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청장이 간다

차 없는 거리로 신촌 상권 부활을 꿈꾼다

지자체 최고 수준 복지생태계 구축한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등록 : 2016-06-30 13:54 수정 : 2016-06-30 13:56
신촌 연세로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문석진 서대문구청장. 카페의 벽그림이 문 구청장이 바라는 복지 사회를 동화 속 그림처럼 표현한 듯 보인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문석진(61) 서대문구청장의 복지 실험은 전국 지방자치단체 최고의 복지 생태계 구축 사례로 손꼽힌다. 야당 구청장의 도전은 정치적 이해관계와 노선을 뛰어넘어 곳곳으로 퍼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2013년 임기 말 문 구청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브리핑을 들었고,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직후에는 총리와 보건복지부 장관이 잇따라 서대문구청을 방문해 ‘견학’을 하고 갈 정도였다.

문 구청장이 일으킨 변화의 내용은 이러했다. 우선 구청과 동 주민센터의 중심 업무를 행정에서 복지로 바꿨다. 통장과 방문간호사를 활용해 복지사각 지대에 있는 어려운 이웃을 찾아내 복지공동체 안으로 끌어들였다. 구청에서 동으로 이어지는 행정 조직을 ‘복지 허브’로 전환한 것이다.

첫발은 2011년 시작한 ‘100가정 보듬기’ 사업이었다. 서대문구 안의 극빈 가정이 자립할 때까지 지속해서 지원하는 지역 운동이었다.

여당도 견학하는 복지공동체 만들어

회계사 출신으로 복지단체에서 감사를 지내 본 문 구청장은 먼저 기부금이 전액 수혜자에게 전달되는 투명한 시스템을 만들었다. 이런 투명성 아래 수혜자가 학교를 졸업하거나 취업할 때까지 책임지고 도와주도록 기부자들을 설득했다.

“교회 등 종교시설을 찾아다니며 종교의 사명이 한 생명을 구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니냐고 호소했습니다. 그렇게 1호 가정부터 10호 가정까지는 제가 맺어 주었고, 그다음부터는 구청 직원들이 앞장섰습니다.”

구청 직원들도 청장의 열정에 동화돼 한 과 한 가정 돕기로 응답했다. 이런 소식은 지역사회로 퍼져나갔다.


목사와 신부는 물론 연세대 앞 노점상도 어려운 형편이지만 기꺼이 다달이 30만 원씩 내놓기도 했다. 동장과 통장들도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이웃을 찾아 골목길을 누볐다. 구청장은 이런 동 주민센터를 지원하기 위해 동 주민센터 행정 업무를 구청이 맡게 했다. 동마다 방문간호사를 둔 것도 서대문구청이 가장 먼저였다. 이것이 이른바 문 구청장이 시작한 서대문구 ‘복지 허브화’ 사업이었다.

“복지는 교육과 환경, 일자리, 문화 등 주민들의 삶과 미래를 분리해 다룰 수 없습니다. 일방적으로 베푸는 시혜로는 지속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문 구청장의 복지에 대한 철학은, 지역의 홀몸 어르신을 주기적으로 돌보는 ‘헬스리더 양성 사업’, 지역 기업과 기관이 어르신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어르신일자리 사업’으로 이어졌다.

“2010년 민선 5기로 취임해 현재까지 6년 동안 일하고 보니, 서대문구에 어려운 이웃을 보듬는 복지공동체가 형성됐고, 최소한 가난해서 자살하겠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제가 거둔 가장 큰 변화이자 보람입니다.”

문 구청장이 복지 허브 정책과 더불어 가장 주력하는 사업은 청년활동 지원이다.

“서대문구 전체 주민 32만 명 가운데 19~39세 청년이 약 10만 명입니다. 대학이 9개나 있어 실제 살고 있는 청년은 훨씬 많을 겁니다. 그래서 올해 2월 청년 지원을 전담하는 청년지원팀을 신설했고 ‘청년기본조례’를 제정해 청년 활동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문 구청장은 청년 문제도 “지역과 상생하는 복지공동체”라는 방향으로 풀고 있다. ‘천연동 꿈꾸는 다락방’에서는 인근 대학생들에게 임대주택을 저렴하게 제공하는 조건으로 매주 2회 2시간씩 지역의 초·중·고생들의 학습을 돌봐 주고 인성을 키우는 1대1 멘토링을 하도록 했다. 사교육비와 청년 문제를 복지공동체에서 해결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대문구에는 홍제동 대학생 연합기숙사 멘토링을 포함해 현재 총 470명의 청년이 멘토링에 참가하고 있다.

올해 4월에는 공유 공간 플랫폼 ‘스페이스클라우드’를 운영하는 (주)엔스페이스와 협약을 맺었다. 청년들에게 문화를 주도하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다.

“옥탑방을 활용해 스터디와 파티, 옥상 상영회 등을 할 수 있는 ‘상모’, 낮에는 스터디 공간으로, 저녁에는 학생들의 공연장으로 활용하는 ‘더블듀스’를 비롯해 청년들의 다양한 활동의 거점이 될 수 있는 공간을 500개까지 늘려 볼 생각입니다.”

낡은 모텔을 인수해 청년의 주거 문제와 창업 공간을 동시에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빈 점포를 톡톡 튀는 청년들의 아이디어로 채우는 ‘청년 점포’도 늘려 나가는 등 청년 일자리와 상권 활성화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계획도 진행 중이다. 

‘젊음의 거리’ 상징물로 등장한 ‘신촌 플레이버스’. 장수선 인턴기자 grimlike@hani.co.kr

차 없는 거리로 신촌 상권의 부활 시동

복지 분야 외에 문 구청장이 열성을 쏟고 있는 사업은 신촌 상권의 부활이다. 홍대에 빼앗긴 옛 신촌의 명성을 되찾아놓겠다는 문 구청장의 각오는 연세로 ‘차 없는 거리’ 운영으로 구체화됐다.

2014년 1월부터 주말에 시행 중인 ‘차 없는 거리’ 연세로에는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청년 거리의 부활을 알리는 상징물로 거리 한복판에 ‘신촌 플레이버스’도 만들었다. 헤드폰을 낀 이층버스는 이제 연세로의 상징이 되었다.

문 구청장은 장차 연세로를 평일에도 차가 다니지 않는 거리로 만들고 싶어 한다. 신촌 상권을 살리기 위해서는 자동차 대신 즐길거리가 넘치는 거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오스트리아 빈의 케른트너 거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거리는 모두 차가 다니지 않습니다. 차가 없어도 즐길거리만 있으면 사람들은 모이게 되어 있습니다. 지난해 이틀 동안 무려 3만 명 이상이 다녀간 ‘신촌 물총축제’가 다음 주말에 열립니다. 그다음에는 ‘신촌 맥주축제’, 그다음에는 ‘신촌 워터슬라이드’ 축제가 주말마다 이어집니다. 꼭 와서 보십시오. 저는 연세로를 날마다 축제가 열리는 세계적인 명물로 만들고 싶습니다.”

문 구청장은 두 번의 낙선 끝에 구청장이 됐다. 국민의 정부 말기였던 2002년, 참여정부 때인 2006년 연속 낙선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정치를 함께했던 그로서는 시련의 시기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국회의원 출마를 권유받았지만 제가 거절했습니다. 저는 지역 주민의 삶을 실질적으로 향상시킬 수 있는 행정을 하고 싶었습니다. 국회의원은 안산(무악산)에 장애인들도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드는 일은 할 수 없을 겁니다. 구청장이 되어 훨씬 더 보람 있는 일도 하고 정치적 경륜도 쌓고 있습니다.”

서대문구 안산 순환형 무장애 자락길은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감탄사를 자아낸다. 문 구청장이 시작한 ‘복지 허브’는 전국의 지자체로 퍼지고 있고, 동 주민센터의 변신은 서울시의 ‘찾아가는 동 주민센터’로 더욱 발전하고 있다. ‘100가정 보듬기’는 어느덧 390가정에 희망의 빛을 비춰 주었다.

“이들 가정에 지금까지 매달 생활비로 전달된 금액은 총 19억 원인데, 이건 거의 기적입니다. 저는 늘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사람들에게 이야기합니다. 한 사람의 생명을 구하는 것이 곧 세계를 구원하는 것이라고요.”

‘서대문 키다리 아저씨’란 별명을 갖고 있는 문 구청장은 이미 3선 출마를 생각하고 있다. 자신이 벌여놓은 일을 마무리하겠다는 뜻이다.

김정엽 기자 pkjy@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