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거빈곤 아동, 원격수업 받을 공간 자체도 없어”
코로나 여름이 유난히 힘든 주거취약 주택 아이들 ❷ 전염병 확산에 주건빈곤 아동 ‘출발선’ 더 뒤로 밀려
등록 : 2020-08-06 16:03 수정 : 2020-08-06 19:18
주거빈곤 속 아이들이 각자 ‘좋은 집’에 대한 의견을 보여줬다. “가족들이 함께 행복한 집” 그리고 “조금만 더 넓은 집”. 위생과 안전을 보장받고 몸을 웅크리지 않아도 되는 공간. 결국 아이들 살고 싶은 집은 ‘기본권을 보장한 집’이었다.
“비좁은 공간 10년, 머리가 멈추더라” 1인당 2.8평. 이는 지난 두 달 동안 서울에서 만난 주거 빈곤 속 아이들이 가진 공간 크기다. 6가구 주거면적 총합(220㎡)에 가구원 수(23명)를 단순히 나눴다. 정부가 정한 1인 가구 최저 주거면적 14㎡(약 4.2평)보다 좁다. 실상은 이보다 못했다. 코로나19로 ‘자가격리’가 방역지침인 계절, 아이들은 몸체를 줄이는 요령부터 익히고 있다.
정애 집은 잡다한 물건이 키만큼 쌓였다. 정애 엄마 김아무개(43)씨는 사업 부도를 맞은 남편과 급작스러운 사별 뒤 고1, 중2, 중1 아이 셋과 10평이 채 안 되는 반지하에 살아온 동안을 “머리가 멈춘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언젠가 필요할 거란 불안에 모든 물건을 쌓고 있어요. 전엔 정리와 요리를 잘해 살림꾼이란 소리를 들었는데, 올봄엔 갑자기 파김치와 오이소박이 담그는 법도 생각이 안 나요. 주변 도움으로 병원에 갔더니 공황장애와 우울증이란 진단이 나왔어요. 아이들 셋도 나란히 피부질환과 우울감을 호소하고. 그때 깨달았어요. 집이, 단순한 주거 그 이상일 수 있겠구나.” ‘이주’도 쉽지 않다. 6가구 보호자들 말을 종합하면 ‘집을 옮긴다는 건 삶을 뿌리째 옮긴다’는 뜻이다. 생활 반경 안에 ‘겨우’ 형성한 공교육·의료시설, 주민센터, 드림센터, 주거복지센터 등 삶의 거점을 비롯해 그물처럼 형성된 관계를 모두 옮겨야 하는데, 여기에 특정 병력으로 통원치료를 받는 아이들 병원이 포함된 경우 이주는 꿈의 일이 된다. 정애 엄마 김씨의 말이다.
6평 임대주택에서 엄마와 둘이 사는 지윤은 책을 좋아한다. 백일장에서 상을 받은 적도 있다. “ 속 유비가 좋아요. 마음이 넓고 백성을 지켜주며 싸우거든요.”
좁은 공간이 아이들 정서를 좀먹는다 열악한 주거환경은 성인은 물론 아동에게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고 알려졌다. 외국에선 거환경과 아이들 건강상태에 대한 연구를 꾸준히 선행해왔다. 미국 보스턴, 시카고, 샌안토니오 도시 저소득 가정 아동과 청소년 2400명을 대상으로 6년 동안 실시했던 맥아더재단(MacArthur Foundation)의 연구가 한 예다. 재단이 2011년 내놓은 ‘열악한 주거환경이 아동들의 정서적, 행동적 문제에 영향을 끼친다’(Poor Quality Housing is Tied to Children's Emotional and Behavioral Problems)를 보면 아동 건강에 가장 중요한 요소로 ‘주거환경의 질’을 꼽는다. 비주택 등 열악한 집에 사는 가정의 경우 부모 역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을 확률이 높으며, 이는 자녀에게 영향을 끼쳐 우울증, 불안증, 거짓말과 공격성 등 정신적 문제를 일으킨다는 분석이다. 이는 앞서 방문한 6가구 아이들이 겪는 공통적 문제와도 맞닿는다. 아이들 13명 모두 호흡기질환을 앓은 적 있고, 그 가운데 5명이 학교와 자치구·복지단체가 한 정신분석감정에서 ‘우울감’ ‘분리불안’ ‘지적장애’ 같은 증상을 하나 또는 두 개씩 보였다.
““아이들이 처음부터 좌절 않도록 사회 모든 역량 집중해야”
피부질환과 우울감 달고 사는 아이들 해비타트 ‘새집 지어주기’ 선발 소식에 얼굴에는 금세 웃음, 빠른 호전세 보여 “사회적 고립 막을 대안공간 논의 필요”
국제비영리단체(INPO) 해비타트에서 2015년 시행한 ‘입주가정 영향 연구’(Homeowner Impact Study)는 1989년부터 2014년 사이 미네소타 해비타트의 도움으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402가구를 연구한 보고서다. 연구에 의하면 열악한 주거환경에 처한 아동은 아동·청소년기에 뇌수막염, 천식, 발달장애 등 질병으로 고통받을 확률이 최대 25%에 달한다. 특히 ‘과밀 주거환경’에서 자란 아동은 65~75살에 질병에 걸릴 확률이 일반 성인보다 2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편 최소 주거권을 만족시킨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가구는 보건, 안전, 교육·자신감, 경제, 지역사회 화합, 만족도 측면에서 모두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특히 입주가정 아동의 50% 이상이 학업 성취도가 상승했고 90%는 자신의 미래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한국해비타트 송신혜 팀장은 “집이라는 물리적 공간이 인간에게 정신적·육체적 부분까지 영향을 끼치는 현장을 수시로 본다”며 “예로 ‘새집 지어주기’ 대상에 선발됐다’는 소식만으로 아이들 얼굴에 웃음이 돌고 우울감 등에서 빠른 호전을 보이는 경우가 그렇다. 인간 기본권 중 하나가 ‘주거’인데, 아이들에게 집이 주는 영향을 다각도로 봐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창문이 많아 바람이 통하는 집.” 정애가 그렸다.
코로나 이후 ‘아동 주거권’에 대하여 현장에서는 공공임대주택 양을 늘리고, 가구별로 다양한 사례에 맞춘 입주 기준 완화가 삶에 구체적 도움이 된다고 입을 모았다. 동작구 서현(12) 아빠 박아무개(45)씨는 “부부가 급작스러운 중증질환에 시달리며 일하지 못하게 됐다. 아이 셋 감당이 힘겨워 임대주택 신청을 했는데 여전히 대출 상환 중인 30년 된 낡은 빌라가 ‘자가’란 이유, 또한 고지대에 있는 집에서 아이들 양육에 필수인 1200㏄ 자가용이 ‘월수입’에 포함된다는 이유로 입주가 힘들다. 좀더 현실적이고 세심한 기준이 절실했다”고 했다. 코로나19 이후 ‘긴급돌봄’ 형평성을 고민하고, 돌봄에서 오는 또 다른 차별을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았다. 박민자 영등포구 선유지역아동센터 원장은 “코로나19 사태 직후 구에서 발 빠르게 지원해준 긴급지원비가 가뭄의 단비였다”며 아동 돌봄에 대한 더 많은 관심을 촉구했다. “서울시 긴급돌봄, 키움센터 등 돌봄시스템에 정서상·경제적 이유로 배제된 빈곤 아동들은 자가격리 때 갈 곳이 없어 밥을 굶었어요. 그래서 상반기에 아동센터 선생님들이 직접 밥 배달을 나가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국가 비상상황에선 적어도 아이들 돌봄에 차별이 없도록 아동기관에 대한 관심이 절실합니다.”
“책으로 만든 집.” 다현이 그렸다. 주거빈곤 속 아이들 6명이 정의한 ‘좋은 집’은 삶의 ‘기본권’과 맞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