으로 비판하던 과거 태도에서 보면, 거의 색채 ‘혁신’에 가까운 변화다.
색채 혁신은 야경에서 절정을 이룬다. 소위 ‘도시불장식’(도시조명)에 대한 각별한 관심이다. 평양의 랜드마크, 주요 거리에 특성을 드러내기 위해 원근거리 시점을 설정하고 여기에 맞게 건물에 장식조명을 한다. 계절적 변화에 대한 고려는 물론 거리의 경계 부분(블록), 거리 입구와 출구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 조명을 설치하고 있다. 가령 거리 입구부에서 은은한 조명으로 시작해 중간에 상징적인 건물에는 강렬한 빛으로 강조점을 두면서 거리 소실점까지 입체적으로 윤곽이 살아나도록 하는 방식이다. 상점의 간판 글자와 조명이 과잉되지 않도록 하는 것 역시 포함된다.
도시를 더욱 아름답고 화려하게 장식하는 수단으로 ‘색’과 ‘빛’을 강조하는 것은 김정은 시대 들어 강조하는 도시건축의 조형화, 예술화 차원에서다. 평양의 주조색은 파스텔 톤 핑크·노랑·주황·연두·하늘색 계통이 많다. 대표적인 색은 분홍이다. 분홍색은 따뜻함, 달콤함, 신뢰 등과 연관된다. 사랑, 행복의 이미지와도 연결된다. 파스텔 톤으로 변신한 평양을 북한은 ‘색감정’ 차원에서 설명한다. 나라마다 민족마다 ‘색감정’이 있는데, 북한 주민들은 예로부터 부드럽고 은근하고 연한 색깔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평양의 색채 변신을 두고 일각에선 ‘억압’을 가리는 통치 기교쯤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색을 통한 주민들의 상상력과 감성의 변화는 또 다른 차원이다. 색채는 새로운 가능성일 수 있다.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사진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연합뉴스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서울
서울의 간판
평양과 서울은 색감으로 대비된다. 서울은 기억할 만한 색채가 없다는 평을 듣는 반면(사진1), 평양은 최근 갖가지 파스
텔 톤 색채로 도시를 꾸미고 있다. 서울의 간판(사진2)과 평양의 간판(사진4)도 도시 디자인의 특성을 반영한다.
평양의 간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