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곳

예술가의 ‘인간적 숨결’ 담은 미술관

성북구립 최만린미술관

등록 : 2020-10-29 15:38

2009년 성북구는 성북구립미술관을 개관했다. 서울 자치구 가운데 첫 구립 미술관이다. 그동안 성북구립미술관은 지역에 살았던 예술가들을 발굴하고 집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왔다. 최만린미술관은 그 첫 결실이다. 우리나라에는 흔치 않은 공립 작가가옥미술관의 선구적 사례로 그 가치를 더한다.

수많은 미술관이 있지만 최만린미술관은 조금은 더 특별하다. 실제 조각가 최만린이 살았던 집을 미술관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만린에게 성북은 오랜 시간 삶의 터전이었다. 이곳에 집을 손수 지었고 가족과 행복한 시간을 보냈으며 가장 중요한 작품들을 만들었다. 그리고 이 집을 기억하는 많은 사람과 만났다. 어느 하나 작가의 숨결이 느껴지지 않는 것이 없다.

예술가의 사적인 공간이 모두에게 열린 공립미술관이 된 것이다. 최만린 작가는 미술관 개관을 위해 살던 집을 기꺼이 공공화하고자 했다. 시기별로 중요한 작품 126점을 무상으로 기증했다.

미술관은 작가가 살았던 집의 건축 그대로를 살려냈다. 전시실, 수장고와 오픈 수장고, 아카이브를 위한 공간 등 미술관으로서 필요한 시설을 마련했다.

대문을 열고 미술관을 들어서면 예술가가 가꾼 나무들이 관람객을 정겹게 맞이한다. 집과 함께 오랜 시간을 머금은 감나무와 단풍나무는 이 집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정원에는 최만린 작가의 조각들이 제자리를 찾은 듯 놓여 있다. 붉은 벽돌 계단을 밟으며 미술관 안으로 들어서면 최만린 작가가 예술가로서 마음을 다지며 제작한 1958년 석고 작품 <이브>가 공간을 아름답게 이끈다.

최만린미술관은 코로나19로 개관 직후 관람객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 문을 열었다. 현재 개관기념전 ‘흙의 숨결’이 열리고 있다. 작가가 정릉에 터를 잡은 1960년대부터 현재까지 한국 추상 조각을 향한 그 마음의 근원에 주목한 전시이다. 오픈 수장고에는 작가의 시대별 중요한 작품들이 상시 전시되고 있으며 작가 인터뷰 영상을 볼 수 있다. 2층에는 작가가 기증한 도서와 자료, 그리고 작가가 직접 수집한 아카이브가 ‘꾸미지 않은 자서전’이라는 제목으로 공개되고 있다. 또한 최만린 작가의 작업 공간이 예전 모습 그대로 연출돼 있고 작가가 쓰던 책상과 의자, 그리고 손때 묻은 작업 도구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곳은 관람객에게 ‘한 인간으로서 예술 가’를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작품을 관람하는 것 이외에도 집과 같이 편안한 공간에서 일상 속 멈춤의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한다. 앞으로 최만린미술관은 전시와 공연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계획이다.


우리는 지금 예상치 못한 고립의 시대를 겪고 있다. 마음의 정화가 필요하며 무엇보다 예술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다. 역사적으로 볼 때 전쟁 시기에도 수많은 사람이 예술로 마음과 정신을 지켜왔다. 자신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는 곳으로 최만린미술관은 부족함 없는 공간이다.

김보라 성북구립미술관 관장, 사진 성북구립미술관 제공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