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사람은 숲을 가꾸고, 숲은 생명을 품어준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⑤ 은평구 진관동·수색동·응암동·불광동의 나무들
등록 : 2020-09-03 15:11 수정 : 2021-04-15 17:23
오래된 느티나무 버티는 숲 들어서면
냇물 고였다 흐르는 곳에 햇볕 머물고
멸종위기 맹꽁이가 생명 이어가는데
그곳에 멈춘 사람도 안식에 젖어든다
사람들은 숲과 나무를 가꾸고 보호한다. 나무와 숲은 사람들을 품는다. 은평구 진관동 느티나무 숲, 진관천 맑은 냇물가 은행나무 숲이 그렇다. 수색역을 오가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이 서린 150살 가죽나무 두 그루는 오래된 이발소 앞에 있다. 아파트 단지에 푸른 생기를 불어넣는 살구나무는 200살이 다 돼간다. 시장 옆 200살 느티나무 그늘 아래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고춧가루를 만들 빨갛게 마른 고추를 다듬고 있었다.
한옥과 숲의 어울림, 일부러 찾아와 즐기는 진관동 느티나무 숲 아주 오래전 옛 마을 풍경이 궁금하면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을 찾아가야 한다. 숲이 어떻게 마을을 품고 마을이 어떻게 숲과 어울리는지, 기와지붕의 선이 산등성이 마루금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을에 흐르는 개울과 개울가 숲은 쉼도 일상으로 만든다. 은평한옥마을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전망대에 서면 숲이 품은 한옥마을을 한눈에 넣을 수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공사 중이라 출입할 수 없어서 박물관 부근에 있는 카페 옥상에서 마을과 마을 숲, 멀리 있는 북한산이 어울린 풍경을 보았다. 육중한 바위산은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함께 품었다. 굴곡 없는 산등성이를 닮은 기와지붕의 용마루에서 치미로 눈길을 돌리면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가 보이고, 능선에서 펼쳐진 산비탈에서 기와지붕의 내림마루를 본다. 겹치고 포개지며 넘실대는 기와지붕의 선이 만드는 풍경은 첩첩이 겹친 산줄기와 같다. 차 한 잔에 담을 수 있는 풍경치곤 그럴듯하다. 카페 옥상에서 보았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한옥 골목을 지나 느티나무가 있는 숲 앞에 섰다. 130~260년 정도 된 네 그루 느티나무가 숲의 맨 앞줄에 서 있다. 푸른 장막 같다. 느티나무를 지나 데크길을 따라 숲을 걷는다. 작은 냇물이 고였다 흐르는 숲에 햇볕이 걸려든다. 진관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이다. 보호야생동물인 북방산개구리, 도롱뇽, 줄장지뱀과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2급)로 지정된 맹꽁이가 서식해 서울시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마을 옆 계곡과 진관사 부근 계곡도 보호구역이다. 사람은 숲을 가꾸고 숲은 그렇게 생명을 품는다. 그 안에서 사람들도 안식을 찾는다. 느티나무 숲을 흐르는 작은 물줄기는 진관사 앞을 흘러온 진관천으로 흘러든다. 맑은 냇물과 은행나무 푸른 숲이 어우러진 그곳은 옛 고향 시골 마을 숲과 냇물을 닮았다.
아이들은 마을 시냇물에서 놀고 어른들은 냇가 은행나무 숲에서 쉬고 느티나무 숲에서 진관사 쪽으로 가다보면 길 왼쪽에 북한산 둘레길(효자동) 이정표가 보인다. 그쪽으로 내려서면 마실길 근린공원 안내판이 있다. 마실길 근린공원에 진관천이 흐른다. 맑은 시냇물은 작은 폭포를 만들기도 하고 너럭바위 위를 흘러 크고 작은 바위가 있는 냇물을 이루기도 한다. 촘촘하게 자란 은행나무 숲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 평상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사람 등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편하게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숲 그늘 아래 개울은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지만 따가운 한낮 뙤약볕은 아직 더워서 아이들은 냇물에서 나올 줄 모른다. 210살 느티나무가 냇물 옆 한쪽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아마도 200여 년 전 이 마을 아이들도 지금 아이들처럼 저렇게 여름 한 철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는 그때도 깔깔거리며 물장구치고 노는 그 아이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노는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진관사가 나온다. 진관사에도 27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진관사 앞길 옆에 있는 느티나무를 보고 절로 들어간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왕이 되기 전에 자신을 구해준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 세종 임금은 진관사에 사가독서당을 두고 신숙주, 성삼문 등 6명의 학자를 공부하게 했다. 이들이 세종 임금의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연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009년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 유물이 발견됐다. 신문 발행일자는 1919년 6~12월이다. 당시 진관사 스님 또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태극기는 항일독립운동에 실제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진관사를 지나 계곡으로 올라간다. 오랜 세월 흐르는 물이 암반바위에 길을 냈다. 경사진 바위를 따라 흐르는 물은 작은 폭포와 웅덩이를 만들었다. 잠깐 쉬며 돌아본 눈길에 푸른 숲의 끝이 하늘과 맞닿은 풍경이 보인다. 숲의 바다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쉼터, 새장골 200년 느니타무 그늘
녹번역 근처 응암동 어떤 아파트 단지 안에 200살이 다 돼 가는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다. 아파트 건물이 성벽처럼 에워싼 가운데 우뚝 선 한 그루 나무가 아파트 단지 전체에 푸른 생명의 활기를 불어넣는다. 나무 주변에 작은 폭포와 연못도 만들어 놓았다. 나무를 보호하기 위해 나무 둘레에 목책을 만들었다. 아이들이 폭포와 목책 사이에 난 길에서 뛰어논다. 강아지와 산책 나온 주민들도 보인다.
살구꽃 피는 봄 은은한 꽃향기는 어땠을까? 예전에는 울타리 안에 심어 꽃과 과일을 즐겼는데, 지금 이곳에서는 마을의 상징이자 마을 사람들에게 그늘을 내주던 동구나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수색동 수색역 주차장 한쪽에 가죽나무가 두 그루 있다. 안내판에는 가중나무로 적혀 있는데, 사전을 찾아보니 가죽나무를 가중나무라고 부르기도 한단다. 두 그루 모두 150살이 넘었다.
한 나무 앞에 돌탑이 세 개 있다. 2000년 무렵 수색역 직원들이 역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안녕을 기원하기 위해 쌓은 것이다. 돌탑 세 개에 각각 인간 존중, 무재해 달성, 환경 개선이라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오래된 나무에 소원을 빌던 옛사람들의 마음, 산을 넘어 오가는 길목에 무사 안녕을 기원하며 쌓은 돌탑, 예로부터 전해지는 두 가지 기원의 마음이 돌탑을 쌓은 사람들의 마음에도 남아 있었나 보다.
돌탑이 있는 나무 바로 옆에 또 한 그루의 가죽나무가 있다. 목책 안 공간 한쪽이 휑하게 비었다. 그 빈 공간에도 또 한 그루의 가죽나무가 있었는데, 태풍에 쓰러져 죽었다고 한다.
불광동 연서시장 주변 도로 옆 인도에는 200살 넘은 느티나무가 두 그루 있다. 나무가 있는 마을 옛 이름이 새장골이다. 활을 쏘는 곳이 있었다고 해서 사정동(활터골)이라 했는데, 새장골로 발음이 변했다.
시장 주변이라 장 보러 나온 아줌마 아저씨, 장 구경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가 많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은 느티나무 그늘 누군가 마련한 의자에 앉아 쉰다. 그 옆 나무 그늘 아래 할머니 두 분이 앉아 고춧가루를 만들 빨갛게 마른 고추를 손질한다. 가을은 그렇게 느티나무 그늘에 벌써 와 있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은평구 진관동 느티나무 숲의 오래된 느티나무.
은평구 응암동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200살 가까이 되는 살구나무.
한옥과 숲의 어울림, 일부러 찾아와 즐기는 진관동 느티나무 숲 아주 오래전 옛 마을 풍경이 궁금하면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을 찾아가야 한다. 숲이 어떻게 마을을 품고 마을이 어떻게 숲과 어울리는지, 기와지붕의 선이 산등성이 마루금과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한눈에 볼 수 있다. 마을에 흐르는 개울과 개울가 숲은 쉼도 일상으로 만든다. 은평한옥마을 은평역사한옥박물관 전망대에 서면 숲이 품은 한옥마을을 한눈에 넣을 수 있다. 아쉽게도 지금은 공사 중이라 출입할 수 없어서 박물관 부근에 있는 카페 옥상에서 마을과 마을 숲, 멀리 있는 북한산이 어울린 풍경을 보았다. 육중한 바위산은 부드러움과 날카로움을 함께 품었다. 굴곡 없는 산등성이를 닮은 기와지붕의 용마루에서 치미로 눈길을 돌리면 뾰족하게 솟은 산봉우리가 보이고, 능선에서 펼쳐진 산비탈에서 기와지붕의 내림마루를 본다. 겹치고 포개지며 넘실대는 기와지붕의 선이 만드는 풍경은 첩첩이 겹친 산줄기와 같다. 차 한 잔에 담을 수 있는 풍경치곤 그럴듯하다. 카페 옥상에서 보았던 풍경 속으로 들어간다. 한옥 골목을 지나 느티나무가 있는 숲 앞에 섰다. 130~260년 정도 된 네 그루 느티나무가 숲의 맨 앞줄에 서 있다. 푸른 장막 같다. 느티나무를 지나 데크길을 따라 숲을 걷는다. 작은 냇물이 고였다 흐르는 숲에 햇볕이 걸려든다. 진관 야생동식물 보호구역이다. 보호야생동물인 북방산개구리, 도롱뇽, 줄장지뱀과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동식물(2급)로 지정된 맹꽁이가 서식해 서울시가 보호구역으로 지정했다. 마을 옆 계곡과 진관사 부근 계곡도 보호구역이다. 사람은 숲을 가꾸고 숲은 그렇게 생명을 품는다. 그 안에서 사람들도 안식을 찾는다. 느티나무 숲을 흐르는 작은 물줄기는 진관사 앞을 흘러온 진관천으로 흘러든다. 맑은 냇물과 은행나무 푸른 숲이 어우러진 그곳은 옛 고향 시골 마을 숲과 냇물을 닮았다.
은평구 진관동 은평한옥마을. 기와지붕이 겹쳐 아름다운 선을 만들어낸다. 마을 뒤 푸른 숲이 푸근해 보인다.
아이들은 마을 시냇물에서 놀고 어른들은 냇가 은행나무 숲에서 쉬고 느티나무 숲에서 진관사 쪽으로 가다보면 길 왼쪽에 북한산 둘레길(효자동) 이정표가 보인다. 그쪽으로 내려서면 마실길 근린공원 안내판이 있다. 마실길 근린공원에 진관천이 흐른다. 맑은 시냇물은 작은 폭포를 만들기도 하고 너럭바위 위를 흘러 크고 작은 바위가 있는 냇물을 이루기도 한다. 촘촘하게 자란 은행나무 숲 그늘 아래 돗자리를 깔고 앉아 책을 읽는 사람, 차 한 잔의 여유를 즐기는 사람, 평상에 누워 낮잠을 즐기는 사람 등 주변에 폐를 끼치지 않는 범위에서 편하게 쉬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유롭다. 숲 그늘 아래 개울은 한여름에도 시원하다. 모기 입이 삐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지만 따가운 한낮 뙤약볕은 아직 더워서 아이들은 냇물에서 나올 줄 모른다. 210살 느티나무가 냇물 옆 한쪽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아마도 200여 년 전 이 마을 아이들도 지금 아이들처럼 저렇게 여름 한 철을 보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나무는 그때도 깔깔거리며 물장구치고 노는 그 아이들을 지켜보았을 것이다. 아이들이 노는 냇물을 거슬러 올라가면 진관사가 나온다. 진관사에도 270년 정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진관사 앞길 옆에 있는 느티나무를 보고 절로 들어간다. 진관사는 고려 현종이 왕이 되기 전에 자신을 구해준 진관대사를 위해 창건했다고 한다. 조선 세종 임금은 진관사에 사가독서당을 두고 신숙주, 성삼문 등 6명의 학자를 공부하게 했다. 이들이 세종 임금의 한글 창제와 관련된 연구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2009년 진관사 칠성각을 해체 보수하는 과정에서 태극기와 독립신문 등 유물이 발견됐다. 신문 발행일자는 1919년 6~12월이다. 당시 진관사 스님 또한 독립운동에 참여했다. 태극기는 항일독립운동에 실제로 사용했던 것이라고 한다. 진관사를 지나 계곡으로 올라간다. 오랜 세월 흐르는 물이 암반바위에 길을 냈다. 경사진 바위를 따라 흐르는 물은 작은 폭포와 웅덩이를 만들었다. 잠깐 쉬며 돌아본 눈길에 푸른 숲의 끝이 하늘과 맞닿은 풍경이 보인다. 숲의 바다다.
은평구 진관동 마실길 근린공원 내 개울. 숲 그늘 아래 개울이 시원하다.
은평구 수색동 수색역 옆 주차장 한쪽에 있는 가죽나무와 돌탑. 세 개의 돌탑이 나무를 보호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