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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트 칠한다고 도시가 재생되는 건 아니지요”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 저자 고명석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객원교수

등록 : 2016-07-07 15:34 수정 : 2016-07-07 15:39
서울에 미학을 입히자!’ 프로그램에서 강연하는 고명석 교수. 도시재생은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는 데 목표를 두어야 한다고 말한다.

살 만한 도시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 고명석(54)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객원교수는 자신이 펴낸 책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 서문에서 “정감 있는 도시”라 정의한다.

 어떠한 도시가 정감 있는 도시일까? “아름다워야 합니다.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도시가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아름다움은 또 무엇일까? 삶의 질은? 고 교수는 도시재생의 목적은 중세 암흑기에서 인간성 회복으로 나아간 르네상스 운동처럼, ‘잘 살아 보세’ 노랫가락을 앞세운 개발 시대에 파괴당한 인간성 회복에 두어야 한다고 본다. “정감은 미학의 영원한 주제”라 하는 고 교수에게 도시는 사람이 모여 일하고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장소이고, 인간의 발명품 중 첫 번째이며, 생로병사의 길을 걷는 유기체다. 도시도 늙어 가며 병이 들기 때문에 도시재생은 병이 든 도시를 치료하는 과정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도시재생은 도시를 치료하는 과정

 “담벼락에 페인트 칠한다고 도시가 재생되는 건 아니지요.” 현재진행형인 도시재생 활동이 무언가 부족하다는 말로 들린다. 건물과 숲, 정치와 행정, 예술과 생활, 도덕과 과학 등 유무형의 조건들이 융합된 공간으로서, 도시는 생로병사의 과정에서 발전과 쇠퇴의 과정을 겪기 마련이다. 늙으면 병들기 마련이고 병이 들면 치료가 필요하다.

 수년 전부터 주요 정책으로 등장한 도시재생은 우리가 사는 도시가 병들었다는 이야기나 다름없고, 이미 치료가 시작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치료 방법은 옳은가? 도시에 미학을 입힐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는 고 교수는 디자인을 바꾸고 낡은 건물을 새단장하는 수준의 도시재생은 병든 도시를 치료하는 충분조건이 아니라고 한다. “매력적인 도시로 재생하기 위해서는 역사와 문화를 활용한 도시재생이 이뤄져야 하며, 경제재생형 도시재생, 노후 주거지 맞춤형 도시재생 그리고 사람이 행복한 도시재생이 필요합니다”는 말은 결국 “도시에 살고 있는 주민의 삶이 행복해져야 도시가 재생되는 것이다”로 귀결된다.

 고 교수가 도시재생에 관심을 갖고 책까지 펴낸 데에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권유가 있었다. “2015년 이후 2018년까지 도시재생 관련 사업에 2조8000억 원가량의 재정이 투입됩니다. 제대로 지출되는지 평가와 검증이 필요하다는 게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생각이었던 것 같아요.”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에서 틈틈이 평가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정책을 연구하면서 도시에 관한 지식도 쌓아온 터였고, 무엇보다 이미 출간한 <예술과 테크놀로지> 집필 과정에서 건축미학과 도시미학까지 확장된 관심 영역이 집필을 결정하게 한 요인이었다.


 “처음에는 정치나 도시행정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집필할 생각이었어요. 도시재생에 철학이 필요한데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 그러나 미감의 관점에서 도시를 고민해 볼 필요를 느끼면서 책의 방향을 일반 시민들까지도 읽을 수 있는 대중서로 바꾸게 됐다. 도시를 인간의 삶의 질 향상에 도움이 되는 장소로 바라보는 관점을 좀 더 넓혀 보자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다.

 “통섭과 융합의 시대라고 하잖아요. 자연과학대에서 수학을 공부하다 중퇴하고 다시 인문대에서 종교학을, 대학원에서는 행정학을 공부하고, 국회에서 정책연구위원으로 일하면서 문화예술, 매체와 관련한 정책 개발 일도 했으니…. 통섭의 시대에 적합한 거 아닌가 생각도 들고….” 고 교수는 평범하지 않게 살아온 이력을 가볍게 말하며 어렵게 쌓아온 다양한 지식들을 책 곳곳에 배치해, 도시를 바라보는 공학적 시선에 인문학적 안경을 보태어 놓았다.

 집필하는 동안에도 서재에 갇혀 있지 않았다. 청계천을 거닐며 석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도시재생 문제에 대해 역사와 대화하고, 도심에서 청년들을 만나면서 현대도시가 안고 있는 고민의 폭도 확장되었다. <도시에 미학을 입히다>의 ‘도시재생은 도시 디자인이 아니다’ ‘안전한 도시가 아름답다’ ‘매력적인 도시로 재생하기’ 등 7개의 장은 그렇게 태어났다.

 “책이 출간되고 나서 공대 교수들이 관심을 보이더라구요. 도시를 미학의 관점에서 바라보자는 이야기가 신선했나 봐요.”

 

 시민들과 공유 위해 매월 강좌와 탐방 진행

 고 교수는 “생각은 희소한 자원이 아니므로, 나누어 가진다고 해서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각자의 몫이 더 늘어난다”고 말한다. 지식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이야기다. 2016년 2월부터 서울도서관과 함께 ‘서울에 미학을 입히자’라는 주제로 대중 강연과 탐방을 진행하는 이유도 여기 있다. 지난 2월부터 매월 넷째 주 일요일에 나가는 프로그램은 고 교수의 강연과 현장 탐방으로 이루어진다. “인문학 강연이 인기잖아요. 여기저기서 진행하는 강좌를 들어 본 분들은 좀 신기해하기도 해요. 상세한 설명보다는 보고 이해하기를 바라는 거지요. 정답은 없는 거니까….” 고 교수는 문래동예술촌 탐방을 통해서 “생산과 예술이 어떻게 한 공간에서 어우러지는지”, 염리동 소금길 탐방에서는 “떠남이 예약된 마을에서 주민의 삶이 보여 주는 황폐함”을 함께하는 시민들이 보고 느끼기를 바란다. 7월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를 탐방하며 “디자인이 도시재생의 목표가 될 수 없는 이유”를 시민과 함께 대화할 예정이다.

 고 교수는 책의 서문에서 “도시 정책을 입안하고 집행하는 공직에 계신 분들에게 이 책이 참고가 되기를 바란다”고 적었다. 도시재생을 생각하는 데는 도시에 대한 철학이 그 근저에 깔리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기 때문이다.

 참고: ‘서울에 미학을 입히자’ 프로그램 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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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사진 윤승일 기자 nagneyoon@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