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샛강의 휴식, 강물처럼 여유롭고 숲처럼 푸르다

장태동의 서울의 숲과 나무 ⑦ 영등포구 옛 나루터 주변 나무와 숲

등록 : 2020-10-08 14:51 수정 : 2021-04-15 17:23
한강 샛강에 길게 늘어선 버드나무숲

사람이 일부러 심지 않아도 짙고 깊다

여의도 빌딩들도 그 숲에 뿌리내린 듯

걷는 사람, 자전거 탄 사람 모두 빛난다

조선시대 여의도 샛강에는 방학호진나루와 영등포나루가 있었다. 방학호진나루터는 지하철 1호선 신길역 뒤 어디쯤이다. 나루 부근 귀신바위 옆 느티나무는 정조의 왕비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여의2교에서 당산중학교 앞 샛강 사이 어디쯤 있었던 영등포나루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사람을 살린 은행나무 언덕이 있다. 샛강을 따라 이어지는 5㎞ 남짓 되는 푸른 숲길을 걸었다. 버드나무 가지는 예나 지금이나 강가에서 낭창거린다.

샛강다리 위에서 본 풍경. 샛강과 푸른 숲이 나란히 이어진다.

샛강 방학호진나루터 느티나무와 귀신바위

지하철 1호선 신길역 뒤 도로 옆에 있는 산봉우리와 강물, 물고기와 사람을 나타낸 조형물은 조선시대로 떠나는 시간 여행의 출발 지점이다.


영등포구청 자료에 따르면 현재 지하철 1호선 신길역 뒤 올림픽대로와 노들로 어디쯤 조선시대 방학호진나루가 있었다. 당시 나루 주변에 푸른 소나무 언덕이 있었고, 언덕 아래 강가에 하얀 모래밭이 펼쳐졌다고 한다.

나루에는 사람들이 모이기 마련이고, 그 주변 풍경 또한 아름다웠다고 하니 조선시대에 웬만한 사람들은 한 번쯤 다녀갔을 터다. 그 풍경을 한눈에 넣을 수 있는 커다란 바위 위는 지금으로 말하면 ‘전망대’쯤 되겠다. 풍경에 반하고 술에 취해 흥이 오른 누군가가 바위에서 실족해서 샛강 강물로 떨어져 죽은 뒤로 그 바위에서 떨어져 죽는 사람이 계속 이어졌다고 해서 그 바위에 귀신바위라는 이름이 붙었다.

귀신바위 이전인지 이후인지 세월의 앞뒤는 가늠이 안 되지만 조선시대 정조 임금의 왕비도 방학호진나루 풍경을 즐기러 발길을 놓았는지, 귀신바위 옆에 왕비가 느티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진다. 지금으로 말하면 아마도 ‘기념식수’였지 않았을까?

조선시대 귀신바위 이야기와 정조 임금의 왕비가 심었다던 느티나무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

신길역 뒤 샛강다리를 건너다 돌아보면 귀신바위와 느티나무 이야기가 내려오는 자리가 보인다. 질주하는 차들과 삭막한 도로 사이에 있는 커다란 나무와 바위 몇 개가 고작이다. 이태 전 겨울까지 밑동만 남은 고사목이 그곳에 있었는데, 지금은 무성한 잎에 가려 고사목은 보이지 않는다. 고사목이 지금도 있을지…. 왕비가 심은 느티나무가 지금도 잎을 피우는 나무인지 고사목인지 모르겠다.

조선시대에 윤씨 성을 가진 정승도 방학곳지(방학호진나루 인근 강물과 주변 풍경을 아울러 이르는 이름)를 찾았나 보다. 윤 정승이 강에 빠져 죽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물속에서 잉어가 나타나 윤 정승을 등에 태워 방학곳지 강기슭 모래밭에 내려놓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윤 정승은 부군당을 지어 제를 올렸다. 부군당은 마을 수호신을 모셔놓은 신당이다. 그곳이 지금 지하철 1호선 신길역에서 직선 거리 25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방학곳지부군당이다. 부군당 옆 담벼락에 잉어를 그린 벽화가 있다.

방학곳 지부군당.

사람들을 살린 은행나무 언덕

당산중학교 옆 작은 공원 낮은 언덕 위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무슨 상징처럼 서 있다. 두 그루 중 하나가 보호수로 지정된 600년 넘은 은행나무다. 조선 초기 한 임금이 지금 은행나무가 있는 곳 부근에서 머물렀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은행나무를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그 이후 마을 사람들은 이 나무를 마을을 지키는 나무로 여겨 터주신을 모시는 터주가리를 나무 부근에 모셔두고 제를 올렸다. 1925년 대홍수 때 마을이 침수됐는데,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가 있는 언덕으로 피신해서 무사했다고 한다. 그 이후 나무 주변에 부군당을 지어 제사를 올렸다. 은행나무가 있는 곳에서 약 70m 떨어진 곳에 있는 당산동부군당이 그곳이다.

은행나무가 있는 언덕에 보호수로 지정된 600년 넘은 은행나무와 어린 은행나무가 있다. 어린나무는 고목의 자식 나무다.

사람을 살린 언덕 위 은행나무의 배웅을 받으며 돌아서서 걷는다. 영등포03 마을버스가 다니는 버드나무로를 따라 500m 정도 걷다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선다. 당산동과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을 잇는 보도 육교를 건넌다.

육교 위에 서면 국회의사당이 보인다. 국회의사당 자리에는 조선시대에 양과 말을 기르던 양말산이라는 산이 있었다. 육교 끝까지 걷는다. 난간 앞에 서서 샛강생태공원을 굽어본다. 버드나무 군락이 푸른 숲을 이루었다. 숲의 푸른 물결 위에 국회의사당 건물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숲 사이로 샛강이 흐른다. 걷는 사람, 자전거를 타고 가는 사람들의 휴식이 강물처럼 여유롭고 숲처럼 푸르다.

샛강생태공원 숲길로 내려섰다. 샛강생태공원은 샛강을 따라 4.6㎞ 정도 구간에 조성됐다. 버드나무 군락지, 창포원, 버들광장, 여의못, 해오라기숲 등 구역을 나누어 이름을 붙였는데, 사실 그런 이름보다는 서울 도심에 있는 푸른 숲 그 자체가 보물 같다. 5㎞ 가까운 숲은 사람을 숨 쉬게 하는 생명의 숲이다.

당산동6가 600년 넘게 살고 있는 은행나무와 그 자식 나무.

버드나무 숲길을 걸어 한강 백사장에 도착하다

버드나무 숲에서는 바람에 낭창거리는 버드나무 가지처럼 걷는다. 반짝이는 억새 군락을 지나는 사람들이 억새처럼 빛난다. 숲에 울리는 새소리에 정신이 맑아진다. 그렇게 걸어 여의2교 아래를 지난다. 이 부근 샛강 가 어디쯤은 조선시대에 영등포나루가 있던 곳이다. 강 건너 마포나루로 가는 나룻배의 모습을 샛강 강물 위에 떠올려본다.

포장된 길이 끝나고 흙길이 시작된다. 숲도 더 깊어진다. 길옆 숲속에 작은 물줄기와 습지가 어우러졌다. 버드나무 군락지에 다른 나무들도 섞여 자란다. 길은 그런 숲 옆으로 부드럽게 휘어지며 이어진다. 그렇게 걸어서 도착한 곳이 샛강다리 아래다.

샛강 건너편 어디쯤은 조선시대 방학호진나루가 있던 곳이다. 푸른 언덕과 강가의 은빛 백사장이 어울렸다던 방학곳지 건너편 버드나무 숲길을 걷는 것이다.

잠시 샛강다리로 올라간다. 다리 위에 서서 샛강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숲을 본다. 숲의 푸른 물결 뒤로 여의도 빌딩들이 보인다. 빌딩도 숲에 뿌리내린 생명체 같다. 버드나무 숲길로 다시 내려간다.

이곳 버드나무는 생태공원을 만들기 위해 일부러 심은 게 아니다. 예로부터 자생하는 버드나무다. 해마다 봄이면 눈송이처럼 날리는 버드나무 씨앗을 쉽게 볼 수 있다. 그렇게 퍼진 씨앗들이 흙 위에 떨어져 싹을 틔우는 것이다. 숲이 변이를 거치며 뽕나무와 참느릅나무, 팽나무 등도 같이 자란다. 팽나무를 올림픽대로 주변에 심은 적이 있는데, 새들이 씨를 먹고 배변을 하면서 이곳에 씨앗이 옮겨졌다.

숲 옆 큰길에서 쑥부쟁이꽃이 핀 숲속 오솔길로 접어들었다. 아무도 없었다. 한적했다. 숲 밖 도로를 질주하는 자동차 소리가 흠이었다.

바람에 물결이 인다. 강물에 닿을 듯 흔들리는 버드나무 가지가 강가에서 머리를 감는 조선시대 풍속화 속 여인을 닮았다. 강가의 길은 멀리서 굽어지며 소실점을 만든다. 그곳까지 걷는다. 그렇게 걸어서 샛강과 한강이 만나는 곳에 도착했다. 5㎞ 남짓 되는 숲길 끝에서 만난 한강, 강기슭에는 물결의 나이테가 세월의 흔적처럼 남았다. 물이 닿지 않는 곳에는 방학곳지의 백사장 이야기처럼 하얗고 고운 모래밭이 남아 푸른 생명을 키워내고 있었다.

샛강다리.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