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인디음악가, 주민소통의 중심에 서다

금천구 시민소통 유튜브 ‘말하는 어울샘’ 만드는 김희진·박현빈·이동규 매니저

등록 : 2020-06-04 15:05
코로나19로 휴관한 ‘금천마을활력소’

소소한 동네 소식들 영상 만들어 소통

싱글 음반 낸 젊은 음악인 참가로 활기

“주민 공론장 역할 하는 데 보람 느껴”

보이는 라디오 ‘말하는 어울샘’ 제작자인 박현빈(왼쪽부터)·이동규·김희진 매니저가 5월21일 금천구 시흥5동에 있는 ‘금천마을활력소 어울샘’ 영상 녹화실에서 밝게 웃고 있다.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꼬들면? 푹 익힌 면? 매니저님들의 라면 면발 취향은 어떠신가요?”

금천구에 사는 한 주민이 ‘말하는 어울샘’ 진행자들에게 라면 면발 취향을 묻는 말을 단톡방에 올렸다. 삼 남매가 라면을 먹기로 하고 막내가 라면을 끓였는데, 둘째가 ‘왜 라면이 제대로 익지도 않았냐’며 막내에게 잔소리한 데서 문제가 불거졌다. 막내는 ‘꼬들면’을 좋아하고, 둘째는 ‘익힌 면’을 좋아해서 생긴 아주 ‘사소한’ 가족 분쟁이었다. 첫째에게도 꼬들면인지, 익힌 면인지를 선택하라며 서로 다퉜다는 사연인데, 어울샘 매니저들에게도 꼬들면을 좋아하는지 익힌 면을 좋아하는지 질문한 것이다.

금천구 주민의 소소한 일상을 담은 이 사연은 ‘금천마을활력소 어울샘’에서 만드는 보이는 라디오 ‘말하는 어울샘’을 통해 ‘선택’이란 주제로 방송돼 주민들의 큰 호응을 받았다.


5월21일 금천구 시흥5동에 있는 금천마을활력소 어울샘을 찾아, 보이는 라디오 ‘말하는 어울샘’을 방송하는 이동규(28)·박현빈(36)·김희진(29) 청년문화기획자(매니저)를 만났다. 이들은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줄어든 주민들에게 방송으로 소소한 삶의 이야기를 전달하고 있다.

“‘선택’은 단톡방에서 가장 반응이 뜨거웠던 내용을 주제로 잡았죠.”

이동규 매니저는 ‘말하는 어울샘’ 5회 방송 주제가 ‘선택’이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이 매니저는 “누구에게나 있는 사소한 이야기를 듣고 서로 공감해주고, 위로하고 위로받는다는 것이 굉장히 보람되고 좋은 일”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휴관 중인 금천마을활력소 어울샘은 지난 4월 온라인 소통 창구로, 보이는 라디오 ‘말하는 어울샘’을 시작했다. 금천마을활력소 어울샘은 금천구의 생활문화 거점 공간으로 주민 생활문화 프로그램 지원, 주민 동아리 활동 지원, 문화예술인 발굴 등의 일을 하고 있다.

“금천마을활력소 어울샘은 주민 주도의 문화예술활동을 지원하는 공간인데, 코로나19로 외부 활동이 위축된 주민들을 위해 ‘말하는 어울샘’을 시작했습니다.”(박현빈 매니저)

4월13일 첫 회를 시작으로 6월1일 7회째 방송했다. 사전 제작을 거쳐 매주 월요일 오전 11시 유튜브에 노출하는 ‘말하는 어울샘’은 금천구와 어울샘의 각종 소식, 사연, 음악 등을 소개하는데, 주민과 소통하기 위한 단톡방도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사연은 오픈채팅방, 인스타그램, 네이버 밴드 등에서 받는데, 네이버 밴드에는 600여 명의 주민이 참여하고 있죠.”(이동규 매니저)

‘말하는 어울샘’에는 ‘키워드 뉴스’ ‘어울샘 토크’ ‘어매소’(어울샘 매니저가 소개합니다) 등 모두 다섯 코너가 있다. ‘키워드 뉴스’에서는 한 주 동안 있었던 금천구와 어울샘 이야기를 함축하는 단어를 선정하고, 이 ‘열쇳말’을 중심으로 내용을 전달한다. ‘어울샘 토크’에서는 어울샘 공식 누리소통망(SNS)에 올라온 사연을 소개한다. ‘어매소’에서는 어울림 매니저가 음악, 영화, 생활문화나 편의시설을 추천·소개한다.

지난 2월부터 어울샘에서 일하는 박현빈 매니저와 김희진 매니저는 인디 음악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박 매니저는 2014년 <하지만 난>을 시작으로 <듣지 못하는 고양이> 등 두 곡의 싱글 음반을 냈다. 박 매니저는 “문화 콘텐츠와 관련한 일을 계속하고 싶어서 이곳에 왔는데, 소규모 뮤지션들이 자생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이곳에서 청년문화기획자로 일하는 김 매니저는 ‘브랜디’란 이름으로 음악 활동을 하며 7장의 싱글 앨범을 낸 베테랑이다. 지난해 11월 이곳에 온 이동규 매니저는 기획과 소통을 담당한다.

“방송하는 게 너무 재밌습니다. 성장 과정을 겪는 게 즐겁죠.”

김 매니저는 “처음에는 10분짜리 영상을 만들려고 1시간 넘게 촬영해도 자연스럽지 않았는데, 촬영을 거듭할수록 시간도 줄고 호흡도 잘 맞춰가고 있다”고 했다.

박 매니저는 “세 명이 하는 프로그램은 처음인데, 조금씩 맞춰가는 걸 느낄 때마다 뿌듯하다”며 “가끔 주민들이 방송 잘 보고 있다고 할 때 너무 기쁘고,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니 책임감도 느낀다”고 했다.

“주민들 사연을 소개하다 보면, 사소한 부분에서 행복을 찾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어서 좋죠. 사소한 데서 오는 감동이 오히려 더 클 수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김 매니저)

“대단한 것을 하는 게 아니라 공간이나 마을에서 있었던 내용을 알려주죠. 주민 사연도 엄청난 내용이 아니라 일상의 소소한 것을 소개하고 공감하고 다른 주민들 생각을 들어봅니다.”(이 매니저)

금천마을활력소 어울샘은 주민들로 구성된 어울샘지기들이 운영에 직접 참여하는 게 특징이다. 이곳에서 활동하는 주민 동아리도 19개나 있다. ‘말하는 어울샘’ 운영진은 주민들과 함께 주민들 이야기를 나누는 데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얻는다고 했다. 박 매니저는 “주민들이 방송 잘 봤다고 말해줄 때, 주민들의 공론장 역할을 하는 것 같아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세 매니저는 앞으로도 금천구 주민들에게 소소한 사연으로 삶에 힘이 되는 방송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어울샘은 누군가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 잠깐의 휴식, 즐거운 추억, 일상에 스며드는 공간이 되고 싶습니다.”

이충신 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