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소원 비는 이 없는 나무에 ‘코로나 종식’ 기원하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⑥ 용산과 둔지산, 한강가의 오래된 나무들
등록 : 2020-09-17 14:45 수정 : 2021-04-15 17:23
함벽정·삼호정 등 옛 정자는 사라져도
나무는 굵은 줄기 꿈틀대며 살아 있다
이제 민간신앙 무속인만 기도하지만
온 마음 담아 소원 빌고는 뒤돌아선다
삼각지에서 한강대교 북단으로 이어지는 한강대로, 그 서쪽인 용산 동쪽에 둔지산이 있다. 한강이 보이는 용산의 풍경에 조선시대 사람들은 정자를 짓고 정취를 즐겼다. 지금이야 집과 건물 때문에 산 같지 않지만 그곳에 남아 있는 오래된 나무들이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둔지산은 해발 100m도 안 되는 구릉이다. 예로부터 주둔지였으며 현재는 미군부대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용산가족공원 등이 둔지산 남쪽이다. 석탑이 있는 정원 같은 작은 숲에서 수양버들 낭창거리는 용산가족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은 이미 잘 알려진 쉼터다. 빌딩 뒤 이면도로와 아파트 단지, 주택가 골목, 한강 둔치에 있는 고목이 생활의 편린과 함께 빛난다.
사라진 옛 용산의 풍경, 오래된 나무에서 읽는 그 정취
용산구와 마포구의 경계를 이루며 한강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용산이다. 서대문구 무악재 부근에서 시작해서 용산 동쪽을 지나던 넝쿨내(만초천)는 남산과 이태원, 둔지산 쪽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흡수하고 서쪽으로 머리를 틀어 한강으로 흘러들었다. 그 합수 지점이 현재의 원효대교 북단이다. 원효대교 북단 한강 둔치 만초천교에서 넝쿨내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용산과 한강, 넝쿨내가 어울린 풍경은 조선시대 한강 풍경 중 손꼽히는 명소였나보다. 당시 사람들은 용산에 함벽정, 삼호정, 심원정 등 정자를 짓고 그 정취를 즐겼다. 함벽정은 현재 용산성당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여류 시인들이 주로 모였다던 삼호정은 현재 성심여고 후문 맞은편 부근에 있었다고 전한다. 심원정은 용산문화원 부근에 있었다. 심원정이 있었던 용산문화원 위 언덕에 670여 년 된 느티나무와 200~300년 된 느티나무 네 그루가 작은 공원을 이루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의 쉼터인데, 코로나19로 한산하다.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건 오래된 나무들이다.
심원정은 임진왜란 때 왜군과 명나라군이 강화 회담을 한 곳이다. 정자는 사라지고 왜와 명나라 사이에 강화 회담을 한 곳을 알리는 ‘왜명강화지처’(倭明講和地處)라는 글자가 새겨진 비석만 남아 있다. 당시 강화 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왜와 명나라는 비석을 세우면서 백송도 함께 심었다고 한다. 2003년 백송은 죽었지만 그 씨앗이 떨어진 곳에서 자란 어린 백송이 670여 년 된 느티나무와 함께 자라고 있다. 느티나무는 명나라 심유경과 왜의 고니시 유키나가가 강화 회담을 하는 장면을 보며, 조선에서 벌어지는 전쟁의 강화 회담에 조선이 나서지 못하는 것에 울분을 삼켰을 것 같았다. 심원정은 고종 때 영의정을 지낸 조두순의 별장이 되기도 했다.
오래된 느티나무 다섯 그루가 있는 심원정터 위 고갯마루 아파트 단지 안에는 150년 넘은 은행나무가 다섯 그루 있다.
산비탈 마을 골목 생활의 편린과 함께 빛나는 오래된 나무들 용산 꿈나무종합타운 안 꿈나무어린이집 뒤에 170여 년 된 비술나무가 두 그루 있다. 국립수목원 자료에 따르면 비술나무는 산, 계곡, 들 등에서 고루 잘 자란다. 병충해나 공해에도 강해 가로수나 공원수로 이용된다. 건축 재료나 배를 만들 때도 쓴다. 껍질은 약으로도 쓰인다고 하니, 관리하기 쉽고 쓰이는 곳 많은 나무다. 비술나무가 있는 곳은 1902년 대한제국 궁내부 산하에 설치됐던 평식원이 있던 곳이다. 평식원은 길이, 부피, 무게 등을 측정하는 도량형 도구를 통일하고 제조, 검정하던 관청이었다. 비술나무를 뒤로하고 도착한 곳은 삼각지에서 한강대교 사이 한강대로 동쪽 이면도로다. 170여 년 된 은행나무 세 그루가 모여 있는 이곳은 둔지산 서쪽 언저리다. 둔지산은 예로부터 주둔지였다. 조선시대에는 군사들의 군량을 조달하기 위한 둔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지금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둔지산 동남쪽에 조선시대에 얼음을 보관하던 빙고가 있었다. 반포대교 북단 동쪽 서빙고로에서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든다. 거미줄 같은 좁은 골목길로 올라간다. 쉬다 걷다 하며 골목길을 오르는 아줌마, 부서진 지붕을 고치는 아저씨, 컹컹대는 개 짖는 소리, 바람에 쓸리는 먼지들, 그 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동빙고 경로당 앞에 있는 480여 년 된 은행나무다. 굵은 줄기가 꿈틀거리며 자랐다. 늘어진 가지 아래로 산비탈 마을이 펼쳐지고 멀리 한강이 보인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생활의 편린과 함께 그곳에서 빛난다. 은행나무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40m 되는 곳에 280여 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거리는 멀지 않은데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찾아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연립주택 안쪽 외딴곳을 지키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 아래 하얀 개 한 마리가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었다. 순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추억의 마당 같았다.
소원 깃든 고목을 보고 걷는 길, 석탑이 있는 숲길에서 찾은 무너진 일상의 쉼 한남대교 북단 서쪽 한강 둔치에 한강을 보며 자라는 550여 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강변북로 고가도로에 가려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보면 느티나무가 있는 곳은 조선시대 한강진 부근이었다. 한강진은 한강을 오가는 배들의 정박지이자 출발과 도착지였다. 이 나무는 한강진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마중하던 나무였다. 누군가는 그 나무 앞에서 이별하고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연이 쌓여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나무로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나무에 민간신앙의 무속인들이 기도하고 있다. 누군가의 기원이 서린 나무가 둔지산 남서쪽에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쪽 용산세무서 앞길 건너편 한 아파트 단지 안 350여 년 된 은행나무가 그 나무다. 예로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평안과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이 나무 앞에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아기를 못 낳는 부인들이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빌었고, 아픈 이가 있으면 병이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조경수가 된 그 나무가 고층 아파트 건물 사이에서 외로워 보인다. 더 이상 누구도 소원을 빌지 않는 나무 앞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소원을 빌고 돌아서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 오래된 석탑이 있는 정원 같은 작은 숲에서 시작해서 용산가족공원에 이르는 짧은 산책길은 이미 잘 알려진 곳이다. 코로나19가 잠식한 일상의 여유와 쉼을 찾아 나온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그 길을 거닐고 있었다. 오래된 석탑이 있는 석조물 정원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석조물이 있다. 왕조는 바뀌었지만 그 땅에서 그대로 살던 사람들의 기원이 서린 석물들이 길을 안내한다. 개성 남계원 칠층석탑,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천수사 터에 있던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을 지나면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을 만나게 된다. 작은 도랑 같은 물길 지나 미르폭포로 이어진 발길은 용산가족공원에 다다른다. 낭창거리는 수양버들 가지 아래 공중으로 퍼지는 분수가 희망의 노래 같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용산세무서 앞길 건너편 한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오래된 은행나무.
사라진 옛 용산의 풍경, 오래된 나무에서 읽는 그 정취
용산구와 마포구의 경계를 이루며 한강으로 흘러내린 산줄기가 용산이다. 서대문구 무악재 부근에서 시작해서 용산 동쪽을 지나던 넝쿨내(만초천)는 남산과 이태원, 둔지산 쪽에서 흘러온 물줄기를 흡수하고 서쪽으로 머리를 틀어 한강으로 흘러들었다. 그 합수 지점이 현재의 원효대교 북단이다. 원효대교 북단 한강 둔치 만초천교에서 넝쿨내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용산과 한강, 넝쿨내가 어울린 풍경은 조선시대 한강 풍경 중 손꼽히는 명소였나보다. 당시 사람들은 용산에 함벽정, 삼호정, 심원정 등 정자를 짓고 그 정취를 즐겼다. 함벽정은 현재 용산성당 부근에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 여류 시인들이 주로 모였다던 삼호정은 현재 성심여고 후문 맞은편 부근에 있었다고 전한다. 심원정은 용산문화원 부근에 있었다. 심원정이 있었던 용산문화원 위 언덕에 670여 년 된 느티나무와 200~300년 된 느티나무 네 그루가 작은 공원을 이루고 있다. 할머니 할아버지와 동네 사람들의 쉼터인데, 코로나19로 한산하다. 가끔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그늘을 만들어주는 건 오래된 나무들이다.
심원정터에 있는 670여 년 된 느티나무 아래 임진왜란 때 왜와 명나라가 강화 회담을 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왜명강화지처비가 있다.
산비탈 마을 골목 생활의 편린과 함께 빛나는 오래된 나무들 용산 꿈나무종합타운 안 꿈나무어린이집 뒤에 170여 년 된 비술나무가 두 그루 있다. 국립수목원 자료에 따르면 비술나무는 산, 계곡, 들 등에서 고루 잘 자란다. 병충해나 공해에도 강해 가로수나 공원수로 이용된다. 건축 재료나 배를 만들 때도 쓴다. 껍질은 약으로도 쓰인다고 하니, 관리하기 쉽고 쓰이는 곳 많은 나무다. 비술나무가 있는 곳은 1902년 대한제국 궁내부 산하에 설치됐던 평식원이 있던 곳이다. 평식원은 길이, 부피, 무게 등을 측정하는 도량형 도구를 통일하고 제조, 검정하던 관청이었다. 비술나무를 뒤로하고 도착한 곳은 삼각지에서 한강대교 사이 한강대로 동쪽 이면도로다. 170여 년 된 은행나무 세 그루가 모여 있는 이곳은 둔지산 서쪽 언저리다. 둔지산은 예로부터 주둔지였다. 조선시대에는 군사들의 군량을 조달하기 위한 둔전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군이, 지금은 미군이 주둔하고 있다. 둔지산 동남쪽에 조선시대에 얼음을 보관하던 빙고가 있었다. 반포대교 북단 동쪽 서빙고로에서 주택가 골목으로 접어든다. 거미줄 같은 좁은 골목길로 올라간다. 쉬다 걷다 하며 골목길을 오르는 아줌마, 부서진 지붕을 고치는 아저씨, 컹컹대는 개 짖는 소리, 바람에 쓸리는 먼지들, 그 위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커다란 나무 한 그루. 동빙고 경로당 앞에 있는 480여 년 된 은행나무다. 굵은 줄기가 꿈틀거리며 자랐다. 늘어진 가지 아래로 산비탈 마을이 펼쳐지고 멀리 한강이 보인다. 오래된 나무 한 그루가 생활의 편린과 함께 그곳에서 빛난다. 은행나무에서 북쪽으로 직선거리 약 140m 되는 곳에 280여 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거리는 멀지 않은데 좁고 구불거리는 골목을 따라 찾아가는 길이 멀게 느껴진다. 연립주택 안쪽 외딴곳을 지키는 오래된 나무 한 그루 아래 하얀 개 한 마리가 늘어지게 하품하고 있었다. 순한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추억의 마당 같았다.
동빙고 경로당 앞 오래된 은행나무.
소원 깃든 고목을 보고 걷는 길, 석탑이 있는 숲길에서 찾은 무너진 일상의 쉼 한남대교 북단 서쪽 한강 둔치에 한강을 보며 자라는 550여 년 된 느티나무가 한 그루 있다. 강변북로 고가도로에 가려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시간을 과거로 되돌려보면 느티나무가 있는 곳은 조선시대 한강진 부근이었다. 한강진은 한강을 오가는 배들의 정박지이자 출발과 도착지였다. 이 나무는 한강진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배웅하고 마중하던 나무였다. 누군가는 그 나무 앞에서 이별하고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연이 쌓여 서로의 안녕을 기원하는 나무로 여기기도 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 나무에 민간신앙의 무속인들이 기도하고 있다. 누군가의 기원이 서린 나무가 둔지산 남서쪽에도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서쪽 용산세무서 앞길 건너편 한 아파트 단지 안 350여 년 된 은행나무가 그 나무다. 예로부터 이 마을 사람들은 마을의 평안과 사람들의 안녕을 위해 이 나무 앞에서 제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아기를 못 낳는 부인들이 자식을 점지해달라고 빌었고, 아픈 이가 있으면 병이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고 한다. 지금은 아파트 단지 조경수가 된 그 나무가 고층 아파트 건물 사이에서 외로워 보인다. 더 이상 누구도 소원을 빌지 않는 나무 앞에서 코로나19가 종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소원을 빌고 돌아서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향했다. 국립중앙박물관 야외전시장 오래된 석탑이 있는 정원 같은 작은 숲에서 시작해서 용산가족공원에 이르는 짧은 산책길은 이미 잘 알려진 곳이다. 코로나19가 잠식한 일상의 여유와 쉼을 찾아 나온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고 그 길을 거닐고 있었다. 오래된 석탑이 있는 석조물 정원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석조물이 있다. 왕조는 바뀌었지만 그 땅에서 그대로 살던 사람들의 기원이 서린 석물들이 길을 안내한다. 개성 남계원 칠층석탑, 갈항사지 동서 삼층석탑, 고달사지 쌍사자 석등, 천수사 터에 있던 오층석탑과 삼층석탑을 지나면 원주 영전사지 보제존자탑을 만나게 된다. 작은 도랑 같은 물길 지나 미르폭포로 이어진 발길은 용산가족공원에 다다른다. 낭창거리는 수양버들 가지 아래 공중으로 퍼지는 분수가 희망의 노래 같다.
오래된 석탑이 있는 정원 같은 작은 숲. 국립중앙박물관 석조물정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