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처 없이 걷기만 해도 좋은 계절이다. 멀리 떠나는 단풍 여행 대신 전통과 새로운 감각이 공존해 색다른 매력을 자아내는 제기동을 걷다보면 가을의 정취를 도심에서도 물씬 느낄 수 있다.
제기동은 토지가 비옥해 조선시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왕이 직접 제사를 올리던 선농단이 자리하고 있다. 교통의 요충지로 일제강점기 경원선과 중앙선, 경춘선이 개통되면서 경기·강원 등지의 각종 농산물, 약재 등이 모였다. 많은 사람이 활발히 오가며 서울약령시, 경동시장 등 전통시장이 자연스럽게 형성되었다.
선농단은 한 해의 풍년을 기원하며 왕이 직접 농사의 신인 ‘신농씨’와 ‘후직씨’에게 제사를 지내는 선농대제를 행했던 곳이다. 선농단의 남서쪽 귀퉁이에는 측백나무에 둘러싸인 커다란 향나무가 있다. 수령 600년이 넘도록 한자리를 지켜온 향나무는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올렸던 왕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으리라.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 2번 출구로 나오면 한약 냄새 가득한 서울약령시 일주문이 길손을 맞이한다. 전국에서 가장 큰 약재전문시장이다. 서울약령시의 뿌리는 조선시대 보제원에서 찾을 수 있다. 보제원은 굶주린 자에게 음식을 나눠주고 무료로 가난한 이들을 치료하며 백성을 보호하는 곳이었다. 보제원 주위에는 한약재 상인이 많이 오가며 자연스럽게 난전이 형성됐고 오늘날 서울약령시로 이어졌다.
서울한방진흥센터는 서울약령시의 대표적인 자랑거리다. 우리나라 최대 한의약 관련 시설로 한의약 박물관, 보제원, 한방 체험시설, 한방 뷰티숍, 한방 카페 등을 갖춘 복합문화 체험시설이다. 지치고 피곤한 일상에서 잠시 이곳에 들러 다채로운 한방 체험을 하면 한방의 가치와 우수성을 느끼고 즐길 수 있다.
서울약령시 골목에는 오랜 세월 사랑받는 노포식당이 있다. 연탄불에 구운 돼지갈비가 감칠맛을 자아내는 감초식당, 선농단에서 유래된 음식인 설렁탕이 깊은 맛을 내는 토성옥, 냉면과 왕갈비탕이 유명한 함경면옥 등이다. 산책 뒤 든든히 배를 채우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최근 선농단과 서울약령시를 가로지르는 제기동 정릉천 산책로(제기로9길 주변~성북구 월곡동 방향)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산책로는 휴게시설도 갖추고 꽃과 나무로 한결 쾌적해졌다. 자전거도 타고 걷기도 하며 도심 속 휴식처로 손색이 없다. 운 좋으면 정답게 노니는 두루미 한 쌍도 만날 수 있다.
정릉천을 따라 걷다보면 물길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 벽돌집들을 만난다. 세월의 흔적이 물씬 느껴지는 벽돌집은 층수도 모양도 제각기 다른데 서로 모여 자아내는 개성이 뚜렷하다. 최근에는 주택 1층 곳곳에 뉴트로 감성이 가득한 음식점, 카페, 와인바, 쇼룸 등이 생겨 사람들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옛것과 새것이 함께하는 시간의 공존을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곳이 바로 ‘제기동’이다.
송민선 동대문구 홍보담당관 언론팀 주무관
사진 동대문구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
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