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좁고 습한 집 아이들, 코로나 자가격리 속 ‘우울감’ 등 심해져

코로나 여름이 유난히 힘든 주거취약 주택 아이들 ❶ 1인당 공간점유 평수 2.8평에 사는 어린이 집중 인터뷰

등록 : 2020-07-30 15:53 수정 : 2021-01-22 17:11
“문 닫으면 곰팡이균, 문 열면 쥐의 습격이 이어져”


종일 머물면 가만히 숨쉬기 어려운 곳

좁은 집이 감염병과 만나 흉기 돼버려

‘코로나 이후 아동 주거권’ 고민 절실해

지난 6월부터 7월까지 두 달 동안 반지하 등 주거 빈곤 속에서 상반기를 보낸 아동들을 만났다. 1인당 평균 공간점유 평수 2.8평. 실상은 이보다도 못하다. 좁은 집 속 아이들은 짐처럼 ‘적재’된다. 짐도 사람도 ‘쌓는 게’ 삶이 된다.

“저기 그런데요. ‘집’이 우릴 정말 구해줄 수 있나요?”

동작구 상도동. 6월22일 오전 반지하 주택에서 만난 정애(13)가 물었다.


“왜?” 되묻자 정애가 씩 웃었다. “제가 <엠비시>(MBC) ‘구해줘 홈즈’ 팬인데요. 거기 사람들이 다 행복해 보여서요. 저도 신청하고 싶은데 엄마가 절대 안 된대요. 우린 2억, 3억 쉽게 말할 처지가 아니라고.”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세계가 부산한 오늘날, 모두 안녕치 못한 계절을 견디고 있다. 고통의 크기에 순위를 매길 순 없다. 단 ‘자가 격리’와 ‘사회적 거리 두기’ ‘여름 휴가철 집에서 보내기’가 방역지침인 시대는 좁고 습한 집에 갇힌 아이들에게 유난히 길고 고되다.

지난 두 달 동안 주거 빈곤 속 아이들 6명과 보호자 6명을 여러 차례 만나 안부를 물었다. 6가구 주거면적 총합(약 66평/220㎡)에 가구원 수(23명)를 단순히 나누니 1인당 공간 점유 평수는 2.8평. 실면적은 이의 반이다. 아이들은 ‘몸체를 구기는 요령’ 먼저 익혔다.

척추를 접고, 어깨를 구부리며, 효율적으로 포갤 줄 알게 됐다. 내 몸의 부피만큼 불편해진 여름, ‘우리 집 고발에 나선’ 용기 있는 아이들을 만났다. 모든 이름은 가명이다.


노예처럼 사람을 ‘쌓으며’ 버텼다

정애는 지난봄 시궁쥐들과 전투를 벌였다. 처음은 아니었다. 모두가 2020년 쥐의 해를 축복할 때 정애는 부엌에 ‘끈끈이’를 놨다. “이것들이 머리가 좋고 완전 커요. 약을 쳐도 ‘찐득이’를 붙여도 쥐똥을 부엌 여기저기 싸놔요. 냄새가 너무 고약해요. 집에서 늘 쥐 냄새가 나요.”

1989년에 지은 주택 반지하에 정애네 가족이 산다. 엄마와 고1, 중2 오빠까지 4명이다. 서류상 면적은 16평(56㎡)인데 구옥 특성상 죽은 공간을 빼면 실평수는 12평 남짓이다. 이 집에서 정애에게 허락된 면적은 두 평 정도. 키가 165㎝인 정애가 지내는 곳이다.

벽면을 뒤덮은 곰팡이를 없애려면 환기가 필요하고, 환기하려면 창을 열어야 하며, 창을 열면 쥐가 병균을 묻혀 들어왔다. 어떤 균이 더 해로울까. 난제였다. “그래서 제가 하루에도 몇 번 고민인 거예요. 창을 열까 말까.” 정애는 창문에 덫을 놔 쥐 두 마리를 잡아 죽였다.

“코로나 때문에 밖에 나가면 안 되니까 집에 대부분 있었죠. 그런데 집이 좁고 공기가 안 좋아서요. 가만히 숨 쉬고 있기도 정말 쉽지 않은 거예요. 가려워서 긁으니까 피부가 늘 붉고요. 그리고 다들 몸이 부딪쳐요. 짜증도 나고요. 덥고요. 머리가 맨날 아픈 거예요.”

상반기, 서준(16)에게 집은 "숨 쉬기 힘든 곳"이었다.

정애 엄마 김아무개(43)씨는 2~3알 복용하던 우울증약을 5월부터 5알로 늘렸다. “처음엔 병을 감췄어요. 다들 힘든 시기인데, 애 엄마로서 더 버텨야지 하면서. 그런데 집에 갇히면 몸에 전기가 오르는 증상이 생기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면 숨을 못 쉬는 증상이 심해지고.”

정애가 몸을 구겨 ‘사는’ 시범을 보였다. “이렇게 살았어요. 오빠들은 쌓고요.” 오빠들을 쌓는다는 건 뭘까. 엄마 김씨가 덧붙였다. “매트 없는 벙커 침대 프레임만 놓고 장성한 남자애들 둘을 위아래로 쌓듯 재우는거죠. 애들이 갑자기 훌쩍 크면서 잘 공간이 없어서요.”

김씨 목소리가 흔들렸다. “집값은 제가 쳐다볼 수 없을 만큼 오르고 아이들은 쑥쑥 자라요. 그때부터 사는 게 아니라 사람을 쌓는 기분으로 살게 되더라고요. 로마 시대 노예들은 짐처럼 적재해 다른 곳으로 옮겼다는데. 우리가 집의 노예 같은. 그런 기분이 요즘 들어요.”


아이들 몸에 새겨진 반지하 연대기

6가구 보호자들은 입을 모았다. 가난은 급작스러웠노라고. 예상 못한 사업 사기 부도, 배우자 사별, 중증 암질환 등 인간사 벌어질 만한 일들이 차곡차곡 가계부채를 만들었고, 이미 태어난 아이들은 집주인들이 ‘골칫거리’라며 밀어냈다. 물이 새는 반지하라도 일단 몸을 뉘어야 했다.

아이들은 주거 환경의 모든 것을 세포 분열과 성장에 썼다. 옆 동네 지윤(10)도 마찬가지였다. 지윤의 등본 속 전입신고는 총 6번. 서류 속 반지하 단칸방의 결로, 습기와 악취, 어둠, 옆집 이주노동자 여성의 성관계 소음, 알코올중독자 아저씨의 성난 고함이 지윤의 몸에도 스몄다.

지윤이는 용산구 반지하 “쪼갠 방”에서 태어났다. 선천성 심장천공으로 태어나자마자 병원 신세를 졌다. 내내 알레르기, 비염과 천식 등 기관지염, 아토피를 앓고 나서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매일 눈물을 흘린다는 교사의 말에 정신분석감정을 받자 ‘사회성 결핍’ 판정이 나왔다.

엄마와 둘이서 보증금 없는 무허가주택반지하 월세방을 전전하다가 여섯 살 되던 해 동작구의 약 6평짜리 다가구주택 3층 단칸방에 정착하며 땅속을 “탈출”했다. 서울주택도시공사(SH) 임대주택으로 전셋값을 지원받아 가까스로 “살아남았다”고 엄마 박아무개(38)씨가 말했다.

지윤이 말했다. “옛날엔 제가 되게 작아서 세 평 공간도 커 보였어요. 지금은 제가 이만큼 커서요. 그때보다 지금이 더 힘들어요. 두 번 구르면 바닥이 없어요. 보세요. 잘 때 (가구에 찧어) 다리에 상처난 거예요. 제 방이 필요해요. 친구들도 집에 초대해 같이 놀고 싶어요.”



지윤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지만 “화가가 될 이유는 없다”고 했다. “돈을 못 벌잖아요. (웃음) 의사가 되고 싶어요. 돈도 많이 벌고 남도 도울 수 있으니까요. 부자가 되면 재산의 반절은 넓은 집을 사는 데 쓸 거예요. 남은 반절은 엄마랑 여행을 가고 사회에 기부할 거예요. 집이 제일 먼저예요.”

정애가 보여준 그림.

앞서 반지하에서 13년을 보낸 정애와 지윤의 몸은 데칼코마니처럼 비슷했다. 정애 역시 선천성 심장천공을 가지고 태어나서 기관지염·피부염을 앓았다. 정애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돌연 ‘지적장애 3급’ 판정을 받았다. 우울감과 산만함이 심해졌다.

정애와 지윤뿐일까. 6가구 가족 구성원 23명은 저마다 크고 작은 ‘반지하 연대기’를 지녔다.

동작구 한 다세대주택 반지하에서 자란 서현(12)이 집은 바닥 일부가 주저앉고 골조 자체가 기울어 집을 가로질러 금이 갔다. 무엇보다 실평수 12평 안팎인 공간에서 부모님과 동생 2명이 함께 살다보니 온라인 등교를 하던 상반기엔 생활이 중첩돼 “난리도 아니었다”는 엄마 김아무개(42)씨의 말이다.

상도동 정애의 오빠 서준(16)과 민준(14)도 모두 기관지와 호흡기 질환을 앓아 병원을 한 차례씩 들락거리거나 입원했다. 대여섯평짜리 서울 반지하방을 전전하다가 올해 엄마 직장이 있는 경기도 안산으로 이주한 정재(10)도 비염과 알레르기를 달고 살았다.

6가구에 사는 13명 아동 중 5명이 학교와 자치구·복지단체에서 시행한 정신분석감정에서 ‘우울감’ ‘분리불안’ ‘지적장애’ 같은 증상을 하나 또는 두 개씩 보였다. 모두가 ‘자가격리’에 들어갔던 봄, 없던 질병이 새로 생기거나 심화했음은 두말할 필요 없다.

홀로 엄마를 기다리는 정재.


“애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이렇게 놔둘까요?”

코로나바이러스와 집 안을 떠도는 병균 가운데 무엇이 더 실체적일까. 일상의 불편함이 위기가 될 수 있는 오늘날, 열악하고 좁은 집은 감염병과 만나 흉기가 됐다.

주거 빈곤 속 아이들에게 바이러스는 평등하지 않았다. 줌(Zoom) 앱 너머로 집의 누추함이 생중계되자 ‘가난한 집 애’란 낙인이 찍혔다. 인터넷 선과 스마트폰이 부재한 집 안 속 ‘디지털 차별’은 남보다 ‘재난정보와 건강정보’를 뒤늦게 받아들이게 했다.

맞벌이하는 부모나 한부모 가정, 혹은 중증 암질환이나 기관지 질환을 앓았던 부모의 갑작스러운 입원, 형제자매의 통원치료로 발생한 ‘돌봄 부재’는 대안공간이 급격히 줄어든 올해 상반기 여섯 가구 부모들이 공통으로 꼽은 “고통스러웠던 점”이기도 했다.

서울 한 재개발구역 지역아동센터에서 오랫동안 빈곤 아동들을 돌봐온 활동가는 올해 상반기가 유독 괴로웠다고 설명했다. “가난한 아이들에게 투표권이 있다면 정치하는 어른들이 이렇게 뒀을까요? 뭐라도 좀 실효성 있는 주거 대책을 꾸준히 내놓지 않았을까요?”

동작구에 사는 지윤 엄마 박씨가 말했다. “그래도 우리는 정말 운이 좋았다”고. “벼랑 끝 정착한 동네와 동작주거복지센터의 인간적 배려가 기억에 남아요. 이렇게 배려가 있는 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서현 엄마 김씨도 말했다. “불편함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답답함이 풀리죠.”

21세기 서울에서 아동 10명 중 1명이 집에서 병든다. 여섯 가구 아이들은 내일 조금 더 구겨질 준비를 한다. 출발은 작은 관심일지 모른다. ‘코로나 이후 아동 주거권’에 관한 새 가이드라인과 논의가 시급하다.

글·사진 전유안 객원기자 fingerwhale@gmail.com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