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 들어가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새로운 변신을 할 수 있는 곳.’ ‘의류 황금 상권.’
1990년대 서대문구 이화여대 앞 상권을 지칭하는 말이다. 당시 이대 앞 상권은 패션 유행의 최첨단 지대였다. 패션을 선도하는 전세계 유명 도시에서 펼쳐지는 유행과 시차가 3~4일도 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동시에 이곳은 연세대, 이화여대, 서강대 등 대학가를 중심으로 신촌과 더불어 청년문화의 중심지였다.
한때 하루 유동인구가 50만~80만 명에 이를 정도로 문전성시를 이뤘던 이대 앞 상권은 1990년대 후반 급격한 쇠퇴의 길로 들어섰다. 아이엠에프(IMF) 외환위기로 내수경제가 급격하게 침체했고, 인터넷을 중심으로 온라인 쇼핑몰이 성장하면서였다.
2016년 이화여대 정문 맞은편 옷가게가 밀집한 이화여대5길을 중심으로 ‘이화패션문화거리 이파로(E-Faro)’ 조성이 시작됐다. 서대문구가 이대 앞 상권을 되살리기 위해 나선 것이다. 가장 먼저 고풍스러운 유럽 도시의 골목길처럼 예술적 감성을 전해주는 디자인으로 도로를 포장하여 골목환경을 개선했다. 점포들 특성을 파악해 테마에 맞는 간판을 설치했다. 공실로 비워진 점포들을 임대하고, 이곳에 입점할 청년 패션디자이너들을 모집했다. 2016년 청년 패션디자이너 7명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31명의 신진 디자이너가 이곳에서 성장의 기반을 다져왔다.
패션 분야 전문가들의 아카데미도 해마다 열리고 있다. 디자이너들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서대문구 지원 사업이다. 패션 전문 역량 강화 교육, 창업 실무역량 강화 교육 등을 제공함으로써 청년 디자이너들이 자생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고 있다. 이파로에서 활동 중인 청년 디자이너들은 서울패션위크 등 국내 유명 패션쇼에 참가해 주목받았으며 해외 패션쇼에도 진출하는 저력을 보여줬다.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 중 하나인 ‘얼킨’은 신진 화가들의 작품을 활용한 제품을 만든다. 버려지는 습작으로 제품을 만들어 사라질 뻔한 회화 작품이 가방으로 되살아나고 있다. 수입은 신진 작가들에게 돌아간다. 이러한 선순환을 바탕으로 국내 유수 패션쇼에 참가하며 성장하고 있다.
서대문구와 상인들이 합심해 이파로는 지역 패션 스타트업이 모여들며 이대 상권의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이파로에서는 젊은 신진 디자이너들의 감각적인 패션 작품들을 둘러보며 최신 트렌드를 엿보는 것은 물론 구매도 가능하다. 지난해에는 이색적인 게릴라 패션쇼와 다양한 컬래버레이션으로 업계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매년 10월에는 신촌 연세로 차 없는 거리에서 이파로 디자이너들이 참여하는 패션쇼가 열린다. 디자이너 옷을 입고 서대문구 이파로를 거닐다 보면 유럽 등 패션 중심지의 감성을 잠시나마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권병우 서대문구 도시재생과 주무관, 사진 서대문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