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에서 만나는 ‘뜻밖’ 도롱뇽 서식처
언택트 시대에 인기 치솟는 여름철 ‘백사실 계곡 탐방’
등록 : 2020-07-16 14:55
부암동 주택가에서 10여분 올라가면
아는 이만 아는 소담하고 맑은 휴양지
도롱뇽과 버들치, 가재 등 반겨주는 곳
바람처럼 머물다 바람 안고 돌아온다
도시인들 ‘더듬이’가 빠르게 움직인다. ‘언택트(untact) 시대’에서 맞은 첫 여름, 휴가철을 어떻게 보낼지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외 말고 국내로, 장기 숙박보다 단기 체류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가능한 한 집에서 가까운 여행지가 선호받는 오늘날이다. 모든 조건을 채우고서 ‘초록빛 쨍한’ 자연의 숨결까지 챙기고 싶다면 서울 속 ‘계곡 탐방’을 떠나본다. 북악산 북쪽 자락에 있는 ‘백사실 계곡’은 아는 이만 안다는 소담하고 맑은 휴양지다. 종로구 도심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으니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다.
골목 끝 불쑥 나타나는 청정 계곡 “서울에 계곡이 있다고요?” 으레 대도시는 ‘회색 빌딩 숲’이 전부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서울은 산이 많은 도시다. 중심엔 내사산(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이 바깥엔 외사산(북한산, 관악산, 수락산, 도봉산)이 첩첩이 둘러싸 산골짜기마다 이름난 계곡도 많다. 도심 언덕배기 좁은 골목길들이 구불구불한 실개천 모양임을 발견했다면, 이는 먼 옛날 하천을 복개하거나 물이 마른 옛 물길이었을 확률이 높다. 길 끝엔 늘 원줄기가 있다. 백사실 계곡을 처음 찾는 이가 당황하는 점도 불현듯 나타나는 계곡 때문이다. 부암동 주택가 언덕을 10여 분 동안 굽이굽이 오르다가 ‘이 길이 맞나?’ 싶을 때 숲길이 나타나고, 몇 발자국 들어서면 졸졸졸 물소리가 들어찬다. 지난 4일 오전, 일찌감치 백사실 계곡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 초여름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림 동호회에서 나온 대여섯 명은 색연필로 일대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고, 보더콜리와 산책 나온 주인은 어디든 드러눕는 반려견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도심 속 ‘1급수 지표종 발견’ 이례적 백사실 계곡은 1급수 맑은 물에서만 사는 도롱뇽 집단 서식지다. 도롱뇽은 서울특별시 자연환경보전조례에 의한 서울시 보호야생동물이다. 2004년 도롱뇽 알주머니 수만 개가 계곡 1㎞ 구간에서 발견된 것은 ‘서울 사대문 안에서’ 1급수 지표종이 발견된 이례적 사건으로 꼽힌다. 이 밖에 무당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야생동물들이 바위마다 이웃해 산다. 보존 가치가 높아 백사실 계곡은 ‘생태경관보전 지역’으로 지정됐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등 수질을 저하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바람처럼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기분으로, 서로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평소엔 수량이 적어 폭포수 같은 물줄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대신 숲과 계곡물이 깨끗하게 관리돼 숲길 트레킹에 최적이다. 계곡 따라 하얀 반석과 바위들이 널려 걷기 좋고, 짙은 숲길을 헤쳐 나가는 맛도 좋다. 보통 세검정초등학교 방향에서 출발해 옛날엔 자두밭이 지천이었다는 능금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 능금마을에선 여전히 몇몇 가구가 땅을 일구며 산다. 백사실 계곡이 절정의 풍경을 뽐내는 건 비 온 직후나 장마 직후로 알려졌다.
21세기에 만나는 추사 김정희의 휴양지 백사실 계곡 속 ‘백석동천’(사적 제462호)은 유독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오성과 한음으로 더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의 별장 터이자 추사 김정희가 머물렀다는 조선시대 별서 터가 남아 있다. 묵직한 주춧돌, 사랑채로 오르는 돌계단, 동그란 연못 자리와 육각정 초석 등이 남아 옛집의 도면을 보는 기분이다.
‘별서’란 자연에 귀의하고자 전원 깊숙한 곳에 외따로 지은 집을 말한다. 한갓진 마음으로 한양 중심을 떠나와 한 계절을 보냈을 이들의 풍경을 쉽게 그려볼 수 있다. ‘백석동천’의 ‘백석’은 백악(북악산)을, ‘동천’은 예부터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을 뜻할 때 자주 썼다. 백사실의 어원도 실상 이항복의 호에서 유래해 마을 사람들로부터 구전됐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백사 이항복이 이곳에 머물렀단 확신은 없고, 대신 추사 김정희가 <완당전집>에서 1830년께 이곳을 매입한 뒤 일종의 증축과 리모델링을 거쳐 머물면서 시를 지었다고 적어 후대의 의문이 다소 풀렸다는 이야기다.
계곡 한편에 ‘백석동천’과 ‘월암’이라 새겨진 각자 바위가 숨어 있다. 다가가 만져본다. 특히 월암 바위는 보름달 뜬 밤에 맑은 빛을 내비친다는 자원봉사자들 전언이 있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도시인들 ‘더듬이’가 빠르게 움직인다. ‘언택트(untact) 시대’에서 맞은 첫 여름, 휴가철을 어떻게 보낼지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외 말고 국내로, 장기 숙박보다 단기 체류로, 사회적 거리를 유지하며 가능한 한 집에서 가까운 여행지가 선호받는 오늘날이다. 모든 조건을 채우고서 ‘초록빛 쨍한’ 자연의 숨결까지 챙기고 싶다면 서울 속 ‘계곡 탐방’을 떠나본다. 북악산 북쪽 자락에 있는 ‘백사실 계곡’은 아는 이만 안다는 소담하고 맑은 휴양지다. 종로구 도심에서 걸어서 15분이면 닿으니 부담 없이 떠날 수 있다.
백사실 계곡에 초록이 차올랐다. 지난 4일 토요일 오전, 한 시민이 바위에 앉아 추사 김정희가 머물렀던 별서 터 주변을 화폭에 담고 있다.
골목 끝 불쑥 나타나는 청정 계곡 “서울에 계곡이 있다고요?” 으레 대도시는 ‘회색 빌딩 숲’이 전부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서울은 산이 많은 도시다. 중심엔 내사산(인왕산, 북악산, 남산, 낙산)이 바깥엔 외사산(북한산, 관악산, 수락산, 도봉산)이 첩첩이 둘러싸 산골짜기마다 이름난 계곡도 많다. 도심 언덕배기 좁은 골목길들이 구불구불한 실개천 모양임을 발견했다면, 이는 먼 옛날 하천을 복개하거나 물이 마른 옛 물길이었을 확률이 높다. 길 끝엔 늘 원줄기가 있다. 백사실 계곡을 처음 찾는 이가 당황하는 점도 불현듯 나타나는 계곡 때문이다. 부암동 주택가 언덕을 10여 분 동안 굽이굽이 오르다가 ‘이 길이 맞나?’ 싶을 때 숲길이 나타나고, 몇 발자국 들어서면 졸졸졸 물소리가 들어찬다. 지난 4일 오전, 일찌감치 백사실 계곡을 찾은 이들은 저마다 초여름 정취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림 동호회에서 나온 대여섯 명은 색연필로 일대 풍경을 화폭에 담고 있고, 보더콜리와 산책 나온 주인은 어디든 드러눕는 반려견 때문에 웃음이 터졌다.
주인과 산책 나 온 반려견
도심 속 ‘1급수 지표종 발견’ 이례적 백사실 계곡은 1급수 맑은 물에서만 사는 도롱뇽 집단 서식지다. 도롱뇽은 서울특별시 자연환경보전조례에 의한 서울시 보호야생동물이다. 2004년 도롱뇽 알주머니 수만 개가 계곡 1㎞ 구간에서 발견된 것은 ‘서울 사대문 안에서’ 1급수 지표종이 발견된 이례적 사건으로 꼽힌다. 이 밖에 무당개구리, 버들치, 가재 등 야생동물들이 바위마다 이웃해 산다. 보존 가치가 높아 백사실 계곡은 ‘생태경관보전 지역’으로 지정됐다. 계곡물에 발을 담그는 등 수질을 저하하는 행위는 금지된다. 바람처럼 잠시 머물렀다가 떠나는 기분으로, 서로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평소엔 수량이 적어 폭포수 같은 물줄기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 있지만, 대신 숲과 계곡물이 깨끗하게 관리돼 숲길 트레킹에 최적이다. 계곡 따라 하얀 반석과 바위들이 널려 걷기 좋고, 짙은 숲길을 헤쳐 나가는 맛도 좋다. 보통 세검정초등학교 방향에서 출발해 옛날엔 자두밭이 지천이었다는 능금마을 방향으로 내려간다. 능금마을에선 여전히 몇몇 가구가 땅을 일구며 산다. 백사실 계곡이 절정의 풍경을 뽐내는 건 비 온 직후나 장마 직후로 알려졌다.
계곡 깊숙이 들어가면 하얀 반석과 짙은 숲길이 트레킹 재미를 더한다.
21세기에 만나는 추사 김정희의 휴양지 백사실 계곡 속 ‘백석동천’(사적 제462호)은 유독 경관이 수려한 곳이다. 오성과 한음으로 더 잘 알려진 백사 이항복의 별장 터이자 추사 김정희가 머물렀다는 조선시대 별서 터가 남아 있다. 묵직한 주춧돌, 사랑채로 오르는 돌계단, 동그란 연못 자리와 육각정 초석 등이 남아 옛집의 도면을 보는 기분이다.
백석동천에서 짧은 휴식
백사실 계곡 들머리에 있는 현통사에서 마음도 가만히 닦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