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소식
종로구민, 청각장애인 영화 ‘나는 보리’ 보며 공감의 시간 가져
종로구, 8월7일 ‘문화 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한 GV’ 행사…구민 대상 무료 상영
등록 : 2020-08-13 16:21
문화부의 ‘무지개다리사업’과 연계한
다양한 문화 주체 소통 돕는 프로그램
2015년부터 6년 연속 주관기관 활동
상영 뒤 감독·출연배우에 박수 쏟아져
11살 소녀 ‘보리’는 짜장면을 시키거나 물건을 살 때, 이처럼 가족이 세상과 소통해야 할 때마다 가족을 대신해 ‘목소리’ 역할을 맡는다. 단오장에 갔다가 가족과 떨어져 길을 잃어도 보리가 먼저 가족을 찾아야 한다. 가족 중 유일하게 소리를 듣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나는 보리>는 ‘코다’(CODA, 청각장애인 부모를 둔 자녀)인 소녀 보리의 이야기다. 수어로 소통하는 가족 사이에서 외로움을 느낀 보리는 가족과 같아지고 싶은 마음에 자신도 ‘소리를 잃고 싶다’는 소원을 빌게 된다.
지난 7일 저녁 종로구 신문로에 있는 독립예술극장 ‘에무시네마’. 지역주민 3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들었다. 종로구청이 종로문화재단과 함께 문화 다양성의 가치와 의미 공유를 위해 <나는 보리>를 무료 상영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이번 무료 상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2020년 무지개다리사업’과 연계돼 마련됐다. 무지개다리사업은 다양한 문화 주체의 소통을 돕고 문화예술 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방점을 둔다. 특히 국내 문화 다양성 정책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지닌다. 종로구와 종로문화재단은 2020년 무지개다리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6년 연속 주관기관으로 활동 중이다. 한 예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종로구 전통생활문화 장인의 기술을 기록하는 사업 ‘손의 기억’을 진행했다. 이어 2018년에는 지역의 문화 특수성을 살리고 지역주민에게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확산할 수 있는 ‘종로문화다양성연극제’를 개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종로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에는 지역주민이 좀더 쉽게 문화 다양성의 의미를 알고 일상에서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 영화 <나는 보리>를 무료 상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어떤 교훈이 담겨 있을까. 평범한 11살 초등학생 소녀가 말을 들을 수도 할 수도 없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동생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한 영화 <나는 보리>를 통해 ‘다름’에 대해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극중에서 보리와 아빠는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청인’(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 아이가 태어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아빠는 “보리가 내심 청각장애인이기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에서 관객은 비로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를 깨닫는다. “네가 들리든, 안 들리든 우리는 똑같아.” 이렇듯 이 영화는 코다 아이가 겪는 외로움을 통해 청각장애인이 세상에 대해 겪는 외로움을 간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리를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외로움을 느끼는 보리의 모습에서 장애를 ‘결핍’이라고 보는 고정관념은 무너진다. 결국 이 영화는 ‘장애인이 소수자이므로 배려받아야 한다’는 기존의 메시지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종로문화재단 관계자는 “경험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소외감을 느껴본 적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며 “시각·청각 장애인 관람객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모든 대사에 자막을 단 것도 이 영화의 ‘좋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은 영화 상영 뒤 배우·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GV)도 마련됐다. 배우·감독과 문화 다양성 의미를 공유하고 장애인 인식 개선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다. 감독·배우들이 등장하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을 준수해 띄엄띄엄 앉은 관객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 영화는 연출을 맡은 김진유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됐다고 한다. 김 감독은 “어머니가 청각장애인이시다. 어릴 적 나도 ‘소리를 잃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보리가 단오제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길을 잃는 에피소드도 감독이 직접 겪었던 일이다. 2015년 농아인협회에서 진행한 토크콘서트 ‘수어로 공존하는 사회’에 참석한 게 <나는 보리>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연사로 나선 청각장애인 수어 통역사 현영옥씨의 자전적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현씨는 어렸을 때 소리를 잃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현씨 가족은 모두 청각장애인이었다. 그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청력이 나빠지면서 청각장애인이 됐다. 가족은 안타까워했지만 현씨는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는 마음에 뛸 듯이 기뻤다고 했다. 이에 김 감독은 말했다. “저도 어렸을 때 소리를 잃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현영옥씨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했다가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점점 제 이야기랑 겹쳤어요.” 이 자리에서 배우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배우들은 촬영에 앞서 수어 선생님에게 몇 개월간 수어를 배웠다고 한다. 노력이 반영된 영화의 결과는 빛났다. <나는 보리>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받았고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과 켐니츠상, 농아인협회가 주최하는 제20회 가치봄영화제에서는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관객 김지나씨도 소감을 표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오늘 ‘가치봄 서비스’(한글자막 화면 해설 서비스)가 제공된 덕분에 시청각장애인들도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며 그는 활짝 웃어 보였다. 이어 김씨는 “비로소 영화다운 영화를 본 것 같다. 앞으로 가치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화 상영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가치봄은 영화 장면마다 세부적인 음성 설명과 자막이 추가된 서비스다. 이밖에도 또 다른 관람객은 “문화 다양성이라는 것이 문화, 종교, 인종, 성별 등 엄숙하고 큰 주제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가족의 이야기처럼 일상 속 이웃, 혹은 나 자신에 대한 고민과 반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좋았다”고 소감을 표했다. 이처럼 서로 간 차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이를 수용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상대를 존중하게 된다. 이에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앞으로도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는 시간을 꾸준히 마련하겠다”고 전했다.
김포그니 기자 pognee@hani.co.kr
사진 영화사 진진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지난 7일 종로구는 독립예술영화관 ‘에무시네마‘에서 ‘문화 다양성 가치 확산을 위한 GV‘를 진행했다. 영화 의 감독, 배우들이 관객과 대화하는 모습.
이번 무료 상영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주관하는 ‘2020년 무지개다리사업’과 연계돼 마련됐다. 무지개다리사업은 다양한 문화 주체의 소통을 돕고 문화예술 교류 기회를 제공하는 데 방점을 둔다. 특히 국내 문화 다양성 정책을 대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를 지닌다. 종로구와 종로문화재단은 2020년 무지개다리사업 공모에 선정되며, 6년 연속 주관기관으로 활동 중이다. 한 예로 2015년부터 2017년까지 종로구 전통생활문화 장인의 기술을 기록하는 사업 ‘손의 기억’을 진행했다. 이어 2018년에는 지역의 문화 특수성을 살리고 지역주민에게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확산할 수 있는 ‘종로문화다양성연극제’를 개최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종로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번에는 지역주민이 좀더 쉽게 문화 다양성의 의미를 알고 일상에서 열린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독려하기 위해 영화 <나는 보리>를 무료 상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이 영화에는 어떤 교훈이 담겨 있을까. 평범한 11살 초등학생 소녀가 말을 들을 수도 할 수도 없는 청각장애인 부모와 동생 사이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감정을 생생하게 표현한 영화 <나는 보리>를 통해 ‘다름’에 대해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 수 있다고 한다. 극중에서 보리와 아빠는 청각장애인 부모에게서 ‘청인’(청력의 소실이 거의 없는 사람) 아이가 태어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때 아빠는 “보리가 내심 청각장애인이기를 바랐다”고 한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말에서 관객은 비로소 이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가치를 깨닫는다. “네가 들리든, 안 들리든 우리는 똑같아.” 이렇듯 이 영화는 코다 아이가 겪는 외로움을 통해 청각장애인이 세상에 대해 겪는 외로움을 간접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소리를 듣지 못해서가 아니라 소리를 들을 수 있어 외로움을 느끼는 보리의 모습에서 장애를 ‘결핍’이라고 보는 고정관념은 무너진다. 결국 이 영화는 ‘장애인이 소수자이므로 배려받아야 한다’는 기존의 메시지를 보다 생생하게 전달하는 데 성공한다. 종로문화재단 관계자는 “경험과 다르다는 것 때문에 소외감을 느껴본 적 있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영화”라며 “시각·청각 장애인 관람객이 영화를 볼 수 있도록 모든 대사에 자막을 단 것도 이 영화의 ‘좋은’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날은 영화 상영 뒤 배우·감독과 함께하는 관객과의 대화(GV)도 마련됐다. 배우·감독과 문화 다양성 의미를 공유하고 장애인 인식 개선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나누는 자리였다. 감독·배우들이 등장하자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생활 속 거리 두기 지침을 준수해 띄엄띄엄 앉은 관객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져 나왔다. 이 영화는 연출을 맡은 김진유 감독의 자전적 경험이 반영됐다고 한다. 김 감독은 “어머니가 청각장애인이시다. 어릴 적 나도 ‘소리를 잃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고 털어놨다. 보리가 단오제에서 가족들과 떨어져 길을 잃는 에피소드도 감독이 직접 겪었던 일이다. 2015년 농아인협회에서 진행한 토크콘서트 ‘수어로 공존하는 사회’에 참석한 게 <나는 보리>의 시나리오를 쓰게 된 계기가 됐다고 한다. 당시 세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 연사로 나선 청각장애인 수어 통역사 현영옥씨의 자전적 이야기가 그의 마음을 울렸기 때문이다. 현씨는 어렸을 때 소리를 잃는 것이 꿈이었다고 했다. 현씨 가족은 모두 청각장애인이었다. 그 역시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청력이 나빠지면서 청각장애인이 됐다. 가족은 안타까워했지만 현씨는 가족과 소통할 수 있다는 마음에 뛸 듯이 기뻤다고 했다. 이에 김 감독은 말했다. “저도 어렸을 때 소리를 잃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처음에는 현영옥씨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보려고 했다가 시나리오를 쓰다 보니 점점 제 이야기랑 겹쳤어요.” 이 자리에서 배우들의 활약에 대해서도 언급됐다. 배우들은 촬영에 앞서 수어 선생님에게 몇 개월간 수어를 배웠다고 한다. 노력이 반영된 영화의 결과는 빛났다. <나는 보리>는 제23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한국영화감독조합상 감독상을 받았고 독일 슈링겔국제영화제 관객상과 켐니츠상, 농아인협회가 주최하는 제20회 가치봄영화제에서는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이날 관객과의 대화 시간에서 관객 김지나씨도 소감을 표했다. 그는 시각장애인이다. “오늘 ‘가치봄 서비스’(한글자막 화면 해설 서비스)가 제공된 덕분에 시청각장애인들도 이 영화를 즐길 수 있었다”며 그는 활짝 웃어 보였다. 이어 김씨는 “비로소 영화다운 영화를 본 것 같다. 앞으로 가치봄 서비스를 제공하는 영화 상영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가치봄은 영화 장면마다 세부적인 음성 설명과 자막이 추가된 서비스다. 이밖에도 또 다른 관람객은 “문화 다양성이라는 것이 문화, 종교, 인종, 성별 등 엄숙하고 큰 주제에서만 논의되는 것이 아니라, 청각장애인 가족의 이야기처럼 일상 속 이웃, 혹은 나 자신에 대한 고민과 반성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확인해 좋았다”고 소감을 표했다. 이처럼 서로 간 차이를 스스럼없이 받아들이고 이를 수용하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상대를 존중하게 된다. 이에 김영종 종로구청장은 “앞으로도 문화 다양성의 가치를 공유하고 확산할 수 있는 시간을 꾸준히 마련하겠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