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in 예술

30년 전 소설의 생명력

소설 복간한 이경자 작가

등록 : 2020-10-15 15:13

“이것을 과연 ‘어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나요?” 한국 여성주의 소설의 시초이자 1980년대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이경자의 소설 두 권이 복간된 이유를 그는 이렇게 밝혔다. 1973년에 등단해 일흔을 넘기면서까지 펜을 놓지 않았던 그는 한국 여성 소설가의 산증인으로 불린다.

30여 년 전에 출간됐는데, 독자의 요청으로 다시 세상의 빛을 보게 된 책은 여성문제를 다양한 각도로 폭로한 <절반의 실패>(1988)와 가부장제 아래 고통받는 여성을 이야기한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1992)이다.

<절반의 실패>는 첫 출간 이듬해 방송사에서 미니시리즈로 제작되기도 했는데, 원작을 바탕으로 한 8회가 방영된 뒤 인기를 몰아 작가의 작업으로 몇 회 연장될 만큼 탄탄한 스토리를 자랑한다. 거기엔 육아에 시달리는 워킹맘, 직장 내 유리천장,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내, 성 착취 피해 여성 등의 실상이 펼쳐진다.

작가는 이런 문제가 32년이 흘렀지만 얼마나 나아졌냐고 되물으며, 여전히 바뀌지 않는 우리 사회를 반추하기 위해 썼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54편의 초단편을 모은 <오늘도 나는 이혼을 꿈꾼다>는 20대 중반부터 20년 동안 작가 스스로 체득한 여성 차별의 역사를 말하고 있다. 출판사에서 정한 제목이 “칠순의 자신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한사코 사양했지만, 결국엔 ‘깊은 분노와 폭발 직전의 욕망에 살던 시절, 화염병을 던지는 기분으로 쓴 문체’를 그대로 살리고 싶어 일부러 수정하지 않았다고 고백했다. 문장은 거칠어도 싱싱한 주제라고 밝힌 이 소설은 모녀, 고부, 부인과 애인, 기혼과 미혼, 성녀와 창녀처럼 여성의 관계를 분할하는 당대 관습에 강력한 반기를 들었다.

강산이 세 번 변했지만 아직도 이 문제를 가볍게 볼 수 없다던 작가는 앞으로의 소망을 이렇게 드러냈다. “내면화된 남녀유별의 유교적 윤리에서 벗어나야죠. 양성(兩性)은 서로를 ‘사람으로서’ 연대하며, 서로의 차이에서 배우려는 따듯함이 있어야 합니다.”

이규승 서울문화재단 홍보IT팀장


■ 이경자는 한국작가회의 이사장을 역임했으며, 서울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소설집 <절반의 실패> <살아남기>, 장편소설로 <배반의 城(성)> <혼자 눈뜨는 아침> 등이 있다. 올해의 여성상, 한무숙문학상, 고정희상, 제비꽃서민문학상, 민중문학상, 아름다운 작가상, 현대불교문학상, 가톨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