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세운의 기술장인과 청년 스타트업, 손잡고 세계를 놀라게 하다
세운상가 브랜드 ‘세운메이드’…금속장인과 청년 디자이너가 만든 전통주 잔 등 호평
등록 : 2020-06-25 15:15
세운상가의 인적·물적 자원으로 제작
오래된 산업단지가 ‘창의 기지’ 도약
‘신구 조화’로 세계적 모범 사례 꼽혀
‘세운맵’, 도심제조업체 관련 정보 가득
“지속 가능한 생산과 소비의 균형을 이룬, 도심제조업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도시의 미래 가치를 찾아야 할 때다. 이런 면에서 세운상가는 도시가 가야 할 4차 산업혁명의 길을 제대로 보여주는 좋은 모델이다.”
서울 한복판에 자리 잡은 `세운~을지로~청계천’ 일대의 제조업을 두고 독일의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한 볼프강 도르스트 정보통신산업협회(BITKOM) 사무총장은 2017년 이렇게 말했다.
2019년 5월 도심에 형성된 제조업의 산업생태계를 주제로 진행된 ‘세운 글로벌 포럼’을 찾은 국외 전문가들도 “도심 한복판에 대규모(총 43만8585㎡)의 제조업 생태계를 기반으로 청년 스타트업을 끌어들이는 방식의 산업재생을 꾀한 곳은 북미·유럽에서도 흔치 않다”고 입을 모았다.
왜 이들은 서울 사대문 한복판에 있는 오래된 제조업 단지에 주목하는 걸까. 저성장 시대를 맞아 전세계가 도심제조업이 쇠퇴하는 국제적 지형 안에서 고민할 때 서울시는 2014년 무렵부터 부동산 개발, 역사 보존, 도시재생 정책이 교차하는 독창적인 길을 걸어왔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세운상가 장인의 기술문화와 이곳으로 모여든 청년 스타트업의 창의적 정체성에 주목했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운상가에 청년 스타트업을 입주시키고, 지난 30~40년간 세운상가에서 활동한 기술장인들과 협업하도록 해 창의 제조산업의 전진기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1970년대 청계천 세운상가는 `이 일대를 한 바퀴만 돌면 탱크도 만들고 잠수함도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손기술이 좋은 장인들이 모인 곳으로 유명했다. 구하지 못하는 부품이 없고, 고치지 못하는 게 없는 기술장인들이 포진한 세운상가, 이곳에 최근 몇 년간 청년 스타트업들이 삼삼오오 입주하고 있다. 이들은 `세운메이드’를 통해 꿈을 펼치고 있다고 한다. 서울시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인 세운메이드는 청년 스타트업이 세운상가에 있는 기술장인과 협업과 구체적인 시제품 제작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넓게는 도심제조업 사업자나 개발자들의 참신한 아이디어를 도심제조업의 혁신지인 세운상가의 인프라를 활용해 지속적으로 선보이도록 돕는 프로젝트다.
올해 서울시가 세운상가 내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제작한 세운메이드 제품은 총 14개다. 오디오·멀티미디어, 오락기, 조명, 시계, 노래방기기, 영상기기에서부터 디자인 중심의 금속 조명, 금속 소품, 전자기기 등 기술문화와 관련된 디자인 제품이다. 구체적으로는 ‘다시세운: 세운메이드 프로젝트’에 선정돼 개발된 제품 6개와 세운상가 일대 기술장인·청년들이 지역 내 기술과 자원으로 제작한 신제품 8개로 구성돼 있다.
살펴보면 하나하나 아이디어가 반짝인다. 양초에 불을 붙이면 음악이 재생되는 장식소품 ‘뮤직 캔들’은 어디서든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사용자 마음대로 위치와 배열을 바꿀 수 있는 조명 ‘메아리’(Soobee 제작)도 눈길을 끈다. 어떤 음료병에든 끼워서 가볍게 외출할 수 있는 캡형 살균기 ‘원모어랩 보틀 살균기’(원모어랩 제조)는 88g의 가벼운 무게로 어떤 음료에든 사용이 가능하다.
세운메이드 제품은 지난해 모두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텀블벅에서 `세운메이드 기획전’을 통해 공개돼 호평받았다. 제품별로 일정 부분 이상 시민 투자가 이뤄지면 제품화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반응은 뜨거웠다. 한 예로 서울에 기반을 둔 북유럽과 한국의 디자이너가 협업하는 `아몬드 스튜디오’가 세운상가 금속장인과 협업해 만든 전통주 잔 ‘술라’(Sula)는 예상 금액을 537% 뛰어넘는 펀딩에 성공했다.
세운상가에서 만들어졌다는 정체성이 그대로 반영된 `레트로’ 디자인에 신기술을 접목한 게 인기 비결로 꼽힌다. 장인이 만든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가 대표적이다. 디자인 전문 스튜디오 ‘어보브스튜디오’와 50여 년 동안 전자기기·자동제어·오디오 분야 전문가로 활약해온 류재룡 장인이 협업한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 `Knot, Sound Above’도 펀딩 예상 금액 173%를 웃돌며 인기를 끌었다.
이어 ‘카세트테이프 MP3 플레이어’(비비티 제작)도 주목할 만하다. MP3 음원파일 1천여 곡을 담을 수 있다. ‘사랑방 2020_빛그릇’(Design Ownn)은 한국의 미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한 조명이다. 금속디자이너와 전자공학 엔지니어가 한 팀으로 개발했다. 강맹훈 서울시 도시재생실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다시세운: 세운메이드 기획전'을 통해 다양한 세운상가 제품이 시민에게 쉽게 다가갈 뿐만 아니라 세운상가 기술장인과 청년 메이커들의 협업을 통한 도심제조산업도 활성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세운상가 일대는 도심제조업이 밀집된 지역으로 기술력을 갖춘 공장과 각종 부품·재료 유통업체, 가공업체가 다수 분포돼 있다. 그동안 다양한 메이커, 디자이너, 창업자 등이 신제품 제작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그러나 워낙 대규모 단지여서 지역 업체의 정보 활용에 어려움도 있었다고 한다. 신구의 ‘협업’을 독려하기 위해 서울시는 4월28일 세운상가 일대의 도심제조업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온라인 지도 ‘세운맵’(map.sewoon.org)을 출시했다.
이용 방법은 간단하다. 한 예로 검색창에 스피닝 선반에 금속판과 금형을 맞물려 회전시키는 가공 방식을 뜻하는 ‘시보리’를 입력해보자. 세운상가 일대에 소재한 시보리 업체 목록과 시보리에 대한 기술용어 설명이 나타난다. 업체 목록은 ‘가나다순’ ‘추천순’ ‘내 위치와 가까운 순’으로 선택할 수 있고, 전화번호, 웹사이트, 상세 품목, 사진, 태그(특징) 등을 통해 업체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별도의 회원 가입 절차 없이 세운 일대 2500여 도심제조업체 정보와 제작 사례, 세운상가 내부 지도 등 다양한 정보를 손쉽게 알 수 있다. 또한 업체와 방문자들이 원활한 거래를 할 수 있도록 기술 중개 사례를 소개하며 소량 제작에 최적화된 도심제조업 지역의 실질적인 이용 방법을 제시한다. 초보자를 위한 ‘청계천 기술용어’ ‘충무로 인쇄용어’ 등 70여 개의 용어와 설명 서비스도 이용할 수 있다.
산업재생은 구역 안의 재생이 아니라 구역 밖까지 산업생태계 망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한다. 세운에서 동대문까지 이어질 수 있는 도심 제조 창의 산업 비전이 여기 이곳, 세운상가에서 시작되고 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서울시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세운상가
왜 이들은 서울 사대문 한복판에 있는 오래된 제조업 단지에 주목하는 걸까. 저성장 시대를 맞아 전세계가 도심제조업이 쇠퇴하는 국제적 지형 안에서 고민할 때 서울시는 2014년 무렵부터 부동산 개발, 역사 보존, 도시재생 정책이 교차하는 독창적인 길을 걸어왔다. 이 과정에서 서울시는 세운상가 장인의 기술문화와 이곳으로 모여든 청년 스타트업의 창의적 정체성에 주목했다. 당시 박원순 서울시장은 “세운상가에 청년 스타트업을 입주시키고, 지난 30~40년간 세운상가에서 활동한 기술장인들과 협업하도록 해 창의 제조산업의 전진기지로 만들겠다”고 밝혔다.
세운베이스먼트
아몬드스튜디오가 제작한 잔 ‘술라’.
진공관 블루투스 스피커. 어보브스튜디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