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12월, 영등포구 구로동 공영주택단지의 전경. 1961년 9월 구로수출산업공업단지를 만든다는 명목으로 주민들을 강제로 내쫓았다. 전승환 씨가 살던 주택단지도 포함됐다.
2016년 6월, 구로동 공영주택단지는 대림역과 가산디지털단지역 사이의 구로2동과 3동 일대에 있었다. 사진은 한국수출산업단지에서 바라보고 찍은 것이다. 서울시, 기억발전소 제공
지하철 2호선을 순환하는 어르신 택배기사 전승환(66) 씨. 그는 높은 건물이 들어선 구로동 일대를 보며 유년 시절을 떠올린다. 구로역 인근의 7평짜리 단칸방에 세 들어 살던 전씨네 가족은 구로2동과 3동 일대에 생긴 공영주택단지로 이사 갔다. 서울 최초의 뉴타운이라 이를 수 있는 구로동 공영주택단지는 철거민과 영세민을 우선순위로 선발했는데 4000여 명이 몰려 경쟁률이 8대1에 이르렀다. ‘만약에 100만 원이 생긴다면 타이루 양옥집을 높이 지을 테야, 아서라 100만 원의 잠꼬대 말고 구로동 공영주택 수속을 해 보자’는 노래가 나올 정도였다. 함께 신청했던 이웃은 모두 떨어지고 전씨 가족만 어렵게 붙었으니 주변에서는 큰 복이라고 했다. 입주 후 농사짓던 아버지는 더 나은 조건에 벽돌 공장으로 취직했고 공단이 들어서면서 전씨는 물론 여동생과 어머니 모두 공장에 나가 돈을 벌었다. 1978년 결혼과 함께 동대문으로 이사한 전씨는 그 시절 가족의 울타리 안에서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청년 전승환이 그립다고 말한다.
박소진 기억발전소 기획팀장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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